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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Dec 17. 2015

#31. 첫 이직 제안이 들어오다

일에 미쳐 살다보니 찾아온 기회...나를 냉철하게 평가해야 했다

나랑 같이 일하자

예상치 못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입사한 지 11개월째가 됐을 때다. 선배는 다짜고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당황스러웠지만, 매우 기뻤다. 그 매체는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보다 인지도가 높은 곳이었다. 오래 다닐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선배 혹시 잘 못 전화하신거 아니세요?"


선배께 되물었다. 혹시 전화를 잘 못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 1년도 안 된 나였기에...


"응. 너한테 전화한 거 맞아!"


"저... 선배... 저 아직 입사한 지 1년이 안돼서요;;;;"


"상관없어. 올거야 말거야?" 선배는 내 연차 따위는 관심없다는 투였다.


하지만 난 선뜻 답을 할 수 없었다.

"선배 너무 갑작스럽고 선배께 누가 될까봐 겁나서 제게 시간을 좀 주시겠어요?"


"응 그래. 빨리 답 줘"


"네..."


선배와 전화를 끊고 나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1년도 안됐는데 이직 제안이라니. 꿈만 같았다. 제멋대로 쿵쾅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었다.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너무도 기쁜 긴장감...


내게 제안을 해주신 선배는 평소 나와 대화를 많이 나누던 선배였다. 하지만, 난 그 선배에게 이직하고 싶다는 말을 단 한 번도 꺼낸 적은 없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난 이직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다니던 회사에 만족다. 비록 작은 신생매체였지만, 회사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희열을 느끼고 있어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사실 그 회사에서 뼈를 묻어야 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흔들림과 갈등

첫 이직 제안은 태풍 같이 내 모든 것을 뒤흔들어 놨다.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이직. 하지만 내 생애 마지막 제안일 수 있다는 불안감에 며칠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민에 빠졌다.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고, 어떻게 해야하는 지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말그대로 '끙끙' 앓았다. 속시원히 상담할 수도 없었다...


그러면서 난 냉정하게 내 자신을 돌아봤다... 내가 기자로서 자질이 있는지에 대해서 되물었다. 이직을 하게 되면 새로운 회사에서 인정을 받아서 살아남아야 한다. '과연 내가 그런 능력이 있는가?'에 대해 냉철하게 판단해야 했다.

자문자답

내게 묻고 답하길 반복하며 당시 내가 얻은 결과다.


질문1> 기자는 기사로 말해야 한다. 내 기사는 어떤가?


답변1> 난 기사를 잘 못쓴다. 취재는 저돌적으로 하고 있긴 하다. 그런데 지면에 기사를 쓰려면 취재도 그렇지만, 필력이 중요하다. 난 기사 공부를 더 해야 한다. ---->>>> 이직 부적합


질문2>  선배는 나를 아끼고 있다. 함께 일할 정도로 내게서 장점을 발견한 것이다. 선배에게 내가 누가 되지는 않을까?


답변2> 선배가 날 추천해서 데려갔는데, 내가 일을 못하면 선배가 욕을 먹는다. 나 때문에 선배의 회사 입지가 줄어들 수 있다. 기사를 잘 써야 하는데 못쓰면, 선배가 내 기사를 보느라 선배 일을 못한다. 결국 난 선배에게 짐만 될 가능성이 크다. ---->>>> 이직 부적합


질문3> 이 회사는 수험생인 나를 기자로 만들어줬다. 1차 서류에서 광탈하던 내게 기회를 준 고마운 회사다. 이 회사에 난 최소한의 의리는 지켜야 하지 않나?


답변3> 난 아직 이 회사에서 은혜를 갚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기자들은 보통 2년차때 이직을 한다. 적어도 2년은 이 회사가 나로 인해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나를 기자로 세상에 발을 내딛게 해준 회사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한다. ---->>>> 이직 부적합


<결론> 이직 부적합...


아무리 생각해도 '이직 부적합'이라는 결론만 나왔다. 2000만 원짜리 연봉을 받는 기자... 나름 업계에서 대우를 받는 매체에서의 이직 제안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거기로 갔다면 연봉 1000만원 이상은 더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양심은 있었다. 선뜻 응할 수 없었다. 적어도 이직에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내게는 그런 명분이 없었다.

따르르릉~!

며칠 동안 고심한 끝에 선배께 전화를 걸었다.


"선배 저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만 2년이 안돼서요. 선배가 아시다시피 기사도 너무 못써서 선배께 짐만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1년 동안 열심히 배워서 선배께 누가 되지 않는 기자가 될게요. 그때 다시 불러주시면 안될까요?"


"자식... 알았다..." 선배는 실망한듯했지만, 흔쾌히 내 결정을 수용해 주셨다.


첫 이직 제안은 이렇게 마무리 됐다. 그리고 얼마 뒤 엉클리 선배가 그 회사로 이직했다. 엉클리 선배는 당시 경력으로 입사한 모 팀장과 마찰이 생겨 회사를 그만 두고 싶어다. 귀한 이직 기회가 그걸 원하는 선배에게 것은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소중한 기회를 내게 먼저 준 선배께 늘 감사한 마음이다.


에필로그

정말 예상치 못했던 제안이었습니다. 만 1년이 안됐지만, 주변 선배들이 절 좋게 생각해주시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제가 노력한 만큼 인정받고 있구나란 생각에 더 열심히 일하면 되겠다는 확신이 생긴 계기였습니다.

당시 전 일중독이라고 불릴 만큼 끊임없이 일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전까지 일만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그때랑 비교하면 정말 널널하게 일하고 있는거죠. 제 삶의 200%를 일에 몰두했으니까요. 지금은 제 삶의 에너지를 아내와 아들에게 분배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만 2년이 될 때까지 총 8곳으로부터 이직 제안을 받았습니다. 경제지라고 불리는 곳은 거의 모든 곳에서 이직 제안을 받았죠.

물론, 제가 말한 이직 제안은 팀장급 선배가 "나랑 같이 일해볼래?" 정도였습니다. 제가 "네"라고 말한다고 해서 붙었으리라는 장담은 할 수 없죠. 그래도 제안은 제안이니까요.

어떻게 그렇게 많은 제안을 받을 수 있었느냐고 물어보신다면... 이전에 말씀드린대로 '버티기'였습니다. 힘들때일수록 일에 더 몰두했고, 무시당할수록 더 좋은 기사를 쓰려고 뛰고 또 뛰었습니다. 쉽게 쓴 기사는 남들도 다 쓸 수 있기에 현장이 녹아 있는 기사를 쓰려고 했습니다.

혹시 이직을 고민하고 있는데, 이직 제안이 안와서 불안해 하는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 지금 하시는 일에 완전히 몰입하고 있는지요?
Q> 주변에서 데리고 오고 싶다고 할 정도로 그 일에 미쳐 있으신지요?

전 당시 정말 '취재'에 미쳐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그때처럼 해보라고 하면 못할 정도로 말이죠.

지금 제가 미쳐있는 것은 다들 아시겠지만! '글쓰기'입니다. 요즘은 글쓰는 게 정말 행복합니다. 글을 쓰면서 힐링이 된다고 할까요. 스트레스가 글을 쓰면서 풀리는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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