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화문덕 Jul 20. 2016

#58. 돌아오지마

부적응자로 낙인찍히면 넌 끝이야

형님 잘 지내시죠?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


"응 넌 요새 어떻게 지내니?"


"저는 뭐 경제부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동진아 잠깐만..."

전화기 너머로

"형 전화 좀 받아봐요"


"누군데???"


"아유 그냥 좀 받아봐요"


"여보세요?" 다정다감한 목소리. 첫 회사에서 내가 모셨던 팀장이었다.


"네 선배, 아니 형님! 잘 지내셨죠? 형님 회사 옮기셨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저 동진이에요"


"아! 그래 동진아 반갑다. 잘 지냈니?"


그렇게 우리는 10여 분을 대화했다.


그러면서 예전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유력 경제지로 이직하고 적응 못 하고 있었을 때....

2011년 4월 어느 날...

당시에 난 이직에 성공했다. 사상 유례없는 파격적인 이직 제안을 받고 난 회사를 옮겼다.


업계에서는 놀라워했다. 한번에 이직하기에는 매체력의 차이가 너무 컸던 탓이다. 이직을 꿈꾸는 이들 사이에서 내 사례는 회자됐다. 어떤 이는 내가 자신의 롤모델이라며 인사를 청하기도 했다...


보기와는 다르게 당시 내겐 굉장히 힘든 시기였다. 보도자료 하나도 제대로 처리 못 한다고 엄청 욕을 먹었던 시기였다.


즉, 글쓰기에 대해서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다. 의욕만 가지고는 신문 지면을 채워나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전 회사가 너무 그리웠다

이전 회사에서 모시던 팀장은 늘 내게 칭찬만 해줬다.


"잘하고 있어. 그렇게 하면 돼"라며. 늘 내 사기를 붇돋워줬다. 사실 난 거기서 내가 최고라고까지 착각하기도 했다. 모두가 내게 칭찬만 해줘서다.


당시 난 글쓰기에 대해 민할 게 없었다. 취재만 열심히 하면 됐다. 팀장이 부족한 내 글을 다 다듬어줬다.


하지만 이직한 회사는 달랐다. 용병임을 실감케했다. 당시 내 위에 있던 유력 경제지 팀장은 내게 가혹하리만큼 모질게 대했다. 인간 이하 대접은 물론이거니와 "근본 없는 온라인매체 출신"이라는 식의 멘트를 내게 빈번하게 날다.


유력 매체로 이직했다는 기쁨은 하룻밤의 꿈처럼 사라졌다. 일주일도 채 안 돼 난 지쳐갔다. 2주째가 됐을 때 '그만둬야 하나'를 진지하게 민하게 됐다. 


형 저 다시 돌아가도 돼요?

예전 회사 팀장한테 연락했다.


"저 제가 경솔했던 것 같아요. 전 이 회사에 있을 만한 그릇이 못 되는 것 같아요"


들끓던 자신감은 식은지 오래였고 자존감 마저 열등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선배는 그런 내 이야기을 묵묵히 듣다. 그리 선배는 친절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내게 말했다.

거기서 살아남아야 해

선배는 특유의 어투로 말을 이어갔다.


"네가 여기로 다시 온다면 내 입장에선 굉장히 좋지만, 너에게는 마이너스야. 옮긴 매체에서 적응하지 못한 '적응 기자'라는 수식어가 앞으로 네 삶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거야. 너가 이 회사로 다시 돌아오는 순간, 넌 업계 비웃음거리가 될 거야."


아직도 생생하다. 난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선배의 말이 구구절절 옳았기 때문이다.


이를 악물었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이 회사에 추천해준 선배들을 위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모두가 나를 지켜보고 있고, 그들을 실망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당시 선배의 충고가 없었다면... 선배가 내게 그만 두고 돌아오라고 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기자로서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친 선배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게 한 은인이기도 하다.

선배 감사해요

수화기 너머로 선배에게 다짜고짜 감사하다고 했다.


"하하하".


선배는 당황한 듯 멋적은 웃음소리를 냈다.


"선배가 기억하시죠. 선배가 예전 저를 잡아주지 않으셨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아 맞다. 그때 생각난다"


"선배 감사해요. 그동안 연락 너무 못드려서 죄송해요. 조만간 꼭 봬요"


"하하하 그래그래 안 본 지 너무 오래되긴 했다. 나도 네가 보고 싶구나"


다시 볼 날을 기약하며 대화를 끝냈다.


여운이 남았다. 첫 회사에 있었을 때 느꼈던 정들이 잔잔하게 전해지는 듯 했다.


여러 감정들내 기억 속에서 예전 팀장과의 추억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무서웠던 팀장의 첫인상, 아빠가 되면서 온화해진 팀장의 모습, 서울역 근처에서 팀장과 순댓국에 소주 한잔하며 "형, 동생"을 외치던 그 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만약 당시 그 선배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지 못했을 거야"라고...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좋은 인연이 늘 나와 함께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전 08화 #68. 그때를 기억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