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란 투리스모를 통해 본 소니 혁명, 그 안에서 우리는 뭘 배워야 할까
영화 그란 투리스모(Gran Turismo)를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저 자동차 경주 게임 하나로 알고 있었던 ‘그란 투리스모’가, 어느새 거대한 스토리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화면 속을 달리는 슈퍼카보다 더 빠르게 달려온 것은 ‘현실과 가상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충격이었다.
우리가 몰랐던 사이, 소니는 아주 조용하게 판을 짜고 있었다. 단순한 게임 IP가 아니라, 게임 속 플레이어가 현실 속 레이서가 되고, 영화 속 주인공이 현실에서 성공한 게이머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세상. 그게 바로 그란 투리스모의 핵심이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영화 한 편이 아니다.
소니 픽처스가 이야기를 만들고 플레이스테이션이 플랫폼을 제공하며 닛산이라는 실제 자동차 브랜드가 현실을 연결하는 거대한 메타버스 협업 모델이다. 게임, 영화, 그리고 현실이 나란히 맞물려 돌아가는 이 구조는 단순한 미디어 믹스를 넘어선다. 그것은 ‘가상 경험이 현실의 기회를 만드는 시대’의 서막이다.
소니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게임은 단지 놀이인가? 아니면 또 하나의 인생인가?”
요즘 우리는 ‘메타버스’라는 단어를 지나치게 신비롭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화려한 그래픽, 아바타, 가상 공간, 블록체인까지 다양한 기술이 얽힌 복잡한 용어처럼 보이지만, 사실 메타버스의 본질은 단순하다.
메타버스란, ‘사용자가 창조하는 세계’다. 내가 집을 짓고, 내가 차를 운전하고, 내가 캐릭터가 되어 이야기를 만들며, 가상의 공간에서 하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 이런 요소들이 존재해야 우리는 그것을 ‘진짜 메타버스’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국내에서 ‘메타버스’라는 이름을 붙인 플랫폼들을 보면, 대부분은 ‘고급스러운 온라인 게임’ 수준에 그친다. 유저는 게임 제작자가 만들어놓은 세계 안에서 제한된 활동만 할 수 있다.
즉, 사용자는 여전히 ‘관람자’이자 ‘소비자’일 뿐, 창조자나 주체가 되지 못한다. 진짜 메타버스에서는 사용자가 세계의 규칙을 정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경제를 만들며, 실제 삶처럼 정체성과 관계를 쌓아간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살아있는 공간’. 그게 메타버스다.
우리가 메타버스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먼저 물어야 한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세계에서, 나는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
영화 그란 투리스모는 단순한 게임 원작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소니가 세상에 던진 하나의 선언이다.
“우리는 지금, 메타버스를 만들고 있어!!!”
소니의 무기는 단순하지 않다. 겉으로는 영화 한 편, 게임 한 타이틀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강력한 연결 구조가 깔려 있다.
PlayStation이라는 전 세계 수억 명의 유저를 보유한 콘솔 플랫폼
갓 오브 워, 언차티드, 라스트 오브 어스 등 수많은 IP(지식재산) 캐릭터들
이 게임들을 영화나 드라마로 확장시킬 수 있는 소니픽처스라는 영상 제작 스튜디오
그리고 이 모든 콘텐츠를 직접 유통할 수 있는 OTT 플랫폼 진출의 가능성
나아가, 게임 유저를 현실 세계의 프로 레이서로 데뷔시키는 GT 아카데미 같은 현실 연계 프로젝트
이 조합은 단순한 미디어 융합이 아니다.
게임(가상체험) → 영화(이야기의 전달) → 현실(실제의 기회)
소니는 이 세 요소를 하나의 ‘유니버스’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메타버스다.
