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날짜가 잡혔다. 그리고 나에게는 딱 2주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 소식이 가져다주는 무게를 애써 외면했다. '그래, 어차피 해야 할 일이잖아' 라고 중얼거리며 아무 일도 아닌 듯 행동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멈춰 있었다.
남은 시간은 딱 14일. 어쩌면 내 인생의 마지막 2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자 익숙했던 일상이 낯설어졌고,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도, 반복되는 시계 초침도, 습관처럼 마신 커피의 온도마저도 이상하게 생경했다. 이 모든 것이 마지막이 될 것만 같았다.
그날 저녁, 나는 노트를 꺼냈다. 아무도 모르게 글을 쓰고 싶었다. 삶을 정리하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삶의 의미를 붙들고 싶었다.
펜을 들고 제일 먼저 떠오른 건 '나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였다. 생각보다 답은 명확했다. 나는 늘 앞만 보고 달렸다. 성공, 성과, 인정, 그 무엇이든 손에 쥐기 위해 내 삶의 방향키를 쥐고 있는 듯했지만, 실은 그 키를 외부에 맡긴 채 살아왔다. 돈과 명예를 쫓으며 모든 선택을 해왔고, 그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놓쳤다. 돌이켜보면, 그 속도와 열정은 대단했지만, 그 끝에는 허무함만이 남아 있었다.
두 번째로 떠오른 것은 '가족' 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떠난 이후, 나는 가족과 점점 멀어졌다.
명절 때나 간신히 얼굴을 보고, 통화도 드물어졌다. "바쁘니까, 나중에 찾아 뵐게요" 라는 말로 미뤄온 관계. 그러나 지금, 이 모든 것이 흔들리는 순간 나를 붙든 손은 가족의 손이었다. 병원 대기실에서, 수술 설명을 듣는 자리에서, 아무 말 없이 옆에 있어주는 존재. 세상 모든 것이 불확실할 때, 유일하게 분명한 존재였다. 왜 나는 이토록 소중한 사람들을 그동안 뒷전으로 밀어뒀을까. 그 질문이 마음 깊이 박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내 삶의 방향을 다시 묻고 싶었다. 그동안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더 벌고, 더 오르고, 더 인정받기 위해 살아왔다. 하지만 만약 다시 살아갈 수 있다면, 이번에는 다르게 살고 싶다.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작고 사소하더라도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존재.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제는 무작정 뛰기보단, 의미를 찾아 걸어가고 싶다.
나는 이 세 가지 다짐을 노트에 적었다. 지금 이 순간, 삶의 끝이라는 가능성 앞에 서 있으니 아이러니하게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 더 분명해졌다.
남은 14일. 그 안에 정답을 찾을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찾지 못할 것이다. 찾는다 하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만약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이 노트에 적은 대로 남은 삶을 살아가고 싶다. 두려움보다도, 간절함이 더 커진다. 그 간절함이 나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노트를 펼치고 기록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