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화문덕 Dec 02. 2015

#29. 첫 해외출장..라스베이거스

회사는 일 안 하는 기자를 긴장시키기 위해 날 이용했다

오늘 시간 되니?

띵동. 메신저가 떴다. 팀장이다. 오늘 시간 좀 내라는 지시다. 그러겠다고 했다. 무슨 일인가 걱정됐다.


'최근에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었나...?'

여의도 인근 맥줏집

팀장이 내 앞에 앉아 있다. 팀장의 얼굴이 무겁다. 평소 잘 웃었는데 이날은 달랐다. 잠시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팀장은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번 출장 네가 가야겠다"


"네???"


당황했다. 밑도 끝도 없었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외지에서 나 혼자 기사 아이템을 잡고 기사를 써야 한다는 두려움...


"근데... 전... 아직 기사도 잘..."


팀장은 단호했다.


"나도 알아... 그래도 네 1진을 긴장시키려면 이것뿐이야. 부장하고 대표한테는 내가 잘 말할 테니. 넌 무조건 가겠다고 해."


"네..."


사실 미국! 그중에서도 라스베이거스를 가본다는 생각에 조금 들뜨긴 했다. 그전까지 한 번도 외국에 나가 본 적 없던 나였기에... 미국이란 나라는 더욱 특별해 보였다.

너 르포가 뭔지는 아니?

부장이 내게 물었다.


"그게.. 저..... 음...."


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부장의 눈빛은 불안해 보였다. 나를 홀로 중요한 해외출장을 보낸다는 것이 못 미덥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어쩌면 회사의 도박이었다. 일 안 하는 후배를 자극하기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1년 차 막내를 중요한 출장에 보낸다는 것이... 어쩌면 1진은 이번 일로 큰 상처를 받고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도 있음에도...

기사 계획서 작성해서 보고해

"네???"


부장은 대표에게 보고해야 한다며 기사계획서를 요구했다. 결국, 나를 보내기로 부장도 결심한 듯했다.


팀장과 상의한 뒤 기사 계획서를 작성했다. 너무 기사 계획을 빡세게 잡은 것 같아 좀 불만이었지만 따라야 했다.

르포 공부해

부장은 여전히 불안했는지 내게 거듭 강조했다. 르포기사 공부할 것을...

잘 하고 올 수 있지?

며칠 뒤 대표도 불안한지 나를 불러 말했다.


"너 라스베이거스 간다며! 오!!! 첫 출장 좋은 데로 간다"


여기저기서 선배들이 날 놀려댔다.


이제 출장이 확정됐다는 게 실감이 났다. 그제야 부담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나를 지켜보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부담 백배다.


선배들과 팀장, 부장, 심지어 대표까지... 회사 모든 이들이 날 지켜봤다.


너 뭐냐?

낭만허세가 나를 불러 쏘아붙이듯 말했다.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그도 그럴 만했다. 사내에서 그의 평판은 이번 일로 추락했다. 이제 갓 만 1년이 넘은 후배한테 출입처 출장을 뺏긴 무능한 1진이 됐다.

새로운 인연

낭만허세에게는 죄송하게도... 이 출장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기자로서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롤모델이 되는 그런 귀인을 만났다.


기자는 출장을 다녀오면 함께 다녀온 기자들과 급격히 가까워진다...


에필로그
사실 조직이란 게 그렇습니다. 돈을 주는 것 이상으로 성과를 뽑아내려고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죠.

그런데 사실 수동적인 분들도 꽤 많습니다. 그렇다 보면 회사에서 선택할 방법은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자극을 줘서 일하도록 하거나, 잉여인력으로 포기하거나.

당시 저는 자극제로 활용된 것 같습니다.

"후배가 이만큼 열심히 해서 인정받아 선배를 제치고 출장을 간다. 그러니 열심히 해라."

이런 식이죠. 물론 야비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앞에서 대놓고 얘기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또 하나!!! 이번 편에서 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바로 인연에 대한 것입니다. 인연은 늘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만나게 되더군요. 돌이켜보면 지난 8년 동안 늘 그래 왔던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도 우연히 알게 돼 5년 동안 연을 맺어온 동갑내기 친구와 맥주 한 잔을 했거든요.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요즘 정말 고민하던 것에 대한 명쾌한 답을 얻었습니다. 정말 이 친구에게 그런 답을 얻고자 만나자고 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오랜만에 얼굴 한번 보자는 정도였는데 말이죠.

살면 살수록 인생은 참 신기한 것 같습니다. 친구 덕분에 아주 명확해졌습니다. 생각해보니 참 어리석은 일로 고민하고 있었더라고요. 그 친구의 답변이야말로 '우문현답'입니다.

기자 일을 시작하면서 저는 곳곳에서 귀인을 만나게 되고 깨달음을 얻고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귀인은 누구인가요?"
이전 23화 #28. 게으름뱅이 낭만허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