사용자가 게임 속 캐릭터가 되어 현실에서 기회를 얻고, 이야기에 감동한 사람들이 다시 게임 세계로 들어와 살아보는 순환. 소니는 지금, 단순히 기술을 쌓는 것이 아니라 '삶의 무대'를 새롭게 설계 중이다. 이 흐름을 먼저 알아본 이들이, 새로운 메타버스 시대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른다.
상상해보자.
‘그란 투리스모’ 속에서 단순히 차량을 고르고 경주하는 것을 넘어서, 내가 매일 드나드는 차고를 직접 디자인하고, 가상의 도시를 자유롭게 주행하고, 디지털 토지를 소유해 내가 원하는 집과 상점을 짓고, 직업을 선택해 돈을 벌고, 게임 속 경제가 현실의 자산처럼 작동한다면?
말그대로 이건 또 하나의 삶이다.
소유, 이동, 경제, 직업, 커뮤니티.
현실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들이 그란 투리스모라는 게임 속에 구현된다면, 그곳은 더 이상 ‘가상’이 아닌 현실의 또 다른 층위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순간,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다.
“이곳은 진짜 메타버스다.”
이 시나리오는 공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도로 주행 기능은 이미 ‘마이크로소프트 포르자(Forza)’에서 구현되어 있고, 디지털 토지 개념은 이미 블록체인 기반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실험되고 있으며, NFT를 활용한 자산 소유권, 가상 직업을 통한 경제 활동은 현실과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그렇기에 그란 투리스모는 단지 빠른 차를 몰고 우승하는 게임이 아니라, 현실과 가상의 접점을 실험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이 실험이 성공하는 날, 우리는 메타버스를 ‘꿈’이 아닌 ‘일상’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일본은 결코 빠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단 하나, 'IP(지식재산권)의 보고(寶庫)'이기 때문이다. 그 대표주자가 바로 건담(Gundam)이다. 단순한 로봇 애니메이션을 넘어, ‘파일럿이 된다는 상상’을 현실로 끌어올린 전설적 콘텐츠.
2023년 10월, 반다이남코는 ‘건프라 콜로니(Gunpla Colony)’라는 이름의 메타버스 프로젝트를 시범 오픈했다. 그리고 지금, 2025년 4월부터 ‘건담 메타버스 4차 개방’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글로벌 테스트에 돌입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가상의 공간 구현을 넘어서, 현실과 가상을 완전히 잇는 콘텐츠 생태계를 지향한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스토리와의 연동
실물 건프라(프라모델) 조립 후, 스캔을 통해 메타버스 내로 가져오는 ‘디지털 트윈’ 기능
가상 공간 내 EC 쇼핑몰에서의 실물 제품 구매
글로벌 유저와 실시간으로 소통 가능한 AI 비서 ‘메로우(Mellow)’, 자동 번역과 음성 지원 기능 포함
하츠네 미쿠와의 가상 콜라보 공연, 유저가 직접 전시하는 디지털 디오라마 콘테스트 등 풍부한 문화 콘텐츠
이 모든 것이 하나의 IP를 중심으로 촘촘하게 설계된 메타버스 경험이다. 이것이 바로 일본이 가진 ‘IP 광산’ 산업 모델의 진정한 힘이다. 말 그대로, 일본은 세대와 장르를 초월한 IP의 천국이다.
슬램덩크: 단순한 농구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팬들의 열광은 이제 가상 리그로 이어질 수 있다. 유저가 선수가 되어 직접 경기를 치르고, 전략을 짜고,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농구 메타버스로의 확장이 가능하다.
드래곤볼: 손오공이 되어 우주를 여행하고 전투를 벌이며 전설의 아이템을 찾는 전투형 MMO 메타버스는 팬들의 상상 그 자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유저가 치히로가 되어 정령의 마을을 탐험하고, 퍼즐과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서사형 탐험 메타버스로 구현될 수 있다.
