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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즈 Mar 17. 2021

녹색학부모회봉사

녹색어머니회가 이름을 바꿨어요

작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일 년에 두 번 정도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를 둘러싼 횡단보도에서 신호에 따라 깃발을 들고 교통지도를 한다.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켜지면 깃발을 돌려 차를 막고 아이들이 안심하고 건널 수 있도록 돕는다. 빨간불일 때는 인도쪽으로 깃발을 돌리고 아이들이 건너지 못하게 한다. 


1. 명칭


이름이 바뀌었다. 가정통신문을 받았다. 올 해부터 녹색어머니회에서 녹색학부모회로 이름이 변경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일반적으로 이름을 바꾸는 걸 상당히 싫어하는 나이지만, 이건 나쁘지 않은데?!라고 생각했다. 

녹색어머니회는 어머니들만 봉사해야 한다는 인식을 주는 측면이 있으니 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봉사로 인식하도록 녹색학부모회로 이름을 바꾼 것 같다. 

녹색어머니회였지만 나도 작년에 한 번 했었고, 지나가다 보면 가끔씩 아빠들이 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압도적으로 엄마들이 많기는 하다. 


정당명이나, 기관명이 자주 바뀌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내 입장에서는 가능하면 명칭을 바꾸지 말고 명칭이 내포하는 맥락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처럼. 조금 맘에 들지 않는 이름이 언젠가는 평범하거나, 나아가 근사한 느낌이 되도록 맥락을 바꾸는 게 낫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쉽게 이름을 바꾼다. 이름을 바꾸면 쉽게 다른 사람, 다른 조직,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녹색학부모회는 그럼에도 나쁘지 않은 거 같다. 육아하는 아빠 입장에서 나를 포함시켜줬네?! 하는 느낌이었다. 크게 논란을 일으킬만한 것도 아닌 것 같고, 시대가 변하고 아빠들이 육아하고 엄마들이 일하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는 사회 현실에서 적절한 변화가 아닌가 생각했다. 


정말 우연히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들은 팟캐스트에서 생리대 관련 이야기를 하는 걸 듣게 되었는데, 생리대를 월경대라고 하고, 생리를 정혈, 달거리라고도 하며, 명칭을 바꾸기 위해 고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생리라는 단어는 별로 탐탁치 않은 단어인 걸까? 예전에는 생리가 부끄럽거나 숨기고 싶은 곤란한 것이라는 인식도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런 시대는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사회가 변하다 보니 그에 발맞추어 정말 많은 곳에서 기존의 명칭을 바꾸는 노력이 있는 것 같다.  



2.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지?


작년에는 아이가 EBS 수업을 듣기 때문에 아이를 집에 놓고 녹색어머니회 활동을 다녀올 수 있었다. 올 해는 아이가 매일 등교를 하는데, 작년에는 항상 내가 같이 교문까지 바래다주었다. 2학년이 된 올해부터는 혼자 가겠다고 하고, 가면서 친구들과 만나서 함께 등교하는 걸 즐기고 있다. 문제는 둘째인데, 아직 6살인 둘째는 집에 혼자 있는 것이 쉽지 않고, 나의 입장에서도 불안하다. 

돌봐줄 사람이 없는 둘째는 어쩌면 좋을까?


결국 나는 먼저 집을 나서고, 아이들은 8시 40분이 되면 첫째가 등교하면서 둘째를 데리고 와서 나에게 인계해주기로 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5분도 안 걸리는 거리지만 차가 다니는 사거리가 하나 있어서 신호등을 건너야 하고, 늘 밖에서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아이들이라 부모 없이 다니게 하는 것은 늘 걱정되고 긴장되는 일이다. 참고로 등교시간에 몰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학년별로 등교시간을 나눠놓았고 우리 아이는 8시 50분에서 9시 사이에 등교하게 되어 있다. 


나는 8시 20분에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기 전에도 둘 째는 갑자기 엄마가 코디해 놓은 바지가 답답하다며 엄마에게 전화해서 바꾸겠다고 울고 난리였다. 나는 빨리 바꿔 입으라고 했는데 고집부리고 울고, 소리치고 하느라 난리난리였다. 시간이 급한 나는 목소리가 올라가고, 아이는 울고 집안은 난장판이었다. 


신호등 앞에서 깃발을 이리저리 휘저으면서 계속 시계를 보면서 아이들이 제시간에 올까 걱정이 되었다. 별 큰일 없이 오리라 기대하면서도 혹시나 무슨 일이 없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게 부모 마음인 것 같다. 8시 45분쯤 되자 왜 안 오는지 자꾸 집에서 학교 오는 길을 힐끔거리게 된다. 내가 맡은 자리에서는 학교로 오는 길이 잘 안 보여서 빨간불일 때 자리를 잠깐 옮겨 아이들이 오기로 되어있는 길 쪽으로 돌아서서 지켜봤다. 


많은 아이들 사이로 내가 입으라고 신신당부한 패딩을 입고 걸어오는 두 남매가 보인다. 휴~ 마음이 놓이고, 뿌듯하고 기특했다.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이런 일로 부모는 행복을 느끼게 된다. 그게 정말 행복하다.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드는 아이, 잠시 생각하더니 동생 보고 가라고 하고 학교 정문으로 들어간다. 둘째는 나에게 뛰어 온다. 내 손을 꼭 잡았고, 여기까지 오면서 만난 동네 언니들 이야기를 한다. 


이십 오 분 동안 불안했던 내 마음은 편안해졌고, 남은 15분 동안 별일 없이 깃발 봉사를 마쳤다. 


3. 결말


9시에 등하교 봉사를 마치고 둘째 아이 손을 잡고 걸으면서 상쾌한 마음이었다. 날은 적당히 서늘했고, 아이의 기분도 좋았다. 아이의 기분이 좋아야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딸은 집에 가서 물을 마시고 쉬를 하고 싶다고 했고, 천천히 걸었다. 오늘 하루의 가장 중요한 미션 하나를 달성했다. 이제 첫째의 태권도 학원과 둘째의 픽업, 집안 청소와 저녁식사 준비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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