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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사, 어떤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하나?

by 빈센트

큰 병에 걸리면 인간으로서의 자유의지가 모두 박탈당한 느낌이 든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병에 이미 걸린 뒤에는 내 노력으로 결과를 바꾸기도 어렵다. 몸이 아픈 것도 서러운데, 삶을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고통스럽다. 그런 이유로, 많은 환자들이 신앙이나 종교에 의존하게 된다. 기도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노력'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단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어떤 병원에서, 어떤 의사 선생님께 수술을 받을지 결정하는 것이다. 수술을 받는 순간, 내 몸과 삶은 그분의 손에 맡겨진다. 특히 전신마취 후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어떤 의사와 병원을 선택하느냐는 삶 전체를 좌우하는 중대한 결정이 된다.


나도 그런 선택 앞에 서 있었다. 처음에는 검사를 받았던 부산의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려 했다. 어머니도 같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신 적이 있어 익숙하고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담당 교수님의 수술 스케줄이 무려 3개월이나 밀려 있었고, 수술에 대한 설명을 해주실 때 너무 안 좋은 결과만 강조하셔서 불안감이 컸다.


그래서 다른 병원, 다른 의사 선생님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부모님은 마치 국정원처럼 밤낮없이 인맥과 정보력을 총동원해 수소문을 시작하셨다. 자식을 살리겠다는 부모의 사랑은 정말 대단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 결과, 서울 강남 세브란스 병원이 갑상선암 수술로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몇몇 교수님들이 특히 뛰어나다는 정보도 얻었다. 하지만 최고 권위자의 진료 예약조차 6개월이나 밀려 있었다. 수술이 아니라, 진료만 해도.


그때 어머님의 지인을 통해 고급 정보를 얻었다. 최고 권위자 교수님의 직속 제자이자 실력 있는 젊은 교수님이 계시다는 소식이었다. 아직 대중적으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 바로 예약이 가능했고, 나는 곧장 서울행 기차를 타고 아버지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서울 도곡동 강남세브란스 병원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나라 전체의 중증 환자들이 다 이곳으로 모인 듯했다. 그 모습은 낯설고, 두렵고, 무거웠다. 그동안 병원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게는 모든 게 새로운 세상이었다. 공중에 흩어져있는 공기 조차 무겁게 느껴졌다.


진료실 앞에서 내 이름이 화면에 떠올랐고, 불리기 전까지 그 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긴장된 시간이었다. 저 방 안에서 듣게 될 말, 제안받을 수술 계획이 내 삶의 방향을 바꾸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은 40대 중반 정도로 젊고, 따뜻한 인상이셨다. 놀랍게도 병에 대해 묻기보다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물어봐 주셨다. 해외 유학 중 병을 얻은 내 상황을 이해해주시며, 빠르게 수술을 잡아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가장 걱정했던 목소리 문제에 대해서도


"현미경으로 암 세포를
한땀한땀 떼어내서라도
성대 신경 살려줄게."


고 약속해주셨다. 이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게는 희망이자 생명의 언어였다. 수많은 딱딱하고 냉정한 의사들을 만나봤지만, 이분은 달랐다. '이분께 내 목숨을 맡겨도 되겠다' 는 확신이 들었다.


짧은 인사와 옅은 미소를 마지막으로 진료실을 나섰다. 그 순간부터 내 인생, 내 미래는 그분의 손에 맡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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