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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Mar 15. 2016

#45. 늦은 밤 들려오는 고함

원석을 가공하는 세공업자에 따라 최고등급이 될 수도 하품이 될 수도 있다

야!!!

고함이 들린다. 뭔일인가 싶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쳐다봤다. 후배가 수습보고를 받다가 소리를 내지른 것이다.


지금 시각 밤 9시쯤. 후배는 "보고를 그따위밖에 못 하냐"며 두어 차례 더 소리쳤다. 회사 내에는 나와 다른 선배가 있었지만 그럼 건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수습 교육

사실 수습 기간은 기자로서 역량을 키우는 아주 중요한 시기다. 수습 기간에 잘 배워야 한다. 이 시기는 앞으로 좋은 기자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물론 이 기간 요령을 피우고 싶을 것이다. 수습 기간이 워낙 고되고 혹독해서다. 그런데 그건 사람 사이에서 온다기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온다. 잠과의 사투, 취재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 등이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과도하게 까칠하게 수습을 대하는 1진들이다. 교육차원이라는 명분은 있지만 화풀이로 비칠때면 씁쓸하다.


1진이 후배를 교육할 땐 개입할  없다. 불문율이다. 수습이 1진을 얕보거나 업신여기면 안되기 때문이다. 


물론 너무 감정적이라고 판단되면 캡, 바이스와 의논 후 해당 1진을 따로 불러 조용히 얘기하긴 한다. 그렇다고 고쳐질지는 의문이다.


이 기간 요령을 피우면...

이 기간 누군가의 비호를 받아 교육을 받을 기회를 잃게 되면 기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어렵다. 실제로 이런 안 좋은 사례를 목격하기도 했다.


1진이 되면 선배들이 크게 개입하지 않아 혼자서 성장해야 한다. 기사 쓰기 실력도 혼자서 키워야 한다. 그런데 기사 쓰기 독학은 웬만큼 독하게 하지 않으면 늘지 않는다. 자칫하면 글쓰기 내공은 쌓이지 않은 체 연차만 쌓이게 된다.

수습...

수습은 앞으로 이 회사를 이끌어갈 주역이다. 수습은 회사가 발견한 거친 원석과도 같다. 이를 가공해 보석을 만드는 것은 선배의 몫이다. 어떤 선배를 만나느냐가 중요한 이유다.


마치 원석을 가공하는 세공업자에 따라 최고등급이 되기도 하고, 하품이 되기도 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후배에게 배운다

내 경우 후배를 통해 많이 배운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미션을 주었음에도 잠입취재에 성공했던 후배,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눴던 대화 녹취까지 성공한 보고를 받고는 나보다 낫다는 생각까지 했다.


한 번은 지하철에서 사건현장으로 수습과 같이 뛸 때가 있었는데 무거워진 몸 탓에 날쌘 후배와 점점 멀어짐을 느꼈을 때도 있다. 내가 많이 느려졌구나란 깨달음을 얻었고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무뎌진 내 몸이 한심하기까지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후배의 고함을 듣고 또 하나 배웠다. 후배 덕택에 후배를 더 잘 가르쳐야 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후배들을 지켜보며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인생에 스승은 모든 만물에 녹아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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