이웃집 토토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너의 이름은: 각기 다른 감성과 분위기를 가진 이 작품들은, 사용자가 감정과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세계를 탐험하는 감성형 메타버스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
이 IP들은 단순히 ‘인기 있는 콘텐츠’가 아니다. ‘살고 싶은 세계’를 만들어낸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기술이라는 무대를 만나며 현실 너머의 삶이 되어가고 있다.
메타버스란 단순히 보는 공간이 아니라, 세계관에 몰입하고, 내가 누구인지를 다시 정의하며, 내가 쓰는 이야기로 살아가는 공간이다.
일본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메타버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단지 기술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이제 그 이야기들이 기술과 손을 맞잡고 현실로 넘어오고 있다.
우리는 그 문턱 앞에 서 있다. 그리고 그 세계는, 이미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캐릭터들은 이미 수많은 게이머의 인생에 깊이 각인돼 있다. 여기에 스토리를 더하고, 영상화하고, 유저 참여형 콘텐츠로 확장한다면 가능해진다. 소니는 게임을 넘어, ‘하나의 살아 있는 세계’를 만드는 능력을 이미 손에 쥐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흐름은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된다. 마블이 ‘멀티버스’를 만들어 슈퍼히어로의 세계를 확장했다면, 소니는 ‘게임 유니버스’를 만들어, 플레이어의 세계를 현실로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놓인 것은 다름 아닌,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플랫폼과, 그 위에 올라탄 수많은 명작들이다.
제페토 이후, 국내 메타버스 시장은 정체 상태다. 한때 ‘메타버스 열풍’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기업들이 뒤따라 뛰어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비슷한 공간’이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모두가 누군가를 모방하고, 아무도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망하기엔 이르다. 우리에게도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
로보트 태권 V, 한국형 슈퍼히어로의 원형
영실업의 변신로봇, 다양한 트랜스포머 캐릭터와 세계관
뽀로로, 전 세계 유아 콘텐츠 시장에서 통하는 글로벌 캐릭터
이 IP들이 단지 ‘애니메이션 콘텐츠’로만 소비되고 끝난다면, 그건 시대적 가능성을 놓치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이 캐릭터들에게 세계관을 주고, 사용자가 참여하고 창조할 수 있는 구조로 확장하는 것.
예를 들어, 태권 V의 가상 도시를 만들고, 사용자가 파일럿이 되어 직접 로봇을 조종하며, 현실과 연동되는 아이템 거래나 임무 수행을 통해 경제를 움직이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한국형 메타버스의 시작 아닐까.
메타버스는 단지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문화와 상상력,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서사’를 담는 디지털 생태계다.
우리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문제는 따라 할 것인가, 새로 만들 것인가의 선택에 달려 있다.
기술은 언제나 사람보다 먼저 도착한다.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인공지능도 처음에는 너무 빨라서 낯설었고, 때로는 두려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익숙해지고, 기술은 일상이 되었다.
메타버스도 마찬가지다. 핵심은 ‘기술이 얼마나 앞서 있는가’가 아니라,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무엇을 위해 사용하는가’다.
소니는 이 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듯 보인다.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누구든 ‘현실에서 이룰 수 없던 일’을 가상에서 시도할 수 있고, 그 시도가 삶의 가능성을 넓히는 진짜 경험이 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메타버스의 본질이며, 기술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지금 우리가 본 그란 투리스모는 ‘레이싱 게임의 실사화’가 아니라, 소니가 준비 중인 새로운 세상의 예고편이다. 그 예고편 속에서 나는 본다. 게임이 세계가 되고, 캐릭터가 현실을 바꾸고, 현실의 제약을 넘어선 가능성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장면들을.
소니의 메타버스는 이제 막 첫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그 다음 장면을 완성하는 주인공은 단순한 개발자나 투자자가 아니라, 상상할 줄 알고,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이다.
이제 메타버스는 먼 미래가 아니다.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어도 그 문 앞에 서 있다.
'그 세계를 열 준비가 되었는가?'
내가 상상하고, 내가 만들어야 할, 다음 세상이 바로 '메타버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