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대리의 요리탐구생활
여름휴가로 도쿄에 다녀왔다. 도쿄의 수많은 쇼핑거리 중에 가장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일본 전통 밥솥이었다. 가스레인지에 올려서 쓰는 투박한 도자기였다. 전혀 살 계획이 없었고, 한국에 짊어지고 가기엔 너무 무거웠다. 하지만 이 밥솥이 있으면 정말 맛있는 밥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번을 들었다 내렸다 하다가 간신히 발걸음을 돌렸다. 지금 우리 집에는 압력솥도 없고, 맛있는 밥을 하는 첫 번째 단계라는 쌀 불리기도 안 하고 있다. 지금 할 수 있지만 안 하고 있는 방법들을 최대한 써보고 한국 전통 솥도 써본 후에 사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애써 돌아섰다.
귀국하자마자 공항 리무진에서부터 가정용 가마솥을 검색해보다가 다시 한번 꾹 참았다. 우선 일반적인 방법들부터 고민해보기로 했다. 막연히 쌀을 미리 불려서 밥하면 맛있다, 압력솥에 밥하면 맛있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정말로 맛있을까? 일상적인 취사 방법들을 비교해보았다. 엄정한 비교를 위해 실험은 친정에서 했다. 갓 지은 밥일수록 맛있는 건 실험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밥을 동일한 시점에서 해서 비교하기 위해 전기밥솥 2개가 필요했다. 우리 집 밥솥을 짊어지고 친정으로 향했다.
실험 조건은 다음과 같다.
[공통 조건]
쌀 한 컵 (200ml 컵 기준)
[조리법]
① 안 불린 쌀로 전기밥솥에 한 밥
. 백미 모드로 취사한다.
② 불린 쌀로 전기밥솥에 한 밥
. 백미 모드로 취사한다.
③ 불린 쌀로 압력솥에 한 밥
. 압력솥을 강불에 올린다.
. 솥의 추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중불로 낮춰 5분간 둔다.
. 불을 끄고 10분간 뜸을 들인다.
④ 불린 쌀로 냄비에 한 밥
. 냄비를 강불에 올린다.
. 물이 끓으면 불을 완전히 껐다가 바로 약불로 다시 켠다.
. 가장 낮은 불로 10분간 둔다.
. 불을 끄고 10분간 뜸을 들인다.
동시에 밥을 안쳤고, 비슷한 타이밍에 4개의 밥이 모두 완성되었다. (쌀을 불리면 밥하는 시간이 줄어든다고 알고 있었는데, 전기밥솥 기준으로 3분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덕분에 4가지 방법 모두 갓 지은 상태에서 맛을 비교할 수 있었다.
비교해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압력솥에서 한 밥 (3번) 이 가장 맛있었다. 사실 같은 쌀을 썼기 때문에 맛 자체는 같았지만 식감에서 압력솥 밥이 압승했다. 나는 찰진 밥을 좋아한다. 4번 냄비밥은 고슬거렸기 때문에 애초에 내 스타일이 아니었고, 1-3번 중에는 3번이 가장 찰졌다.
하지만 평소에 3번으로 밥을 할 것 같지는 않다. 1-3번의 차이가 크지는 않은데 비해, 압력밥솥으로 밥을 하면 밥하는 내내 신경을 써야 한다. 게다가 우리 집엔 압력밥솥도 없다.
전기밥솥 밥 중에는 쌀을 불려서 쓴 2번이 더 맛있었다. 쌀을 불려서 밥을 했을 때는 밥 전체가 쫄깃쫄깃한 반면, 쌀을 불리지 않은 경우 외부와 내부의 찰진 정도가 달랐다. 그러나 이 또한 차이가 크지 않아서 하던 대로 편하게 (1번) 해 먹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다음 날, 밥 하기 앞서 쌀부터 불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쌀 불리는 건 별로 큰 일도 아닌데 기왕 먹는 거 맛있게 먹자 싶었다. 평소에는 안 쓰더라도 생일날은 더 맛있는 밥을 해 먹게 압력솥도 살까 싶다. 압력솥을 주문하는 김에 가정용 가마솥도 사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