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화문덕 Apr 18. 2016

글쓰기는 친절해야 한다

고급 일식집에 갔다가 메뉴판을 보고 놀란 사연

여기 가볼까?

한 일식집을 찾았다. 인테리어가 고급스러워 들어가 보기로 했다. 안내하는 직원부터 주문을 받는 직원까지 모두 정말 친절했다. 중간 중간에 실례되지 않게 더 필요한 것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까지 서비스는 정말 나무랄 데 없었다. 


특히, 기획 세트메뉴에 포함된 '사포로' 생맥주 한 잔의 풍미는 최상급이었다.

하지만...

이 가게는 메뉴판이 내가 본 식당 중에 최악이었다. 정말 불친절한 메뉴판이었다. 메뉴판을 펼치자마자 머리가 아파졌다. 

일본식 느낌을 주기 위해 세로쓰기를 택한 것, 알 수 없는 일본식 이름으로 가득한 음식명 등 때문이었다. 심지어 생소한 음식들이었는데 사진조차 없었다. 상세한 설명도 일본식이라서 도무지 무엇을 시켜야 할지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함께 간 동생과 나는 메뉴판 독해를 포기하고, '안심 돈가스'와 '등심 돈가스'를 각각 시켰다. 


고급 일식집에 가서 우리는 흔하디흔한 돈가스를 시키게 된 것이다. 이 가게의 야심작이 뭔지 알 방법이 없었다.


물론 직원에게 설명을 부탁할 수도 있었으나, 가볍게 한잔 하러 왔다는 것과 해당 시간 밀려오는 주문에 직원이 너무 바빠 보여 굳이 부르지 않았다.

주객전도

메뉴판의 목적은 손님에게 자신들이 만들 수 있는 음식들을 아주 쉽게 설명해주는 것이다. 주인이 일일이 다 설명할 수 없으니 메뉴판을 통해 전달해야 한다.


사실 메뉴판은 매출과도 직결된다. 손님이 더 고가의 메뉴를 주문할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메뉴판을 설계할 필요도 있다.


그런데 이 가게의 메뉴판은 이런 점에서 빵점이다. 아니 쓰레기통에 당장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글씨는 너무 작아 가까이 눈을 가져갔음에도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알 수도 없는 일본어의 혼용은 고객인 나를 매우 혼란스럽게 했다. 

자기만족

읽는 것은 손님인데 주인 마음에만 든다면 그게 어찌 메뉴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주인의 자기만족의 결과물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메뉴판에 글을 쓴다는 것. 이 역시도 글쓰기다. 우리 삶의 곳곳에 글쓰기는 녹아들어가 있다. 다만, 우리가 글쓰기라고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계산하고 나오면서 살짝 망설였다. 메뉴판을 좀 바꿔보시는 게 어떻냐고... 오지랖을 펴보려고 했지만, 포기했다. 괜히 이야기 했다가 주인의 기분만 상하게 할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난 그날 이후로 그 가게는 두번 다시 찾지 않는다. 주위에는 더 친절한 메뉴판을 가진 일식집이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이전 22화 글쓰기 영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