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후반, 교정을 선택했다

교정을 시작하며 알게 된 씹는 즐거움의 의미

by 광화문덕

아침 공기가 유난히 얇았다.

겨울과 봄의 경계쯤 되는 날씨, 차가운 듯하다가도 햇빛이 닿는 순간 괜히 마음이 느슨해지는 그런 아침이었다. 출근길 인도에는 전날 밤의 비가 아직 마르지 않아, 신발 바닥이 천천히 시간을 끌며 바닥을 떼고 붙였다. 척, 척. 마치 시간을 일부러 늘이는 걸음처럼. 나는 그 리듬에 맞춰 걸었다.


요즘은 무엇이든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씹는 것처럼, 걷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처럼.


40대 후반에 교정을 시작했다고? 왜 하필 지금이에요?”
요즘 나를 만나는 사람들마다 꼭 한 번은 묻는 질문이다.


그 질문에는 늘 같은 뉘앙스가 섞여 있다.

'지금 와서 굳이?'

말로는 묻지만, 표정은 이미 답을 정해놓은 질문.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어금니가 깨지기 시작했거든요.”


처음 치과에 갔을 때, 의사는 내 치아를 꽤 오래 들여다보았다. 말없이 한참을 보다 고개를 들어 이렇게 말했다.

“부정교합이에요. 이대로 쓰면 어금니 발치까지 갈 수 있어요.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나중에 더 힘들어집니다.”


그때는 그러려니 했다. 늘 그렇듯, 경고는 쉽게 흘려보내졌다. 아직은 괜찮을 것 같았고, 아직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몸은 늘 그래왔다. 조금 아프다 말고, 또 괜찮아지는 척을 하니까.


그런데 1년 후, 다시 어금니가 깨졌다. 이번엔 더 분명했다. 심지어 붙여놓았던 금니가 찢어졌다. 단단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의외로 쉽게 망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실감했다.


다시 찾은 치과 병원. 그리고 진료가 시작되자 알게 된 사실 하나.

의사 선생님은 내 치아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내 이름과 나이가 적힌 진료 차트에는, 그날의 설명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부정교합으로 구조 개선 필요. 추후 발치 가능성 설명'


기억이라는 건 참 불공평하다. 몸은 모든 걸 기억하는데, 우리는 자주 잊는다. 통증이 사라지면, 경고도 함께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기록을 한다. 기록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하다. 내 기억은 사라져도, 기록은 남아서 다시 나를 불러 세워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다니는 중계동 은행사거리에 위치한 비타민치과는 ‘과잉진료를 하지 않는 곳’으로 동네에서 꽤 알려진 곳이다.

그런 곳에서, 그것도 두 번이나 같은 말을 들었다는 건 더 이상 우연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겁을 주는 말이라 생각했지만, 반복되자 그제야 심각성이 또렷해졌다.


그리고 3개월을 고민했다.


'교정'이라는 단어를 입안에서 굴려보며, 내 삶에 이걸 들여놓아도 될지 생각했다. 검색을 해보니 40대, 50대 교정 이야기가 의외로 많았다. 20대와 30대의 교정이 미용에 가까웠다면, 이 나이의 교정은 ‘버티는 구조’를 다시 세우는 일에 가까웠다. 노후를 대비하는 관리이자, 입안의 골조를 처음부터 다시 점검하는 결정이었다.


중계동에는 오래된 집들이 많다. 겉으로 보면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선뜻 들어가 보고 싶지 않은 집도 있다. 그런데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배관은 새로 교체되어 있고, 전선은 정리되어 있으며, 내부는 깔끔하고 아늑하게 리모델링되어 있다. 오래되어 보이지만, 그 어떤 새 집보다 튼튼하고 단단하게 시간을 견딜 준비를 마친 공간들이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치아도 그렇다는 것을.

치아에도 분명 수명이 있고,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남은 시간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사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구조가 더 중요하다는 이 단순한 진실이 그날따라 유난히 크게 다가왔다.

‘지금 고치지 않으면, 나중에 더 많이 잃을 수도 있겠구나.’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기왕 태어나서 경험할 수 있는 거 다 해보고 죽는 거지 뭐. 교정기도 경험해보면, 또 다른 깨달음 하나쯤 생기지 않겠어?'

꽤 그럴듯한 자기합리화였다.


결국 병원을 찾아가 교정을 하겠다고 말했다. 비용과 기간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고, 나는 거의 망설임 없이 “네”라고 답했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이 잠시 웃으며 말했다.


"너무 흔쾌히 답을 해주셔서 상담이 빨리 끝났네요"


나는 그대로 대답했다.

“무엇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비용에 대한 의심보다는 저를 치료해주시는 의사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요.”


내가 하려는 과정도 결국 치료다.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술보다 신뢰다. 그래야 아픔 속에서도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상담을 마치고, 다음 주가 되어 윗니에 탈부착 교정기를 달았다. 윗니 교정을 위한 사전 작업, 공간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했다. 뻐근했지만 참을 만했다. 밥을 먹을 때는 뺄 수 있었고, 통증 속에서도 천천히 씹으면 음식의 맛은 온전히 느껴졌다. 조심조심, 시간을 들여 씹었다.


