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일, 일요일 아침
일요일 아침.
외투를 챙길까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아노락 쉐르파 후드티에 바지를 입고 집을 나섰다.
이상하게도 춥지 않을 것 같았다.
‘오늘은 그래도 되겠다’는, 근거 없는 확신 같은 것이 몸을 먼저 움직였다.
아파트 현관문을 여는 순간,
햇살이 쏟아졌다.
눈이 잠시 부실 만큼 선명한 빛.
바람만 불지 않는다면, 이건 봄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겨울의 옷차림인데, 햇살만은 계절을 앞질러 와 있었다.
마치 밤하늘의 별빛이 아침으로 옮겨온 것처럼, 공기가 반짝였다.
'봄이 왔구나'
혼잣말처럼 흘러나온 그 한마디가,
나 자신에게 건네는 봄인사처럼 들렸다.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아직은 분명 겨울인데,
콧가를 스치는 공기속에는 봄 냄새가 섞여 있었다.
확실하지 않은데도, 분명히 느껴지는 것.
그 애매한 감각이 묘하게 마음을 풀어주었다.
지난 한해의 수많은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러다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지난 한 해를 떠올리면, 쉽지 않았다.
새로운 부서, 새로운 업무.
익숙했던 언어들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자리에서,
다시 초보자가 된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노하우는 많지만 인성이 험한 사람도 있었고,
반대로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정말 천천히 나를 이끌어준 고마운 사람들도 있었다.
“차근차근 하다보면 금방 익숙해질거에요”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밤을 버티게 했는지 모른다.
또 어떤 동료들은 나와 너무 달라서, 오히려 잘 맞았다.
내가 못 보는 걸 그들이 보고,
그들이 지칠 때 내가 버팀목이 되어주던 관계.
보완재라는 말이 이렇게 따뜻할 수 있다는 걸,
그들과 함께 일하며 처음 알았다.
올한해를 돌이켜보면,
험한 인성을 가진 사람 때문에 오기가 생겼다.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는, 다짐에 가까운 고집.
인내로 안내해준 사람들 덕분에,
‘이직해야 하나’ 싶던 마음을 붙잡고 끝내 적응할 수 있었다.
결국, 험난했던 한 해는 그렇게 지나갔다.
돌이켜보면 웃을 수 있는 날보다 버텨낸 날이 훨씬 많았지만,
그래도 잘 지나왔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늘 아침은 충분히 감사했다.
올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웃는 날보다 시련의 날이 더 많을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인생이란 원래 고난의 연속이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건,
지금 이 순간,
몸도 마음도 크게 탈 없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가족이 건강하고, 나도 이렇게 햇살을 맞으며 걸을 수 있다는 것.
“이 정도면, 지난 한해도 잘 산거지”
누가 물은 것도 아닌데,
스스로에게 답을 해본다.
새해라는 건 결국 숫자에 불과하다.
1월 1일이 되었다고 마음속에 봄이 심어지는 건 아니다.
진짜 새해는,
이렇게 햇살이 바뀌고
공기의 온도가 달라지고
눈과 코와 귀, 오감이 먼저 계절의 변화를 알아챌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 같다.
살아보니 그렇다.
머리가 아니라, 감각이 먼저 아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일까.
오늘 아침, 이 햇살 앞에서야 비로소 마음이 움직였다.
괜히 다짐을 해보고 싶어지고,
괜히 기대를 품어보고 싶어졌다.
“이제 진짜 시작이네.”
누군가에게 말하듯, 또 나 자신에게 확인하듯.
이제야 한 해가 출발선에 선 느낌이다.
올 한 해는 과연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분명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걷는 아침이 있다는 것만으로
조금은 안심해본다.
봄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봄을 믿게 만드는 아침이 있다.
봄날은 늘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마음을 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