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고민하지 않는다면, 글은 외면당하기 쉽다
글 좀 봐주세요
페이스북 '기자의 글쓰기' 구독자 한 분으로부터 요청이 들어왔다. 다행히 오늘 하루 가족과 함께하는 일정을 마친 상황이어서 글을 봐줄 시간이 됐다.
한 편의 글이었다. 길이는 3단락이었다.
내 경우 타인의 글을 봐줄 때 집중해서 읽지 않는다. 그렇다고 성의 없이 읽는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평소 글을 읽는 속도를 지키려고 할 뿐이다. 그래야 타인이 이 글을 읽을 정도의 수준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런데
몇 번을 읽었다. 멍했다.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유는 분명했다. 미괄식이었다.
기자인 나는 두괄식을 선호한다.
두괄식은 굉장히 배려가 있는 글이다. 첫 문장에 하고 싶은 말을 과감하게 언급함으로써 독자가 글을 계속 읽을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준다. 계속 읽겠다고 선택한 독자는 어떤 이야기를 할지 확인했으니,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를 예측하면서 읽을 수 있다.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의 경우에는 해당 글의 논거에 논리적 비약이 없는지, 자기 견해와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비교·분석하면서 읽을 수 있다.
미괄식
내 경험상 미괄식 구성을 하기 위해서는 굉장한 필력이 요구된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독자의 몰입을 이끌어내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첫 문장이 늘어지고, 뒤에 이어지는 문장과의 흐름도 매끄럽지 못하다면 독자는 멍해진다. 심각한 경우 독자는 배신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글을 읽으며 A라고 생각했는데, 생뚱맞게 B 또는 C의 결론이 나온다면 황당할 수 있어서다. 이 경우에는 글의 논리를 이끌어 가는 과정이 촘촘하지 못해서 그럴 것이다. 논리적 비약 등으로 문장 간의 긴밀성도 깨졌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렇게 되면 독자는 글을 읽으면서 '내가 이 글을 왜 읽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글에 몰입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내용이 안 읽혀요...
글을 봐달라고 의뢰한 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네? 내용이 안 읽힌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요???"
"좀 더 명확하게 글을 다듬어 주셨으면 해요"
난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글을 쓴 이유가 뭔가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죠?"
첫 문장은 그 이야기를 써야 해요. 만약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거라면, 분명하게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표현해줘야죠.
"'사과 먹고 싶니? 귤 먹고 싶니? 왜 먹고 싶니?'라고 물었다면, '사과가 먹고 싶다. 요즘 아침에 소화가 잘 안돼서 그렇다' 이런 식으로 답해야 하지 않을까요?"
첫 줄 기법 3가지
글의 첫 줄은 독자가 글을 읽을지 말지를 판단하게 해주는 중요한 도입부다. 기자는 첫 줄에 보통 3가지 패턴을 사용한다.
명쾌한 주장
현장 묘사
사례 제시
명쾌한 주장은 독자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주게 된다. 독자는 향후 이어지는 논거를 살펴가며 읽을 수 있다.
현장 묘사는 르포란 기사의 장르에서 주로 사용한다. 현장의 생생함을 전달하며 글의 메시지 전달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법이다. 때로는 참혹한 현장을 묘사해줌으로써 주제의식을 더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다.
사례 제시는 도입부에서 독자의 몰입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한다. 실제로 일어난 일화를 재구성해 전달함으로써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 낸 뒤에 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글을 구성한다. 사례를 먼저 접한 독자는 보다 쉽게 메시지에 공감한다.
첫 줄의 중요성
'일기'가 아닌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라면 분명해야 한다. 첫 줄은 그래서 중요하다.
독자가 공감할 수 없는 사족으로 가득한 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어서 대다수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문장 등은 쓰지 말아야 한다.
첫 줄은 명확해야 하고,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독자를 자신의 글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독자는 시간이 남아도는 이들이 아니다. 첫 줄을 위해 충분히 고민하지 않는다면, 글은 외면당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