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임신일기
이사를 간다. 안 그래도 아이를 낳으면 친정 근처로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남편 회사까지 친정 근처로 이전하면서 고민의 여지가 없어졌다. 어차피 친정 도움을 바라고 이사할 거면 가능한 한 빨리 하는 게 좋을 듯해서 급하게 집을 알아봤다. 결국 이사 갈 동네를 정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전세 계약을 했다. 내가 조리원에 있을 동안 남편이 이사를 하기로 했다.
이사를 하면 여러모로 좋다. 친정, 남편 회사뿐 아니라 내 회사도 가까워진다. 이사 가는 집은 지금 집보다 연한도 절반밖에 안되고 넓은 데다 신도시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 환경도 쾌적하다. 심지어 바로 옆 단지에 가장 친한 친구들도 산다. 조건만 보면 지금까지 이사를 미룬 게 이상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복잡하다. 한 가지 콕 집어 이유를 말할 순 없다. 계약을 빨리 하자고 밀어붙이는 부동산 사장님의 명품 시계가 눈에 거슬렸고, 이사 갈 집 화장실의 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낡고 좁아서 갑갑했던 지금 집이 괜히 예뻐 보였다. 이사 갈 집을 마음에 들어하는 남편도 괜히 미워 보일 지경이었다.
전세 가계약금을 걸고 나오면서 남편과 순대볶음을 먹었다. 통각을 자극할 매운 음식이 필요했다. 알려져 있다시피 매운 음식을 통해 통각을 자극하면, 고통을 줄이고 쾌감을 자극하는 호르몬인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임신을 하고 나니 스트레스가 조절이 잘 안되는데 예전처럼 몸을 움직이거나 사람들을 만나서 풀 수도 없으니 종종 매운 음식을 이용한다. 매운 음식이 해롭다는 말이 있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니 먹고 싶을 땐 먹어도 된다고 한다.
그러니 매콤하게 해 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순대와 내장, 야채를 고추장 양념해서 철판에 볶아낸 순대볶음은 맵고 뜨거웠다. 입도 위장도 뜨거웠고, 이마와 콧잔등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럴 땐 맥주 한 잔 곁들이면 딱이지만 마실 수 없으니 사이다를 마셨다. 청량감은 있었지만 단 맛이 있어 순대볶음과 제 짝은 아니었다. 맥주까지 마셨으면 속이 더 시원하게 풀렸을 텐데.
마음이 이렇게 복잡한 건 집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신혼여행에 돌아온 날 밤에도 그랬다. 정리 안 된 집은 정신없었고 윗 집에서는 12시가 다 돼서 까지 아이들이 공을 가지고 놀았다. 가만 누워있는데 눈물이 자꾸 흘렀다. 그때도 집이 정리 안돼서, 층간소음이 싫어서 운 것만은 아니었다.
공연한 스트레스임을 알고는 있지만, 그 걸 안다고 담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것도 안다. 지금은 그냥 매운 음식이나 먹어야지 어쩔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