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듯 무심 아닌 무심 같은' 화법의 소유자
안녕하십니까!
출근 첫 날. 낯선 사무실에 앉아있다. 아니 바짝 쫄아 있다. 회사 안에는 나보다 6개월 먼저 입사했다는 선배와 국·부장들이 일하고 있다. 온라인 국장과 경제 산업 데스크, 공시 담당 내근자 등이다.
이 중에서 내 수습교육은 면접 때 대표와 함께 들어왔던 산업부장이 맡았다. 작은 체구에 살짝 탈모가 진행 중인 모습이 인상적이다. 툭툭 내뱉는 말 속에 정이 느껴진다. 무심한 듯하지만, 배려가 묻어난다.
이거 3줄로 처리해봐
부장이 보도자료를 던져줬다. 한 화장품 업체가 보내온 보도자료다. 엄밀히 말하면 화장품 홍보대행사가 작성해서 클라이언트인 화장품 홍보실 확인을 받은 뒤 기자들에게 뿌린 자료다. 자료를 받을 대상을 선별한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검색해 관련 내용을 쓴 기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보낸 것이니 뿌렸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내용은 현란했다. 지극히 주관적인 표현이 난무했다. 온갖 형용사란 형용사는 다 들어가 있다. 외래어와 신조어 등도 혼재돼있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했다.
글을 고쳐봤다. 이상했다. 또다시 고쳤다. 그래도 이상했다. 내가 흔히 지면에서 보던 기사가 아니었다. 주관적인 표현이 너무 많았다. 어디를 살리고 어디까지 버려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머리가 아파져 왔다.
쓰고 다시 쓰기를 수십 차례... 결국에는 기사 작성을 포기하고 멍을 때렸다. 멘탈 붕괴가 왔다. 옆에 부장의 눈총이 느껴졌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스트레칭을 하는 듯하면서 고개를 우측으로 살짝 돌려 부장을 쳐다봤다. '헉'...... 부장과 눈이 마주쳤다. 아니나 다를까 부장이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가져와봐
부장은 나를 재촉했다. 하긴 그럴만했다. 보도자료 하나 처리하는데 1시간 넘게 끙끙 앓고 있었으니 답답해 할만했다.
지금까지 썼던 것 중에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한 글을 쪽지로 보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기사가 아니라 홍보 자료였다. 기존 보도자료에서 낯뜨거운 수식어를 삭제한 수준이었다.
이게 기사냐?
일침이 날라왔다. 그리고 부장 특유의 무심함으로 포장된 애정이 어린 첨삭이 시작됐다. 부장은 바쁜 와중에도 선배 기자들에게 나를 떠 미루지(?) 않고 직접 기사교육을 해줬다.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나의 글쓰기 첫 스승과의 인연은 시작됐다. 무심한 듯하면서도 무심하지 않은 말투, 그러다가도 무심한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는 오묘한 화법을 구사하는 부장이었다.
첨삭해 줄 땐 내가 작성한 초안을 프린트해서 빨간 펜으로 하나하나 짚어주며 고쳐주셨다. 때론 묵묵히 글을 고친 뒤 내게 바뀐 내용을 숙지하도록 했다. 과외선생님처럼...
휴 다행이다...
이전 인턴시절 때의 회사와는 확연히 달랐다. 기자들도 당시 40명 가량됐고 저마다 좋은 기사를 발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매일 오전 오후 보고에 올라오는 정보보고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사소한 정보라도 전 기자들에게 공유됐다. 각 부서의 일정도 함께 공유됐다. 협업이 가능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젊은 조직이었다. 정보의 흐름은 막힘이 없었다. 뉴미디어의 현장을 피부로 느꼈다.
모두가 고급 정보를 얻어오기 위해 취재원들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정보를 몰래 약탈하듯 외부로 유출하는 이들도 없었다. 기자에게 있어 자신이 힘들게 건져 보고한 정보보고가 외부로 유출돼 찌라시 형태로 도는 것만큼 빡치는 것은 없다.
더는
잘 가르쳐주지 않을 거야
어느 날인가 부장이 날 불러놓고 이런 이야길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르쳐놓으면 이직을 해서 지쳤다고 했다. 앙탈같이 느껴졌다. 마치 '넌 내가 이렇게 애정을 쏟으니 나가지 마라'라는 말이 함축된 것 같았다.
