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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폴스 Feb 03. 2022

설렁탕

눈을 닮은 심심함



 눈이 소복이 내렸다. 밤새 눈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하루 사이에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을지 몰랐다. 매일 나서는 출근길이지만, 눈은 일상을 새롭게 만든다. 세상의 수많은 색은 흑과 백, 두 가지 색만 남았다. 눈 내린 풍경은 설국의 풍경을 찍은 흑백사진이 되었다. 이런 뭉클한 감정은 잠시 – 길가에 쌓인 눈은 나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추위로 몸은 웅크리고, 넘어지지 않도록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신발에 철썩 달라붙은 눈은 내 걸음에 따라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눈은 나를 질척이게 한다. 새벽에 내린 눈은 환영받지 못한다.      

 오후 6시, 회사의 문을 열고 나오자 세상은 여전히 하얗게 뒤덮였다. 눈은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내린다. 새벽에 내린 눈과 달리 저녁에 내리는 눈은 환영받는다. 연인을 기다리는 파란 모자를 쓴 남자의 얼굴에는 설렘이 있었다. 우산을 쓰고 종종 걸어가는 여자의 발걸음에는 집에서 기다리는 자식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하얀 눈이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내리는 날이면 설렁탕이 떠오른다. 집 근처 자주 가는 설렁탕 가게로 향했다. 

 “설렁탕 하나 주세요.”

 점원은 깍두기와 설렁탕을 툭 – 하고 내려놓는다. 묽은 국물에 얇게 썬 수육 몇 덩이와 파가 올려져 있었다. 설렁탕의 국물은 날을 갈지 않은 칼처럼 무디다. 취향에 따라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지만, 나는 아무런 간을 하지 않은 설렁탕 국물을 즐긴다. 

 눈이 내리는 날에 설렁탕이 떠오르는 건, 설렁탕이 눈처럼 하얗기 때문이 아니라 무딘 심심함 때문이다. 나에게 설렁탕은 심심함과 밋밋함이다. 하룻밤 사이에 세상을 바꾸는 신비로움을 주거나 녹아내려 질척거림을 주기 이전에, 눈은 눈일 뿐이다.

 설렁탕을 비웠다. 외투에 쌓였던 눈은 어느새 녹아 사라졌다. 설렁탕 가게 문을 열고 나왔다.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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