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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Mar 30. 2024

염색하러 갔다가 파마한 날

'비싼 수업료를 내고 '소통의 중요성'을 배웠구나...'

아들 아빠 머리하고 올게


토요일 아침 9시쯤 일어나 미용실로 향했다. 아들과 아내는 아직 꿈나라다.


어제저녁 무거운 몸을 이끌고 퇴근해 반신욕을 하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눈가엔 어느덧 주름이 가득하고 머리에도 흰 서리가 꽤 내려앉았다. 머리 염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8대 2 가르마를 타는 곳 중심으로 흰머리가 꽤 무성해 보였다.


'내일은 염색해야겠구나'


미용실 예약을 하기 위해 앱을 켰다. 그리고 수년째 내 머리를 해주는 미용실 예약 사이트에 접속했다.


머릿속에는 '염색'해야지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고, 나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예약을 했다.


그리고 아침이 됐고, 난 미용실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좀 밝은 색으로 부탁드려요'라고 말을 건넬까 말까를 속으로 계속 생각했다. 자칫 밝게 해달라고 했다가 너무 애들처럼 밝아질까 걱정되기도 해서다.


오늘따라 미용실에 머리 하러 앉으니 피곤이 몰려왔다. 그렇게 내 머리에는 약품이 발라지고 어느덧 1시간 여가 흘렀다.


고생하셨습니다.


미용사 선생님께 인사를 마치고 오늘 점심과 저녁, 내일 아침, 점심, 저녁 찬을 마련하러 롯데마트 식품관으로 이동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연어초밥과 내가 먹을 초밥을 샀다. 떡볶이와 순대도 샀다. 베이컨김치볶음밥도 샀다. 아내가 주중에 마실 맥주캔도 6개도.


장보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거울 속에 내가 비쳤다.


어....
이번엔 흰머리 염색이 잘 안 됐네....


'잠만.... 어..... 설.... 마......... 설.... 마......'


갑자기 놀라 집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어젯밤에 입력한 예약을 찾아봤다.


'아.......'


상세 보기를 누르니.... '염색'이 아니라 '디자인펌'으로 예약이 되어 있었다.


'파마는 지난달에 했는데....'


속상함이 밀려왔다. 돈을 버린 것 같아 속이 쓰려왔다. 길바닥에 돈을 버린 것 같아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아......... 어젯밤에 분명 염색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예약을 했는데... 왜 난.... 파마로 했을까... 선생님께 밝은 색으로 해달라고 이야기라도 건네볼걸....'


후회가 밀려왔다. 차라리 '밝게 해 주세요'라고 말이라도 건넸다면 내가 잘못 입력한 것이 실수라는 것을 선생님이 알게 되셨을 것이고, 난 그럼 파마가 아닌 의도대로 염색을 했었을 텐데...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다


우리는 말하지 않으면 의도를 알 수 없다. 내가 직장에서 늘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다니면서 정작 나는 이런 사소한 소통을 놓치고 있었다니...


미용사 선생님과 보통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오늘따라 너무도 피곤해서 소통에 내가 소홀했다.


내가 오늘 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선생님께 먼저 전달했다면, 이런 미스 커뮤니케이션은 없었을 텐데...


소통에는 작고 큰 것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모든 것은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 처음부터 큰일이 터지지 않는다.


작은 부분에서 충분히 소통하고, 서로를 더 많이 존중하고 배려하고 지원할 때 비로소 진정한 소통이 이뤄진다.


오늘 비싼 수업을 받은 느낌이다. 지난달에 파마를 했음에도 이달에 또 파마를 한 것이 속은 무척 쓰리지만, 소통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히 생각해야겠다.


이미 벌어진 일이다. 후회하고 자책하고 미련스럽게 자꾸 생각해서 뭐 하겠는가...


그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서 원인을 찾고, 분석해서 대응 전략을 수립하고, 향후에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수립하고 매뉴얼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자꾸 내 좌뇌는 내게 말을 건다. 자꾸 나를 꾸짖는다.


'정신머리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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