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임신일기
먹어버렸다. 초밥.
인터넷에 '임신 중 금기 음식'이라고 검색해보면 엄청난 리스트의 음식들이 나온다. 지역마다 전해지는 금기 음식이 다르고, 다른 나라의 금기 음식까지 언급되는 데다, 최신 논문들에서는 새로운 금기 음식들을 발견해내고 있다. 보다 보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그렇게까지 절망적이진 않다. 근거 없는 주장도 많았고, 굉장히 많은 양을 섭취하지 않는 이상 영향이 없는 음식도 있었다. 그래도 찝찝한 건 어쩔 수 없고, 모든 음식에 대해 따져볼 수는 없으니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음식 몇 가지만 특히 조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선정한 음식이 술과 날 음식이다. 술은 태아의 지능발달이나 기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한다. 뭘 먹든 어울리는 술을 마리아주(조화를 맞추어 곁들이기)하길 좋아하는 나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주일에 와인 두 잔은 괜찮다는 한 한 연구 결과가 날 유혹했지만 아예 여지를 주면 안 될 것 같았다. 날 음식의 경우 술처럼 직접적인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원래도 날 음식은 탈이 날 가능성이 높은 데다 임신부는 여러 가지로 약해진 상태라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주변에서도 날 음식을 잘 못 먹고 탈이 난 경우가 있었고, 스스로도 위와 장이 약해진 걸 느끼고 있었기에 날음식도 또한 먹지 않기로 했다.
사실 날 음식 못 먹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평소 회나 날 음식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못 먹는다고 생각하고 나니 날 음식들이 유달리 눈에 띄기 시작했다. 가는 곳마다 날 음식이 날 유혹했다. 회사 급식에는 회덮밥이, 샐러드 집에는 참치 포케가, 우동집 메뉴에는 후토마키(회와 야채, 밥을 넣고 굵게 만 마키)가 있었다. 생각해보니 인식을 못했을 뿐, 날 음식들은 우리 근처에 산재해 있었다. 집들이를 하면 회를 한 접시 떠왔고, 여름에 바닷가에 가면 점심에는 얼음 동동 띄운 물회, 저녁엔 소주에 회를 먹었다. 예전에 회에 대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회는 일본만의 음식이 아닌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음식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때 쓴 칼럼의 내용을 지금 뼈저리게 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예전부터 그랬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다.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하니 더 먹고 싶었다. 자꾸 눈에 띈다 싶더니 어느 날 갑자기 머릿속에 초밥이 떠올라 사라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자고 일어나면 잊히겠지' 하며 외면했다. 하지만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시간이 가면 갈수록 초밥의 이미지와 맛은 더욱 강력하고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새콤 짭조름하게 간이 된 밥 위에 기름진 회가 녹진하게 어우러지고, 매콤한 고추냉이가 뒤늦게 포인트가 되는 그 맛. 그 맛이 자꾸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꿩 대신 닭, 유부초밥을 먹기로 했다. 유부초밥은 회가 들어가지 않지만, 나름 초밥이지 않은가. 우리나라에서는 소풍 도시락에 흔히 쓰여 김밥과 비슷한 포지션이지만 엄연한 초밥이다. 한국어로도 초밥이, 일본어로도 스시라는 단어가 이름에 붙는다. (일본어로 유부초밥은 '이나리즈시'다.) 회 대신 유부가 쓰인 초밥이다. 유부는 두부의 수분을 짜내고 낮은 온도에서 한 번, 높은 온도에서 또 한 번 튀겨 만든 것이다. 그 자체로는 감칠맛이 없지만 유부초밥용으로 새콤 달콤 짭조름하게 졸이면, 초밥 재료로서 회와는 또 다른 매력을 뽐낸다.
유부초밥 만들기는 어렵지 않다. 조미된 유부, 밥 조미 재료가 들어있는 유부초밥 세트는 일반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나도 시판 유부초밥 세트를 썼지만, 최대한 정성을 들였다. 초밥을 이겨낼 만한 유부초밥이어야 했다. 입덧이 심해 배도 아프고 밥 냄새도 역했지만, 그 날따라 도움을 구할 친정엄마도 남편도 없어 더더욱 의지를 발휘했다. 밥에는 내가 좋아하는 귀리를 듬뿍 넣었다. 세트 안에 들어있는 밥 조미액과 건 야채 대신, 조미액과 야채 볶음을 따로 만들어 썼다. 힘이 없어 구부정한 자세로 밥과 조미액, 야채볶음을 조물조물 무쳐 유부 안에 동그랗게 뭉쳐 넣었다. 기운이 없어서 하다 쉬다를 반복했더니 어느새 밥때가 한참 지났다. 시장이 반찬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간을 한 밥은 새콤해서 먹기가 좋았다. 귀리의 탱글한 식감과 유부의 질깃함도 잘 어울렸다. 하지만 대체재는 대체재일 뿐이었다. 유부초밥을 먹을수록 초밥이 더 먹고 싶었다.
며칠 후, 저지할 사람이 없는 틈을 타 결국 초밥집으로 향했다. 이대로 가다간 언젠가는 먹을 것이었다. 어차피 먹을 거면 최대한 날씨가 더워지기 전에 가는 게 낫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멀리 가기는 힘드니 동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초밥집으로 갔다. 회전율이 좋으니 재료도 나름 신선할 것이다. 갈까 말까 하는 사이 식사 시간이 조금 지나버린 덕에 초밥집은 한산했다. 특선 세트를 시키고 두근두근하며 대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초밥이 나왔다. 입에 침이 가득 고였다. 초밥이 아름다워 보일 지경이었다. 간장을 살짝 찍어 입에 초밥을 넣었다. 약간 찬 듯한 초밥이 입 안에 들어가니 체온으로 녹았다. 광어는 담백하게, 연어와 참치는 기름지게, 새우는 달콤하게 녹아들며 제각각의 맛을 뽐냈다. 입덧을 시작한 후에는 어떤 음식이 먹고 싶다가도 정작 사다 놓으면 못 먹는 일이 많았지만, 초밥은 그렇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꿈꾸던 그 맛 그대로였다.
하지만 4개가 전부였다. 내가 먹을 수 있었던 건. 맛도 있었고, 위장에도 아직 여유가 있었는데 왠지 손이 안 갔다. 기왕 왔으니 더 먹어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결국에는 며칠간 고민한 게 무색하게 절반 이상 남기고 말았다.
이제껏 먹기 위해선 입맛과 위장의 여유, 시간과 지불 능력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 음식에 대한 인식도 다른 요소 못지않게 중요했다. 먹기 위해 살아온 나는 이제야 그걸 깨달았다. 이제까지는 단 한 번도 그 다른 요건에 대해 의식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중국 오지 마을에서 돼지고기 회를 먹었을 때도, 스페인에서 뼈 속 골수를 파 먹었을 때도 그랬다. 또다시 느끼는 거지만, 아이 덕에 새로운 경험을 참 많이 한다. 임신 초기부터 이러니 아이를 낳고, 키우며 어떤 경험을 얼마나 더 할지 궁금하다. 항상 좋은 경험은 아니라도,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경험대로 의미가 있을 거라 믿는다.
그나저나, 난 언제가 되어야 초밥을 다시 먹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