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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폴스 Mar 28. 2021

선생님이 해줄 수 있는 말은

사춘기를 겪는 6학년00이에게

 작년 10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 반 학생 중 한 명이 목요일 원격 수업에 불참했습니다. 수업에 들어오지 않아 직접 학생의 핸드폰으로 전화도 했지만 받지 않았습니다. 쉬는 시간에 학부모님께 전화해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부탁했습니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도 이런 아이의 행동을 답답해했습니다.


 그 아이는 금요일 원격 수업도 불참했습니다. 수화기에 들리는 부모님의 감정도 답답함에서 화로 변했습니다. 결국 그 아이는 금요일 수업이 다 끝나서야 교실로 왔습니다. 강제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동물처럼 고개를 숙인 채 말입니다.


 그 아이와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어제와 오늘 왜 수업에 안 들어왔어?"

 말이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너를 혼내려는 게 아니야 진짜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그래." 

 한참 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5분 간 정적이 흐르자 그 아이는 용기를 내 말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아이의 첫마디는 예상외였습니다. 

 "앞문과 뒷문을 닫아도 될까요?"

 

 한 학기 동안 제가 바라본 그 아이는 마음이 여리고 착한 아이였습니다. 다만 사회성이 부족해 친구들과 살갑게 대하거나 발표를 적극적으로 하는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잔잔한 호수 같은 아이였습니다. 그런 아이의 성격을 부모님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봅니다. 그렇게  부모님과 아이와의 관계는 점점 악화되어 집에서는 대화도 하지 않았고, 감정의 골은 심각해졌습니다. 부모님은 결국 그 아이의 유일한 해방구였던 웹툰을 보지 못하게 했고, 학원도 바꿔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그에 대한 반항으로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사춘기를 겪으며 부모님과 갈등하는 학생을 많이 봐왔기에, 평소라면 '선생님이 부모님과 전화를 좀 해볼게' 하게 말했을 겁니다. 그런데 아이가 속마음을 말하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걸 보는 순간 예전 제 사춘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1까지 사춘기를 겪었는데, 그 당시 어머니와의 관계가 안 좋았습니다. 저는 그 당시 학업에 대한 엄청난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힘들다고 말해도 돌아오는 어머니의 대답은 '누구나 힘들다.'라는 말이었습니다. 20년이 지나 어머니는 그때 공부를 했기에 지금 선생이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제가 느끼기엔 그건 어머니의 책임 회피이자 자기 합리화였습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말했습니다. 

 "00아. 선생님도 6학년 때 엄마 때문에 참 많이 힘들었어. 닭장 속 닭처럼 느껴졌거든. 엄마는 다 잘 되라는 의도라 했지만, 선생님은 공감할 수 없었단다. 그 당시 선생님이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가출이나 독립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웠고 용기도 없었단다. 그래서 엄마에 대한 반항으로 문을 세게 닫곤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단다. 

 선생님은 하루하루가 힘들었어. 그리고 어떻게 하면 <마당을 나온 암탉>처럼 닭장을 나올 수 있을까 생각을 했단다. 선생님이 생각한 방법은 제주가 아닌 육지로 대학을 가서 그곳을 탈출하는 거였단다. 선생님은, 00 이가 스스로 자신만의 방법을 찾길 바라. 선생님이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이게 다야. 선생님이라서, 어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란다. 만약 선생님이 만약 사춘기 때의 나를 만난다면 그렇게 말해줄 것 같아. 짜증으로 나를 갉아먹고, 화를 주변에 분출하는 게 아니라 방법을 얼른 찾아서 나아가라고 말이야."

 그 아이는 눈물을 닦았고, 다음 날부터 생생한 눈빛으로 학교로 왔습니다.

 

"00아. 결승선이 있는 경주는 언젠가 끝이 난단다. 선생님이 해줄 수 있는 말이 이것뿐이라 미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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