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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dison May 20. 2019

들어는 보셨지요, '주경야독'

직대딩이야기 01

2012년,

정부는 한국의 마이스터들을 키우겠노라 야심 차게 '마이스터고 1기'를 출범하였다.

실업계 고등학교와 소수의 특성화고 학생들만이 대학 진학을 미루고 취업하던 시대에, 나는 '마이스터고 졸업생'이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으로 첫 직장에 발을 내디뎠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시작한 직장생활은 재미도 있었지만 으레 직장인들이 그러하듯 정기적인 퇴사 충동과 사내 고졸 1기들을 향한 은근한 차별을 버텨야만 했다.

고졸 사원, 대졸 사원들 모두 같은 직급은 같은 사원이었지만 1년 차 때 '거기 고졸들'하며 타노스마냥 핑거스냅으로 나포함 동기들을 지칭하던 과장님의 목소리는 아직까지도 응어리처럼 남았다. 졸업을 1년 앞두고 7년차가 된 지금에서야 조금씩 선배 취급을 받고 있으니 얼마나 다른 사람으로 봤을지 새삼 놀랍지도 않았다.

인식이 아무리 바뀌었고 (물론 지금은 과거보다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트렌드가 바뀌었어도 일부 어른들에게 남아있는 선입견은 쉽게 바꾸기 힘들었다. 그래. 대학 졸업장은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하지만 방통대로 시작해보고, 사이버대도 생각을 했었지만 혼자 공부하는 건 영 재미도 없고, 보람도 느껴지지 않았다. 현실에 어느 정도 타협하고 있을 즈음, 그렇게 3여 년이 지났고 회사동기가 넌지시 던진 산업체 특별전형 대학 입학의 유혹이 날아들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서울 내 H대학에 원서를 넣었고 운 좋게 예비번호를 받아 집으로 날아온 입학증을 얼떨떨한 마음으로 만져볼 수 있었다. 기쁨보다는 얼떨떨함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직장인에서 직대딩으로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은 시작되었다.


23살, 첫 대학 OT

150명 남짓한 '직대딩'들은 가평의 모 펜션 강당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편한 사복을 차려입은 이들은 또래의 대학생들과 다름없어 보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쭈뼛쭈뼛 자기소개를 시작할 때 직장이나 직업을 언급한다는 점이었다.

후드티에 캡모자를 눌러쓴 친구는 행원이라고 했다. 앳된 얼굴에 수줍게 손을 내민 친구는 벌써 주임이라고 하였다.

대화 내용이나 술게임을 하는 모습들은 영락없이 대학생들이었지만 저마다 개인의 경제활동을 책임지고 있는 직장인들이었다.

사실, 이런 공식적이고 어색한 모임은 굉장히 부담스럽고 싫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건 재밌었다. 낯가리는 성격에도 불구하고 친구를 두 명이나 사귄 것도 쾌거였다. 안타깝게도 그 두 친구들은 모두 1학년 1학기에 휴학을 하였다. 나 때문이 아녔길 바랄 뿐이다.


19:00, 첫 수업

3월의 저녁은 한창 어둡다.

새내기처럼 보이는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왁자지껄 떠나는 교정에 퇴근한 직장인들은 모여든다.

오티 때와는 다르게 정장을 차려입어 나이 들어 보이는 일부 동기들이 새삼 낯설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3년 만에 교탁에 앉아있는 것도 어색하고, 3년 동안 놓고 있던 공부를 하려는 것도 막막한데 교수님들은 첫날부터 '여러분들이 직장인이라 힘든 건 알지만 쉬엄쉬엄할 생각은 없다'며 엄포를 놓는다.

이젠,

고등학교 때도 안 세던 밤을 새워 시험공부를 하고,

보고서를 쓰던 손으로 레포트를 쓰고,

친구들에게 말로만 듣던 악명 높은 조별과제를 해야 한다.



월요일, 화요일, 목요일 그리고 토요일까지


주 4일, 말인즉슨 저녁이 있는 삶과 토요일 늦잠은 꿈도 꾸지 말라는 소리다.

새내기의 설렘과 맞바꾸기엔 억울한 장사였다.


회사보다 먼 덕분에 꾸역꾸역 알람을 끄며 무거운 몸을 일으킬 땐,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얻으려고 이 짓을 하나 곡소리를 한 4절까지 불렀다.


애써 지각을 면 하고 나면, '오늘 점심은 뭘 먹지'하는 고민을 11시부터 열심히 했다. 사실 이 고민을 토요일까지 할 줄은 몰랐다. 차이점이 있다면 평일에 과차장님들 따라가서 먹는 부대찌개 집 대신 동갑 친구들과 학식 메뉴를 확인하고,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것이었다.

토요일 캠퍼스에서만 볼 수 있는 나무 배달장면


교양이 뭐예요?


전공수업은 사실 재미없었다. 이미 고등학교와 회사에서 배워 아는 내용도 더러 있었고 모르는 내용도 별로 알고 싶은 욕구가 들진 않았다.

이런 마음을 들켰는지 다행스럽게도 1학년의 시간표는 교양이 8할이었다.


축제기간에 운동장으로 나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했던 원어민 교수님과의 야외수업도, 트럼프가 당선됐을 때 흘리던 그의 눈물은 차마 잊히지가 않는다.


그중에서도 마음을 가장 끌었던 건 과학철학에 관한 교양강의였다.

전까진 소위 말하는 제대로 된 '인문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는 취업에 도움이 안 되니까, 취업하고서는 수익에 도움이 안 되니까. 그런 식으로 무시해왔던 인문을 제대로 바라보자, 그제야 진짜 대학생이 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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