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주차] 엄마가 해 준 오징어 볶음

음식임신일기

by 솜대리




입덧이 시작되고 말았다. 아직 심하진 않지만 입맛이 없다. 입맛이 없으니 그나마 먹는 게 매콤한 음식, 밀가루 음식, 찬 음식 정도. 사실 그것도 딱히 먹고 싶어서 먹는 건 아니다.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음식일 뿐. 상황이 이렇게 되니 먹는 게 일이다. 굶을 수는 없으니 먹어야 되는데 끼니때마다 스트레스다. 먹는 낙으로 사는 내게 이런 날이 올 줄이야.


그중에도 가장 큰 문제는 평일 저녁. 평소 우리 부부는 평일은 세 끼 모두 회사에서 해결했다. 그런데 이젠 내 저녁을 따로 챙겨야 했다. 임신기간 근로 단축제도(임신 12주 이내 혹은 36주 이후의 여성근로자가 유급으로 일일 근로 시간을 2시간 단축하는 제도)를 신청하면서 일찍 퇴근하게 된 탓(?)이다. 예전 같았으면 쾌재를 부를 일이었다. 퇴근해서 좋았고, 저녁이 있는 삶인 것 같아 좋았고, 먹고 싶은걸 먹을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입맛도 없는데 혼자 먹자고 저녁을 차리기는 끔찍했다. 대책이 필요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라면 끓이기였다. 나가서 사 먹기도 피곤했다.


바야흐로 엄마 찬스를 쓸 타이밍이었다. 평일에는 친정에서 회사를 다니기로 했다. 친정에 가면 엄마 밥을 얻어먹을 수도 있고 회사 통근도 더 쉬워졌다. 집과 친정이 멀어 아예 짐을 싸들고 가야 했지만 그 정도야 일도 아니었다. 회사일로 야근, 특근을 밥 먹듯 하는 남편도 친정행에 찬성했다. 내가 임신한 순간부터 틈만 나면 내 걱정을 하던 엄마는 딸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그리고 엄마는 도깨비방망이가 되었다. 내가 무슨 음식을 먹고 싶어 하던 뚝딱 만들어 냈다. 첫날 저녁은 오징어볶음이었다. 저녁 시간이 다가오니 엄마가 '뭐 먹을래?' 하고 물었다. 매콤한 오징어 볶음이 생각났다. 양념 자작하게 해서 밥 대신 소면을 비벼먹으면 잘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한테 얘기를 했더니 오징어를 사야 한다며 후다닥 마트로 향했다.


생각해보니 회사 식당에서 먹은 걸 제외하면 오징어 볶음은 오랜만이었다. 집에서 자주, 다양한 음식을 해 먹는 편이다. 갈비찜 같이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나 동파육, 리조토 같은 외국 음식도 종종 해 먹는다. 그런데 오징어 볶음만은 거의 해먹은 적이 없다. 오징어 손질이 너무 힘들었다. 뭐든 시작이 반이라지만 오징어 볶음은 도무지 시작할 엄두가 안 난다.


오징어 손질 과정은 이렇다. 끈적-한 오징어를 세로로 쭈욱 가른다. 다리를 잡고 다리와 이어진 내장을 몸통에서 슬슬 떼낸다. 내장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 등뼈같이 자리 잡은 연골을 쭈우욱 뽑아내고, 눈을 잘

라내고 입까지 뽑아서 제거한다. 다리에 붙은 내장도 잘라낸다. 이제 제거할 부분은 다 제거했지만 보다 나은 식감을 위한 작업이 남았다. 미끈미끈한 오징어 껍질은 굵은소금을 손에 쥐고 살살 어르면 몸통에서 살짝 떨어진다. 찢어지기 쉬우니 조심하면서 떼어낸다. 아무리 조심해도 한 번에 뜯긴 어려우니 너무 욕심 내진 말자. 빨판도 꼭 손질해야 한다. 굵은소금을 손에 쥐고 다리를 훑어내면서 빨판을 떼어낸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나면 오징어 손질 완료. 나 스스로도 오징어처럼 흐물흐물해져 버리는 게 함정이지만.


오징어 볶음은 오징어 손질이 가장 큰 일이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오징어를 사 오자마자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 하더니 손만 씻고 오징어 손질에 돌입했다. 아니, 돌입했나 싶었더니 '쭈욱', '싹둑', '싹둑', '쫘아악' 하며 순식간에 손질을 끝냈다. 가장 큰 난관을 거치고 나니 그 이후로는 일도 없었다. 고추장 양념을 슥슥 개고, 손질한 오징어와 야채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오징어를 볶으면서 면을 삶아냈다. 오징어 볶음 말을 꺼낸 후, 오징어를 사 오고 손질하고 조리하는데 1시간이나 걸렸을까.


어려서는 엄마가 천하무적으로 보였다. 모르는 게 있으면 엄마가 답해줬고, 탱탱볼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집 안에 연기가 가득해도 엄마가 해결해줬다. 내가 가진 모든 호기심과 문제에 대한 해답은 엄마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어느샌가 안 하게 되었다. 커가면서 서서히 엄마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깨달았고, 내 세계와 엄마의 세계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징어 볶음을 보고 있으니, 엄마가 천하무적이고 천하제일이던 그때가 떠올랐다.


엄마가 해 준 오징어 볶음


나도 곧. 누군가의 천하무적이 된다. 나는, 어린 내가 생각했던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좀 더 시간이 지나 아이와 나의 세계가 달라졌을 때, 천하무적의 자리에서 천천히 잘 내려올 수 있을까.


입덧 때문인지 생각 때문인지 맛있게 볶아진 오징어 볶음을 앞에 두고 속이 불편하다. 에잇 일단 그만 생각하자. 지금 할 수 있는 건 잘 먹는 것 밖에 없다. 눈 앞의 음식은 먹고 보고, 나중 일은 나중 가서 보자.




keyword
이전 01화[5주차] 임신 소식을 알리던 날, 뜨끈한 어복쟁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