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의 대가...개인정보 보호와 ‘자발적 노출’의 아이러니
요즘은 커피 한 잔도 ‘개인정보’로 살 수 있는 시대다.
“앱 설치하시고 마케팅 동의하시면 아메리카노 한 잔 드려요.”
처음엔 망설이다가, 이내 우리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이름, 전화번호, 생년월일을 입력하고 마케팅 동의에 체크한다. 단지 500원 할인에, 혹은 추첨 한 번의 기회를 위해.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개인정보 보호국가다.
법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그 법의 반대편을 살아간다.
우리는 스스로 넘긴다.
한 장의 쿠폰을 위해, 스탬프 한 칸을 위해, 이름과 연락처, 구매기록, 위치정보까지 넘긴다.
그리고는 말한다.
“뭐 이 정도는 괜찮잖아.”
당첨될 리 없는 이벤트, 사실 별로 안 사고 싶은 상품, 한 번만 써보려고 가입한 서비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이후로는 계속 연락이 온다.
“맞춤 혜택을 드려요.”
“지금 아니면 놓쳐요.”
“당신에게 꼭 필요한 상품입니다.”
가끔은 묻는다.
나는 언제, 이 많은 곳에 나를 넘긴 걸까?
중국 앱 테무와 알리익스프레스가 개인정보 수집으로 논란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앱은 오늘도 ‘가성비의 왕’으로 불리며 수많은 한국인들의 스마트폰에 자리 잡고 있다.
그렇게 싼데, 그냥 한 번 사보는 거지 뭐.
우리는 그렇게 ‘정보’보다 ‘가격’을 선택한다.
정보는 원래 나의 것이었지만, 언젠가부터는 너무 당연히 남의 것이 되었다.
문제는, 그걸 아무도 빼앗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누가 강제로 가져간 게 아니라,
내가 직접 넘겼다.
너무 쉽게, 너무 자주.
생각해 본다.
개인정보 보호가 법으로만 가능한 일일까?
보호란, 누군가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정보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할인을 받고 싶고, 편리함은 늘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 편리함은 ‘단 한 번의 동의’라는 대가를 요구한다.
한 번만 동의하면 돼요.
하지만 그 동의는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때론,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말한다.
개인정보가 중요하다고.
프라이버시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그런데, 우리가 그 가치를 먼저 포기하고 있다면
이 법은 누구를 위한 것이고,
이 보호는 무엇을 지키는 걸까.
커피 한 잔의 따뜻함은 금세 사라지지만,
그 한 번의 동의는 여전히 어딘가에서 나를 따라다닌다.
이제는 우리 자신에게 묻는 시간이다.
나는, 내 정보를 얼마나 아끼고 있는가?
그리고, 그 ‘한 잔’은 과연 나에게 무엇을 남겼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