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임신일기
부모님께는 알리지 않고 있었다. 진작에 임신테스트기를 통해 임신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병원에서 임신 확인을 받기 전까지는 얘기하지 않았다. 내내 입이 근질거렸지만 꾹 참고 병원 가는 날 저녁에 친정 가족들과 식사 약속을 잡았다.
자주 있는 가족 식사지만 괜히 신경이 쓰였다. 식당도 메뉴도 각별히 신경을 써서 골랐다. 식당은 따로 룸이 있어서 조용하고 오붓해야 했고,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게 서비스도 괜찮아야 했다. 그러면 보통 고깃집이나 중식 코스가 무난했지만 내가 먹는 것도 걱정해야 했다. 아직 입덧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이지만 심한 음식 냄새나 기름진 것은 부담스러웠다. 고민에 고민을 한 끝에 결정한 메뉴는 어복쟁반이었다.
지난여름 남북정상회담 이후 평양냉면이 크게 인기를 끌었다. 그때 평양냉면만큼은 아니지만 수혜를 입은 음식이 어복쟁반이다. 예전에도 냉면집에서 어복쟁반을 다루는 일은 있었지만 남북정상회담 이후 주변에서 어복쟁반에 대한 인지도나 관심이 많이 늘었다.
어복쟁반은 평양 토속 음식 중 하나로 일종의 전골이다. 전골냄비보다 더 큰 놋 쟁반에 각종 재료를 올리고 육수를 부은 후 끓이면서 먹는 음식이다. 쟁반 한가운데 간장종지를 올리고 그 주변에 얇게 썬 소고기 (젖가슴살인 유통, 혀인 우설, 양지 등 여러 부위가 함께 쓰인다.), 야채, 만두, 육전 등을 쭉 올린다. 야채 말고는 모두 익혀 나와서 육수만 끓으면 재료를 집어 가운데 있는 간장에 찍어 먹으면 된다. 고기 등을 다 먹고 나면 남은 국물에 면사리도 넣어 먹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함께 먹는다는 행위는 친근감의 표현이다. 오죽하면 가족을 식구(食口), 함께 생활하며 지내는 것을 한솥밥을 먹다 라고 표현할까. 그런 우리에게 어복쟁반은 더욱 푸근한 음식이다. 가까운 사람들과 불 하나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따뜻한 음식을 나눠먹다 보면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국물이 자작하고 고기가 듬뿍 올라간 어복쟁반은 소주와도 잘 어울려 음식을 두고 반주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좋다.
어복쟁반은 위에 언급했듯 주로 냉면집에서 판다. 고기까지 파는 대형 냉면집은 룸도 있으니 가족 모임에도 안성맞춤이다. 다른 더 좋은 메뉴가 없었다. 부모님과 남동생에게 식당 이름과 메뉴를 알려줬다. 특히 부모님은 생전 처음 듣는 메뉴에 의아해하셨지만 이럴 때 새로운 메뉴를 먹어보는 게 아니겠냐며 얼버무렸다.
만나기로 한 당일이 되었다. 그날은 하루 종일 어색함과 이상함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병원 접수처에서부터 그랬다. 간호사가 어떻게 왔냐는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답을 못했다. 옆에 있던 남편이 아니었으면 어버버 하며 서있을 뻔했다. 진료실에서 '축하합니다' 하는 의사의 말에도 굳어버렸다. 임신인지 몰랐던 것도 아닌데 의사의 확진을 받고 초음파 사진을 받아 드니 기분이 묘해졌다. 이상한 기분은 갈수록 더했다. 멀리 사시는 시부모님께는 우선 전화로 소식을 알렸는데 시부모님이 말문이 막히는 바람에 우리도 할 말이 없어 전화를 끊어야 했다. 알고 보니 결혼 후 5년이나 손주를 간절히 기다리던 시부모님은 막상 임신 소식을 접하니 실감이 안 나 말문이 막혔다고 했다. 시부모님의 반응을 보니 친정 부모님께 말씀드릴 일이 더 걱정됐다.
이럴 땐 남편에게 떠넘겨야지. 식당에 도착하고 나니 더 긴장이 돼서 남편에게 초음파 사진을 주고 얘기를 하라고 했다. 남편도 긴장을 했는지 '근데 나 얘기는 잘 못하겠어.'라고 했다. 그 와중에도 초음파 사진이 구겨질까 봐 가방 속 책을 꺼내 그 사이에 고이 넣고 책을 무릎 위에 고이 올려뒀다.
걱정하는 사이 부모님과 남동생이 왔다. 아직은 얘기를 꺼내기는 일렀다. 일단 음식이 나오고 분위기라도 좀 녹아야지. 음식을 시키자 곧 큰 놋 쟁반이 들어왔고 예쁘게 놓인 재료 위로 육수를 부었다. 종업원 분이 움직이는 모습을 멍하니 보면서, 부모님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면서, 머릿속으로는 계속 '언제 얘기하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어복쟁반이 끓기 시작했다.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더 타이밍을 못 잡을 것 같았다. 남편 옆구리를 푹 찔렀다. 말 한마디 없이 긴장하고 있던 남편은 다짜고짜 부모님 눈 앞에 초음파 사진을 내밀었다.
어복쟁반만 펄펄 끓고 우리 모두의 시간은 잠시 멈췄다. 그리고 엄마의 기쁜 비명 소리와 아빠의 차오르는 눈물과 함께 다시 시간이 흘렀다. 곧이어 아빠가 울었고 엄마까지 따라 울었다. 부모님의 눈물에 나와 남편이 당황하려는 찰나, 어복쟁반의 상태를 살피러 들어온 종업원분이 먼저 당황했다. 오해를 막기 위해 나는 정신을 수습해야 했다. 변명하듯 설명하는 내게 종업원 분은 축하인사를 건넸다. 그때까지 굳어있는 남동생보다 빠른 축하인사였다.
어복쟁반을 좀 먹다가 얘기했어야 했나. 분명 어복쟁반을 다 먹고 면사리까지 끓여 먹었는데 먹은 기억이 없다. 어복쟁반이 졸아드니까 기계적으로 먹고, 종업원이 '면사리 넣어드릴까요?'라고 하니 면사리 까지 챙겨 먹었을 뿐이다. 심지어 부모님과 동생은 어복쟁반이 처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맛을 기억하지 못했다. 이 날만큼은 어복쟁반이 아닌 어떤 음식을 먹었어도 똑같았을 것이다.
우리는 모임의 분위기와 성격에 맞게 음식과 식당을 정한다. 밥하기 싫어서 간단히 외식할 때와 부모님 생신 때 고려하는 식당은 엄연히 다르다. 어복쟁반은 예로부터 왁자지껄하고 따뜻한 분위기에 맞는 음식이었다. 어복쟁반은 평양 시장에서 상인들이 먹던 음식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다양한 설이 있지만 이 설이 가장 유력하다.) 시장 한 구석에서 상인들이 어복쟁반을 가운데 두고 나눠먹으면서 못다 한 흥정도 하고 친목도 다졌다고 한다. 지금도 어복쟁반은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과 만나 오붓하게 식사할 때 가장 어울리는 음식 중 하나다. 하지만 이 날만큼은 어복쟁반의 덕을 전혀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