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주차] 고통의 떡케이크

음식임신일기

by 솜대리




입덧은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이제는 밥도 못 먹는다. 냄새가 너무 싫어서 입 안에 넣을 수도 없다. 원래는 정 반대였다. 어려서부터 갓 지은 밥 냄새 마니아였다. 다른 데서 놀다가도 밥 냄새가 솔솔 나면 자연스레 솥 쪽으로 발길이 향했다. 특히 밥이 다 되고 처음 밥솥을 열어 증기가 얼굴로 쏟아질 때가 정말 좋았다. 그래서 부엌 근처에 얼쩡거리다가 밥솥에서 밥이 다되었다는 소리가 나면 얼른 달려가 뚜껑을 열고 밥을 휘젓고 얼른 한 숟가락을 먹었다. 그러면 식사 준비를 하던 엄마는 어느새 달려가 밥을 먹었냐며 웃곤 했다. 그러니, 상상도 못 하던 일이 일어난 셈이다.


수정.jpg 그렇게 좋아하던 갓 지은 밥. 더 맛있는 밥을 먹고 싶어 비교 실험도 해봤다. (아래 링크 참조)


그러니 어떻게 알았을까. 떡케이크 때문에 그렇게 힘든 며칠을 보내게 될 줄. 사건은 아빠 생신에 벌어졌다. 모든 일은 선의에서 시작되었다. 다들 하듯 생일 케이크에 불을 붙이기 위해, 기왕이면 아빠가 좋아할 만한 케이크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생일날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붙이는 건 우리나라에서도 관습이 된 지 오래다. 예로부터 케이크는 특별한 날을 위한 빵이었다. 다른 빵에 비해서 유달리 재료와 노력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특히 독일에서는 케이크와 관련된 특별한 풍습이 있었다. 아이의 생일이면 아침부터 케이크에 초를 켜놓았다가 저녁식사 때 소원을 빌며 단숨에 초를 불어 끄게 하는 것이다. 이는 독일의 풍습이었지만 점차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우리나라에도 자리 잡게 되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생일상에 촛불을 꽂은 케이크가 없는 건 상상할 수 없다.


20170531_212741.jpg 생일을 축하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우리나라에서도) 케이크에 불을 붙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생일 케이크에 요즘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바로 떡케이크다. 떡케이크는 쉽게 말해 케이크 모양으로 쪄낸 백설기다. 쌀가루를 채에 내려 포슬포슬하게 만든 다음에 쪄내면, 케이크 모양의 포슬포슬한 떡이 된다. 떡케이크는 쌀가루에 단호박, 흑임자, 쑥 같이 색깔 나는 재료를 섞어 색깔을 넣거나, 앙금으로 장식을 만들어 올려 장식을 한다. 밀가루 음식인 케이크에 비해 소화가 잘되면서도 새로워서 어른들께 인기가 많다. 센스 있는 부모님 생일 케이크로 인기가 높다.


우리 가족도 이번 아빠 생신날 떡케이크를 준비했다. 원래 부모님이 케이크를 잘 안 드실뿐더러, 마침 엄마가 떡 만들기 수업을 들으면서 떡케이크 만드는 방법도 배웠다. 나는 내심 좋았다. 난 어려서부터 떡순이였다. 떡은 앉은자리에서 몇 개고 먹을 수 있었다. 밥을 못 먹게 된 후에도 몇 번 떡을 먹어봤는데 괜찮았다. 엄마는 단호박 떡케이크를 한다고 했다. 달달한 단호박 설기에 더더욱 달콤한 녹두 가루를 올리는 것이다. 결이 다른 두 단 맛을 한 입에 즐길 생각을 하니 미리부터 설렜다.


IMG_E0336.JPG 그 날의 떡케이크


하지만 냄새를. 생각하지 못했다. 밥을 못 먹게 된 것도 밥의 맛 때문이 아니라 밥 냄새 때문이었다. 쌀 익는 냄새를 못 견뎌하는데 쌀가루 익는 냄새가 괜찮을 리 없었다. (몇 번 떡을 먹을 수 있었던 건 이미 만들어져서 냄새가 많이 날아간, 고명이 가득한 떡이었기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떡 찌는 냄새가 나기 시작할 무렵, 나는 방 안에 있었다. 떡케이크뿐 아니라 밥도 했으므로, 그 밥 냄새를 피해 방 안에 문을 닫고 있었다. 싫은 냄새가 슬슬 났다. 개코가 되어버린 탓에 방문을 닫아도 밥 냄새가 난다고 투덜거리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불까지 뒤집어썼으니 평소 같으면 괜찮을 질 타이밍이었는데 이상하게 냄새가 점점 심해지기만 했다. 사정없이 들어오는 냄새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떡 케이크 냄새구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피하고 싶었지만 이불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두려웠고, 자칫하면 속이 더 안 좋아질까 봐 움직이는 것도 겁났다. 힘을 내서 창문을 열었지만 이미 내 코는 쌀 냄새에 사로잡혔다. 아, 낭패였다.


20190116_223812.jpg 사건 몇 주 전의 엄마표 떡케이크. 이 날은 참 맛있게 먹었더란다.


그 이후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상당한 시간 괴로움에 몸부림치다가 결국 아빠 생신을 하러 나섰지만 뭘 먹었는지, 무슨 얘기를 했는지 전혀 모르겠다. 그 날 뿐 아니라 그 이후 며칠을 쌀 냄새에 찌들어 지냈다. 코 끝에 쌀 냄새가 붙은 듯 뭘 먹어도 힘들었고, 뭘 먹어도 속이 안 좋았다. 그냥 굶어버리면 딱 좋겠는데, 굶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날을 떠올리며 이 글을 쓰는 것도 괴롭다. 먹기 위해 사는 나였기에 요즘 같은 상황은 정말로 상상도 못 해봤다. 먹는 것 외에도 내가 나 같지 않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몸도 내 몸 같지 않고, 말이나 행동도 조금 더 내 위주로 하게 된다. 스스로를 탐색해야 했던 10대, 20대가 지나가고, 이제는 내 입맛, 내 취향, 내 성향 등 나에 대해서 좀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낯설다. 앞으로 더 큰 몸의, 상황의 변화가 올 텐데, 그 변화가 어떤 변화고 나는 그 변화를 어떻게 겪어 나가게 될까. 다시 사춘기가, 성장통이 오려나 보다. 한 번 겪은 일이니 더 잘해나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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