알아보니 여기서 2년 정도 일하다가 상위 매체로 이직한 이들이 쫌 있었다. 이들 대부분이 부장이 애정을 가지고 가르친 제자 겸 후배였다.
지금 내게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애정을 쏟았는데 나가버리면 나라도 상처가 될 것 같았다.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주제넘게도...
이직?
마이너 기자에게 이직은 숙명이다. 매체가 성장하는 것은 메이저 기자와 경쟁해도 손색없을 만큼 열심히 뛰는 기자 덕분이다. 당연히 그런 인재는 주목받게 돼 있고 여기저기서 이직 제안이 들어온다. 이직 제안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본인의 기자로서 경쟁력을 의심해봐야 한다.
이처럼 흔히 말하는 경력 이직은 일 좀 하는 기자들이 대상이 된다. 일반 직장인과는 달리 기자들의 이직은 굉장히 활발하다. 종합편성채널의 등장으로 이직 판은 더욱 커졌다.
출입처에서 단독을 수시로 뽑아내는 선수로 분류되거나 동료 기자들에게 기사 잘 쓰고 인품 좋다고 추천을 받는 기자는 수없는 러브콜을 받는 구조다.
기자들의 이직은 대부분 특채 형식으로 진행된다. 경력공채는 특채로 채우지 못한 부분을 뽑기 위한 과정이라고 난 생각한다.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평판이 중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직하려면 평판 관리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일도 못 하면서 평판관리만 한다면 오히려 역풍을 맞기 십상이다. 동료 기자들이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자에게 타사 기사 모니터링은 일상이다. 단독은 못하더라도 낙종은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이 바닥의 기존 룰이다.
밥 먹으러 가자
수습 동안 내근하면서 부장과 단둘이 점심을 자주 먹었다. 그러면서 정도 많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귀찮았을 텐데'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당시 부장은 그런 내색 하나 없이 날 기자로 성장하기 위한 토양을 만들어주셨다. 좋은 기자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옳고 그름에 대한 잣대도 알려주셨다. 이것 역시 차차 풀어보겠다.
부장은 외부 사람들에게 무리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적당한 선을 늘 지키는 편이었다. 산업부장이란 자리. 특히 마이너 매체의 이 자리는 참 힘든 자리다. 회사의 먹을거리인 광고 수주 압박이 가장 심한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기억엔 구악 같은 부장의 모습은 없다. 구악이란 9가지 악을 행하는 기자를 지칭한다고 들었다. 즉, 기자라는 직위를 이용해 사적 이득을 취하는 이들을 말한다. 내가 현장에서 보고 들었던 구악 기자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풀어볼 기회를 마련하겠다.
첫 출근 날은 그렇게 저물어갔다.
다음 주에 계속...
에필로그
"마이너 기자라고 인성까지 마이너는 아닙니다. 메이저 기자라고 모두 다 인격이 메이저는 아닙니다".
제가 마이너부터 메이저까지 다 겪어봤기 때문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기자로서의 인격은 어떻게 배웠느냐가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면에서 전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어쩌면 두 번의 인턴 실패 덕택일지도 모릅니다. 하늘이 제가 너무 불쌍해서 좋은 스승님을 만나게 해 주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앞으로 첫 스승님에 대한 이야기는 자주 언급될 것입니다. 저를 제대로 된 기자가 될 수 있게 밑그림을 그려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외에도 많은 선배가 절 아껴주시고 이끌어주셨습니다. 그분들에 대한 이야기도 곧 풀어내겠습니다.
이번 편에서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작은 회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이들과 함께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기억해주세요. ^^
저는 매주 1회를 목표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댓글을 보다 보면 더 열심히 써봐야겠다는 의욕이 생깁니다. 제 이야기를 기다려 주시는 분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냥 미룰 수 없겠더라고요. ^^
'기자가 시간이 남아서 이런 글을 쓰나?'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글쓰기가 제 취미생활이고 유일한 낙입니다.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집안일 마무리한 뒤인 밤 11시쯤 이후부터, 주말에 글을 씁니다. 만취해도 이야기가 떠오르면 휴대전화를 켜고 메모를 합니다. 제 삶 속에서 소재를 찾는 기쁨이 무엇인지 요즘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어깨에 힘 빼고 진솔한 이야기를 담도록 늘 고민하겠습니다. 관심과 사랑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