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임신일기
컨디션 저조로 집안일에서 손을 뗀 지 일주일, 오래간만에 음식을 했다. 메뉴는 차돌박이 파스타. 남동생 생일 메뉴였다. 자취하는 동생은 외식이 잦아 친정에서 생일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하필이면 차돌박이 파스타가 먹고 싶단다. 나는 몸만 슬렁슬렁가서 얻어먹기만 할 생각이었는데 망했다. 차돌박이 파스타는 동생의 요구로 개발한 내 특제 메뉴였기 때문이다.
2달 여 전, 동생이 장염에 걸렸다. 회사 일로 정신없이 바쁘다가 짬이 생기자마자 휴가를 다녀오더니 무리가 된 모양이었다. 며칠을 죽만 먹어야 했다. 그 와중에 차돌박이 파스타가 탄생했다. 회사에 있는데 밑도 끝도 없이 동생이 메시지를 보냈다. '차돌박이 파스타 해줘.' 회사에서 정신없는데 나도 먹어본 적 없는 걸 해달라니, 게다가 장염 걸려서 죽 밖에 못 먹고 있으면서. '그래' 한마디를 하고 말았다. 원래는 그러고 둘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차돌박이 파스타라는 게 자꾸만 생각이 났다. 다음 날 동생한테 차돌박이 파스타를 어디서 봤냐고 메시지를 보냈다. 알고 보니 자기도 먹어본 적도 없이 어디서 말만 듣고 하는 얘기였다. 레시피가 있는 것도, 어떻게 만들어 달라는 구체적인 요구 사항도 없으면서 메뉴만 얘기하면 음식이 뚝딱 나오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손 많이 가는 동생'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아니 그런데 이 차돌박이 파스타가 계속 아른거렸다. 동생도 나같이 먹기 위해 사는 사람인데 장염으로 죽만 먹고 있자니 얼마나 배가 고플까 싶었다. 장염이 나았다는 얘기를 듣고는 고기를 좀 먹어야 하지 않을까 싶고. 결국 동생을 집으로 불렀다. 동생은 당장에 1시간을 운전해 달려왔다. 기본 오일 파스타에 차돌박이의 고소한 맛과 페퍼론치노의 매콤한 맛을 더했다. 순식간에 먹어 치우는 동생을 흐뭇하게 쳐다봤다. 한 그릇 뚝딱한 동생은 한마디를 남기곤 바쁘다며 돌아갔다. '맛있긴 한데, 다음엔 고기 더 넣고 좀 더 매콤하게 해 줘.'
괘씸한 놈. 다시 해주나 봐라.
그런데 이번엔 생일이었다. '누나 괜찮으면 해 줘.' 웬 일로 친절한 척하니 더 신경이 쓰였다. 더 배가 불러오고 아기까지 낳으면 또 언제 해주겠나 싶었다. 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생일도 평일이라 더 바빴다. 일찍 출근해서 일을 빨리 해놓고 서둘러 퇴근했다. 마트를 들러 재료를 사고 혹시나 불어버릴까 동생이 오는 타이밍에 맞춰서 파스타를 했다. 저번 요구대로 고기를 잔뜩 넣고 더 매콤하게 했다. 이번에 동생 평은 이랬다. '맛있긴 한데, 고기를 더 넣어줘.'
네가 바라던 건 차돌박이 파스타가 아니라 차돌박이 구이다.
동생이 파스타를 후루룩 먹고 나니 아직 식사자리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녹다운됐다. 많은 생일 음식 중 내가 한 건 파스타 한 가지뿐이고 차리는 것도 손도 대지 않았는데. 작년 동생 생일 때는 동파육에 마파두부를 하고도 밤늦게까지 실컷 마시고 떠들고 놀았었다. 몸이 무겁긴 한 모양이다.
동생이라고 하나 있는데 손이 참 많이 간다. 먹고 싶은 거 있다고 해줘야 하고, 시도 때도 없이 심심하다며 전화를 건다. 어리광은 있는 대로 부리면서 자기가 오빠 인양 온갖 잔소리를 해대고, 자꾸 태어나지도 않은 조카 물건을 사다 나른다. 이사를 고민하고 있는데 돌은 지나야 쓸 물건들을 가져다 놓으면 짐만 되는데. 동생 때문에 귀찮은 수많은 일들 중에 가장 귀찮은 일은, 둘째를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가 하나냐 둘이냐는 큰 차이다. 요즘엔 점차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도 회사를 다니는 여자분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이를 둘 낳고도 다니는 분들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본인도 잦은 출장, 야근을 감당하기 어렵고, 회사에서도 아이가 둘이면 시선이 달라진다. 하는 데 부담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회사에서 바라보는 눈빛도 크게 달라진다. 그 외에도 경제적 부담, 임신, 육아 어느 한 가지도 더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째에 대한 고민을 그칠 수 없다. 이렇게 귀찮은 동생이 내 아이한테도 있으면 좋겠다. 이성과 감성은 참 꾸준히도 따로 논다. 일단은, 하나 낳아보고 결정하자. 아직 하나도 낳고 길러보지 않았으니.
그나저나, 이 글 올리면 동생이 또 한 마디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