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주차] 간편하게 포장음식, 부리또 볼

음식임신일기

by 솜대리




이사 갈 집을 구했으니 우리 집도 내놓았다. 부동산 사장님 말로는 요즘 동네에 전세 매물이 적어 금방 나갈 거라더니 괜히 한 말은 아니었나 보다. 매일같이 사람들이 집을 보러 왔다. 평일에는 남편도 나도 집에 없으니 집 한번 보여주는 게 큰 일이다. 아침부터 집 정리까지 하고 일찍 출근하고 부동산 연락이 올 걸 대비해 서둘러 일을 처리한다. 퇴근할 때도 러시아워에 걸리지 않도록 집까지 한 번에 오는 버스를 두고 지하철과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야 한다.


바쁘게 퇴근하고 집을 보여주고 나면 시간도 늦고 기력이 없어져 포장음식이나 간편식, 배달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임신 전의 나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이삿날이나 대규모 집들이처럼 특별한 날이 아니고는 먹어 본 적이 거의 없다. 집밥을 안 먹을 때는 집에서 하기 힘든 음식이나 특별히 잘하는 집의 음식을 먹으러 갔다. 맛이 덜 할 수밖에 없는 배달음식이나 간편식은 고려요소가 아니었다. 원체 먹는 데 에너지를 많이 쏟는 데다 주말에만 취미처럼 음식을 하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며칠 연속 집도 보여주고 늦게 저녁도 챙겼더니 에너지가 남아나질 않았다. 시작은 멕시칸이었다. 멕시칸은 그나마 잘 안 해 먹는 음식이니 타협이 가능했다. 강남역에서 환승하면서 서둘러 멕시코 음식집에 들렀다.


미국에서 멕시칸 음식은 원래 패스트푸드, 포장음식의 대표주자이기도 하다. 재료를 다 준비해뒀다가 손님이 부르는 대로 포장용기 위에 툭툭 얹어준다. 음식점 입장에서는 빠르고 효율적이고, 손님 입장에서는 손쉽게 고기, 야채, 탄수화물을 다 섭취할 수 있어 간편하고 든든하다. 갔던 멕시코 음식 집도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매대를 따라 재료가 쭉 나열되어 있고, 지나가면서 원하는 재료를 말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포장이 된다. 부리또 볼을 2개 포장하는 데 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chipotle.png 서 있는 서버에게 담을 재료만 말하면 바로 포장해 준다. (사진출처: Chipotle 홈페이지)


시간 낭비가 거의 없었던 덕에 목표 시간에 맞춰 집에 도착했다. 집을 잘 보여주고 사람들이 가자마자 바로 먹기 시작했다. 아삭한 야채와 이국적인 향의 고기가 매콤한 살사 소스, 부드러운 사워크림과 잘 어우러졌다. 매장에서 직접 먹는 것보다는 아쉬웠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집에서 다른 음식을 해 먹는다 치더라도 급하게 하느라 대충 챙겨 먹었을 테고 아무리 간단하게 하려 해도 시간은 훨씬 오래 걸렸을 것이다. 치울 때도 간편했다. 용기만 물에 쓱쓱 헹구어 분리수거했다. 재료를 꺼내서 손질하고 요리하고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는 보통의 식사와 비교해서 드는 노력과 시간이 천지차이였다.


섞은 후.jpg 부리또 볼. 먹기 직전 내용물을 다 섞은 모습


그 후 종종 배달음식이나 간편식을 먹는다. 맛과 건강, 환경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이 편이 편하다. 아니 이렇게 안 하면 버텨내질 못한다. 육아 선배들 말로는 앞으로는 훨씬 더할 거니 미리 적응을 하란다. 아이가 태어나면 내 밥 챙길 시간은 남아나지 않는다고. 이 것도 아이 낳고 생길 변화 중 하나일 것이다. 나마저 배달음식, 간편식을 먹는 걸 보면 이 시장이 정말 커지긴 하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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