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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조각 산문

아빠의 도전

by 조식

어릴 적 즐겨보던 프로그램 중 <특명! 아빠의 도전>이라는 것이 있었다. 연예인들이 아닌 비 연예인들 중 정말 평범한 가정의 아빠들이 스튜디오 나와 여러 도전을 하고 그 도전에 성공하면 갖가지 상품을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그 당시 내 짧은 생각으로는 '할 만한데?'라는 수준의 도전을 아빠들이 성공해 내는 게 쉬워 보였고 무엇보다 성공 후 받아가는 상품들이 매우 좋아 은근히 부러운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 아빠도 저 프로그램에 나가 도전을 성공하여 상품을 받아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땐 아빠의 매일이 도전의 연속인 줄도 모르고. 난 이 사실도 최근에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아빠가 취업을 했다. 아빠는 한 아파트 단지의 관리인으로 일하게 되었다. 첫 출근을 한지 일주일. 아빠는 이제 경비아저씨라고 불린다.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미리 밝히자면 아빠가 경비아저씨가 된 것이 창피하다거나 그런 게 절대 아니다. 그 일을 절대 평가절하하지 않는다. 그래서도 안되고. 아빠의 도전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다. 물론 너무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은 입 밖에 잘 나오지 않는 법이다. 그래도 용기 내 전화를 걸었다. 엄마한테. '아버지한테 축하한다고 전해주세요'


아빠의 취업이 정말 기쁘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내가 첫 직장에 취업을 한 것보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이직을 한 것보다 더 기쁘다. 왜냐면 이건 아빠의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도전을 성공하여 성공의 대가인 상품을 취업으로 받게 된 것이다. 어릴 적 그토록 바라던 프로그램에 아빠가 나간 것은 아니지만 이 사실을 듣자마자 이 프로그램이 떠오른 이유는 이건 분명히 아빠의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난 그걸 정확하게 알고 있다.


올해 초 아빠는 취업의 문턱에서 단 한 번의 불합격 통보로 매우 힘들어했었다. 57년생, 일흔을 목전에 앞둔 아빠는 작년까진 10년간 한우 농장을 운영하며 농사일을 하셨고 그전에는 30년 간 우체국에 다니셨다.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일하는 것보다 본인의 의지대로 결정하고 일하는 것이 더 익숙해진 경력과 나이다. 그런 사람이 한창 젊을 때는 생각도 안 하던 일에 지원하는 것조차 자존심 상할진대 불합격 통보를 받은 것은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때 아빠는 전화 너머로 울었다. 아빠는 술에 잔뜩 취해있었다.


그 후로 한동안 아빠의 취업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와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냥 지금처럼 쉬시겠거니 생각했다. 그리고 평소 아빠의 자존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울면서 전화를 했던 날 이후로는 그것에 대해 모른 척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당연히 나의 이 판단은 어쭙잖고 건방진 생각이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아빠의 마음은 손톱만큼도 헤아리지 못한다. 지금도 그렇고.


아빠는 그날 이후로 술을 끊고 매일 운동을 했다. 본인의 나이와 체력이 취업의 걸림돌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아파트나 건물 등에서 경비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 필수 교육들을 이수했다. 그리곤 결국 5개월 만에 일을 얻게 되었다. 이런 말을 나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나를 포함한 요즘 애들이 예전 우리 부모님 세대보다 끈기 없고 열정 없는 건 맞는 것 같다. 왜냐면 이 말을 아빠가 스스로 보여주고 증명했기 때문이다. 취업이 쉽지 않다고 술까지 끊을 각오가 내겐 있을까? 아빠의 도전은 있지만 자식의 도전은 없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아빠가 취업을 한 게 정말 너무나 기쁘다. 그리고 아빠의 도전은 내게 정말 많은 영감과 반성과 자아성찰의 시간을 준다. 본인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 내고 보여준 아빠가 너무 존경스럽다. 그리고 나도 희망을 가져본다. 아빠의 끈기와 노력과 열정의 DNA가 내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 DNA의 희망의 불씨를 내 안에서도 지피고 싶다. 누가 뭐래도 난 아빠의 아들이니까. 아빠는 나의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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