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임신일기
개나리, 진달래 등 봄꽃은 대표적인 봄의 전령이다. 그래서인지 봄이면 방송사마다 봄이 왔다며 노오란 개나리, 붉은 진달래를 비춘다. 내게는 봄꽃 이외에도 봄을 알리는 식물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대표적인 봄나물, 쑥이다. 색깔도 화려하지 않고 키도 작아 한눈에 띄진 않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봄에는 곳곳이 쑥이다. 보도블록 끄트머리, 아파트 난간 등 조그만 틈만 있으면 고개를 내밀어 봄을 알린다.
봄이면 천지사방에 나는 쑥은 예로부터 중요한 먹거리였다. 얼마나 생명력과 번식력이 좋은지, 전쟁에 모든 게 파괴되고 황폐화된 땅에도 쑥은 무성히 나곤 해서 '쑥대밭'이라는 단어까지 생겼다. 그만큼 흔했기 때문에 봄이면 사람들은 쑥을 뜯어 국, 떡, 전 등 다양한 음식에 넣어먹었다.
쑥은 배고픈 봄에 넉넉한 먹거리일 뿐 아니라, 훌륭한 약용식물이기도 하다. 따뜻한 성질이 있는 쑥은 예로부터 약용으로 쓰였다. 봄에 딴 쑥을 잘 말려 일 년 내내 활용했다. 냉증, 혈액 순환, 부인병 등에 특히 좋으며, 민간에서는 피가 날 때 쑥을 짓이겨 상처부위에 붙이기도 했다. 이러니 우리나라에서 쑥의 존재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건국신화에 까지 나오는 쑥은 신화 속에서 곰을 사람으로 만들기도 했다.
나도 봄이면 쑥을 잔뜩 먹는다. 제철 음식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쑥 자체를 정말 좋아한다. 먹고 싶은 음식은 몸에서 필요한 음식이라고 하는데, 워낙 몸이 차기 때문에 따뜻한 성질의 쑥을 몸에서 필요로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쑥이 들어간 음식은 다 좋아했다. 쑥국, 쑥떡, 쑥라테 등 가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봄이면 엄마는 다른 집 엄마들보다 더 쑥 구하는데 열심이었다. 산 쑥은 어디서 뜯은 쑥인지 모른다며 직접 산속에 들어가 쑥을 뜯었다. 안 그래도 봄이면 쑥이 나는데, 엄마 쑥 캐는데 따라가고, 또 그 쑥으로 만든 음식을 내내 먹고살았다. 봄 하면 쑥이 생각날 수밖에 없다.
결혼을 하고 엄마와 떨어져 살면서도, '봄=쑥'이라는 공식은 여전하다. 오히려 결혼하고 나서 쑥을 더 많이 먹고 있다. 딸이 잘 챙겨 먹고 사는지가 일생일대의 걱정인 엄마는 봄이면 도저히 먹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쑥을 캐다줬다. 쑥은 아무리 잘 보관해도 일주일 넘기기 어렵다. 먹을 만큼만 받으려고 해도 어림도 없다. 못 먹으면 버리라고 강경하게 나오니 항상 울며 겨자 먹기로 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조금만 지나면 쑥으로 만든 쑥개떡, 쑥인절미, 쑥버무리까지 보낸다. 이 정도면 봄에는 쑥을 먹는 게 아니라, 봄에는 쑥에 압도당해 사는 지경이다. 그나마 다행은 쑥은 냉동보관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삶아서 지퍼백에 삶은 물 조금과 함께 넣어 얼려두면 다음에 해동해서 쑥국 끓일 때 활용할 수 있다. 덕분에 쑥을 버리지는 않게 되었지만, 봄이 지나서도 한동안은 계속해서 쑥에 휩싸여 살게 되었다.
올해는 그나마 쑥을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이 좀 덜하다. 친정에서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도 임신하고 자주 친정에 왔지만, 요즈음은 아예 대놓고 친정에서 살고 있다. 병가를 내면서부터다. 출혈이 조금씩 있었는데 열흘이 넘도록 멈추질 않았다. 남편이 출근하고 하루 종일 스스로를 혼자 건사할 자신이 없어 친정으로 와서 지내고 있다. 원래는 봄마다 쑥을 버리지 않고, 질리지 않고, 맛있게 먹을 방법을 궁리하느라 신경을 썼지만, 친정에서 지내니 내 입으로 들어가는 쑥만 신경 쓰면 되었다.
쑥뿐만 아니다. 친정에 오니 많은 게 편하다. 집안일도 집안일이지만, 내 생활까지도 엄마가 다 챙겨준다. 마치 다시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물리적으로 의지하다 보니, 심리적으로도 약해진 것 같다. 내 몸의 변화 하나하나가 낯설고 두려워 엄마를 찾는 일이 많다.
임신을 했으니 엄마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데, 오히려 어린아이에 가까워져 버렸다. 가야 하는 길과는 반대로 반대로 가는 기분이다. 별다른 방도도 없으면서 이래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걱정이 많이 되지만 일단은 먹는다. 쑥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식사 때 쑥국, 쑥튀김 등을 실컷 먹고, 간식으로 또 쑥떡을 먹는다. 전략적으로 내 동선에 쑥떡을 둔 엄마 덕에 평소에도 내 입에는 항상 쑥떡이 물려있다. 이 정도면 곰도 사람이 될 것만 같다.
곰이 백일 간 쑥과 마늘을 먹어 사람이 되었듯, 나도 열심히 쑥을 먹으면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쑥떡을 바라보며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 일단 하나 집어문다. 어찌 되었건 영양분이라도 아가한테 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