그때까지는 몰랐다.

그게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그리고 3주 후가 되어 아랫니에 교정기를 붙였다.

그리고 3주 후, 아랫니에 교정기를 붙였다.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바로 그 장치. 동시에 어금니에는 파란색 물질이 붙었다. 교합 방지용 레진, 바이트 블록. 씹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였다.


“당분간 씹는 건 거의 안 된다고 보시면 돼요.”


의사 선생님은 걱정하듯 덧붙였다. 교정기가 떨어질 수 있으니 최대한 조심하라고. 나는 그 말을 불편하겠구나 정도로 이해했다. 그 불편함의 깊이를, 그때는 몰랐다.


그날 점심은 굶었다.

입안이 이물감으로 가득 차 입맛이 사라졌다. 그 불편함이 식욕을 이겼다.


그리고 저녁이 됐다.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배가 고팠다. 여전히 이물감은 심했지만, 부드러운 샌드위치와 우유라면 괜찮겠지 싶어 편의점 GS25에 들렀다. 햄에그 샌드위치와 1+1 우유. 나름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했다.


햄에그 샌드위치의 맛을 기대하며 한 입을 넣었는데 씹히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씹을 수가 없었다. 치아가 만나지 않았다. 기능이 사라진 느낌. 결국 3분의 1도 먹지 못하고, 같이 있던 분이 대신 먹어주었다.


그 순간, 또 하나의 깨달음이 마음에 또렷이 새겨졌다.

'아, 세상에 또 하나 감사해야 할 게 생겼구나'


그랬다. 씹는 즐거움이 있었기에 먹는 즐거움도 있었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얼마나 많은 기적 위에 놓여 있었는지, 그제야 알게 됐다. 우리는 흔히 살기 위해 먹는다고 말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행복이 섞여 있었다. 씹고, 느끼고, 저항을 넘기며 퍼지는 맛의 과정 자체가.


퇴근 후 집에 와서 다시 검색해보니 이런 조언이 있었다.

“죽, 카스타드, 마가렛트 녹여 드세요.”


'녹여 먹으라니...'


앞으로 2년. 씹는 즐거움은 기억 속에 존재하게 될 것 같다. 음식의 질감, 이를 통과하며 퍼지는 맛의 층위들. 벌써부터 그립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내가 좋아하는 탄 맛 강한 스타벅스 커피를 샀다. 교정기가 변색될까 봐 컵을 입 안 깊숙이 기울여 커피를 흘려 넣듯 마셨다. 아주 조심조심. 마치 인생의 후반부를 대하듯.


물론, 교정을 시작하고 좋은 점도 있다.

양치질을 수시로 하게 된다. 치아를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내 몸의 상태를 더 자주 확인하게 된다.


먹는 걸 조심하게 되니 술자리와 헤비한 식사도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아마 살도 조금 빠지겠지. 의도하지 않은 다이어트.


부득이하게 참석해야 하는 술자리에는 카스타드나 마가렛트를 챙겨갈까 고민하고 있다. 부드러운 계란찜 메뉴가 있다면 그걸 고르게 될 것 같다. 술은 안 마시거나, 덜 마시게 될 테니 그 또한 나쁘지 않다.


삶을 대하는 태도도 바뀌고 있다. 기자 시절, 늘 시간에 쫓기듯 식사하던 습관. 이제는 씹을 수 없으니 천천히 먹을 수밖에 없다. 서두르지 않게 된다.


서른일곱, 잘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왔을 때도 그랬다.
마흔일곱이 된 지금, 다시 돌아보게 되는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

'지금이라도 시작하게 되어 다행이다'


사 과정, 박사 과정을 시작할 때도 같은 깨달음을 가졌다. 세상에는 최소 2년 이상의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한 것들이 있다. 교정도 마찬가지다. 결국 시간과의 싸움인데, 미루다 보면 그 시기 자체를 놓치기 쉽다. 그래도 나는 시작했다는 사실 하나로 안도하게 된다.


모든 것은 그렇다.

'선택할 수 있는 시기를 지나치면, 선택지는 더 줄어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치아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인생 이야기였다. 이 나이에 시작하는 교정은, 예뻐지기 위함이 아니다. 더 오래 쓰기 위함이다. 덜 잃기 위함이다. 남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통과하기 위함이다.


오늘 창밖은 흐리다. 햇빛은 약하고, 바람은 차분하다. 딱 지금의 내 마음 같다. 불편하지만, 불행하지는 않은 상태. 잃어버린 즐거움 대신, 새로 생긴 감사가 있다.


나는 오늘도 최대한 긍정적으로 살아보려 한다. 씹지 못하는 시간을 견디며, 다시 씹을 날을 기다리듯. 이 마음이 오래 유지되길 바라며, 오늘 이 이야기를 남긴다.


'잘 선택했다. 하길 잘했다.

비록 씹지 못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 덕분에 또 한 번 ‘당연했던 것들’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

더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지금이라서 감사하다.

지금 고치지 않으면, 나중에 더 많이 잃을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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