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게트 Dec 23. 2020

환대

술 취해서 쓴 글

<환대>
2013년 내 생일 기념 술자리에서 ‘섹밍아웃’을 했다. 1년 정도 사귀었다 그 즈음 헤어진 전남친이 내 첫경험이었다고, 처음 한 건 2012년 여름 즈음이었다고. 의리로 사생활을 공유하던 때였다. 혼전순결을 주장할 정도로 보수적인 친구들에게 무려 ‘첫 전 남친’과의 첫경험을 고하기란 여간 두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정이 가까워오는 시간 취기를 빌어 겨우 말을 꺼낼 수 있었던 이유다.

-야 넌 그걸 왜 지금 말하는데?
-아니, 너넨 그런 얘기 싫어하잖아. 듣기 싫을까봐 못했지
-아, 넌 우릴 그동안 그렇게 생각했다는 거야? 의리도 없는 년들이라고?

반응은 예상대로 나빴지만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나빴다. 비밀의 내용보다도 비밀을 만들었다는 자체로 배신의 혐의를 얻었다. 섹스는 해명할 수 있는 일도 해명해야 하는 일도 아니었고, 비밀로 둔 건 온전히 내 결정이었으니 할 수 있는 말이 없어 울었다.

-야, 난 지금 그 전남친 새끼 죽이고 싶어.

고등학교 친구는 평생 친구라는 말도 거짓말이구나, 이대로 끝이구나 생각했던 순간 뜬금없이 건네진 아무말(위로도 사과도 아니었으니까)이었다. 얼큰하게 취기 섞인 멋쩍고 당황스러운 아무말. 그러고선 술집을 나와 컵라면 사먹자고 편의점에 들어갔고, 그 친구는 물 부어놓은 내 컵라면을 몰래 반쯤 집어 삼키다 유리창 너머로 나랑 눈이 마주치곤 그대로 뱉어버려 나와 얼간이처럼 툭탁대다 평소처럼 집에 갔다. 그게 내 생애 처음 느낀 환대였다.

내가 기억하는 환대의 모습은 이런 것이다. 모질고 서툴고 어벙하지만 익숙해서 따뜻했던 환대. 친구는 내 섹스와 섹밍아웃 무엇 하나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는 날 여전히 자신의 바운더리 안에 담아뒀고, 우는 나를 안도시키고자 아무말을 던졌다. 나와 다른 너지만 네가 우는 건 못 참아. 그날 친구의 반응에서 읽은 환대는 이런 것이었다.

그날 그 친구는 내게 폭력적이고 무책임했던 걸까. 그때보다 머리가 조금은 더 큰 지금도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이었다면 그 친구도 더 세련된 말을 던질 수 있었겠지만 그건 그 당시 그 친구가 건넬 수 있는 최선이었단 것을 아니까(그러고 나서 1년 뒤 그 친구는 얼큰하게 취해서 며칠 전에 남자친구 꼬추 봤다고 나한테 카톡을 보냈다). 그러니까 내 친구의 아무말은 “주님께선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따위의 물티슈 봉투에 적힌 말들보다 훨씬 구체적인 환대였다.

미지의 경험과 사유라도, 언젠간 내 일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나한테 남친 꼬추 봤다고 신나서 카톡하던 내 친구처럼. 나랑 다른 사람임을 알면서도 환대할 때 경험과 사유의 공유가 가능해진다고 믿는 건 그래서다. 네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일단 환영한다는 말보다 네가 나랑 다르지만 여전히 환영한다고 말할 수 있는 환대, 그런 환대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얼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