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잘 알고 있지만 늘 망각하는 이것
아들 밥먹어야지!!!
육아를 할 때면 늘 요즘 직면하는 어려움은 바로 아들에게 밥먹이기다.
어떤 때에는 밥 한그릇 뚝딱하다가도, 어떤 날은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뜨는 것 자체가 어찌나 어려운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다.
그러다 오늘 문득 깨달은 게 있다. 나의 질문에는 패턴이 있었고, 질문에 따라 아들의 행동의 결과가 달라진 것은 아닐지... 내 자신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내 자아를 발견했다.
생각해보니 난 아들에게 보통 두 가지 형태로 질문하곤 했다.
아들 뭐 먹을래?
vs
아들 배고파?
얼핏보면 차이가 없는 것 같은 이 두가지 질문이지만, 질문을 놓고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고민해보면 정말 극과 극이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어쩌면 내 질문에 따라 아들이 보여준 행동 결과는 당연한 것일 수 있다는 이치에 이르렀다.
두 질문의 차이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아들 뭐먹을래?
먼저 이 질문은 참 배려가 부족하다. 나쁘게 이야기하면 매우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질문이다.
질문을 받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현재 떠오르는 무언가를 답해야 하는 상황이다. 먹기 싫어도 무언가를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란 것이다.
즉, 밥을 먹겠다고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이미 상대는 내가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고 무얼 먹을지 물어보는 상황인 셈이다.
"이미 아빠인 내가 밥을 먹기로 내가 결정했으니 넌 무얼 먹을지 의견을 내면 된다"는 고압적인 질문일 수 있다. 아들의 입장에선 말이다.
만약 상대 성인일 경우에 다짜고짜 "뭐먹을래?"라고 한다면 그는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먹고 싶지 않은데!"라거나 "지금은 별로 생각없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상대는 언짢아할 수 있다. 배고프지 않은 내게 뭐먹을지에 대해 강요하는 모양새가 너무 일방적이고 예의없는 질문인 것은 부정할 수 없어서다.
좀 더 확대해서 설명하자면, 이것은 공급자 측면의 일방적인 결정이 있고, 그걸 수요자에게 강요하는 모양새와 다를바 없다.
산업혁명 시대에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고리타분한 발상.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요즘도 공급자적 마인드로 수요자를 찾는 곳은 매우 많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찾기 보다 생산자 입장에서 좋은 것을 소비자에게 강요하는 것들을 많이 봤다.
아들 배고파?
반면 이렇게 질문했을 때의 결과는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아들은 밥을 뚝딱 먹었던 것 같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아들 배고파?"라는 말은 상당히 친절한 화법이다. 상대에게 밥을 먹고 싶은지 물어보는 과정이 들어가 있다.
"나는 배가 고픈데 너도 배가 고프니?"라고 한다면 상대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여기에는 나의 상황에 대한 정보도 배제됐다.
내가 고프다는 상황을 언급하게 되면 아빠인 나의 상황에 아들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상대의 선택권에 나의 현재 상황이 꽤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눈치를 보는 아이라면 이 상황에서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아들 배고파?"라는 질문은 꽤 합리적이라 생각된다. 온전히 아들의 선택권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니 말이다. 어떠한 간접적인 강요는 없다. 배가 안고프면 안고프다고 하면 그만이니 말이다.
질문의 차이가 가져온
전혀 다른 두 결과
오늘 질문은 "아들 배고파"에서 시작해 "뭐 먹을까?"로 이어졌고, 아들은 혼자서 열심히 식사를 하고 있다. 내가 먹으라고 하지 않아도 너무 맛있게 밥을 먹고 있다.
밥먹는데 내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스스로 너무 잘 먹는다.
며칠 전 밥을 하도 안먹어서 애를 먹었던 상황을 떠올려봤다.
그때는 밥먹을 시기가 되어서 무의식적으로 물었던 것 같다. "뭐 먹을래?"라고.
배가 고프지 않았던 상황이었던 것은 나중에 알게 됐다. 내가 뭐먹을지 물어보기 직전에 군것질을 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어서다.
배가 고프지 않았고 무언가 먹고 싶은 욕구가 크지 않았음에도 내 질문에 친절하게 "짜장면"이라고 했던 것인데, 난 그것을 "짜장면을 다 먹을게요"라고 왜곡해서 해석했으니 말이다.
반성해야 하는 대목이다.
그날 난 아들에게 "넌 먹고 싶다고 해놓고 왜이렇게 안 먹니?"라며 핀잔을 주었었다. 며칠 전 내 모습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됐다.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해야겠다.
사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런 대화 속의 오류는 일상에서도 쉽게 발생하고 있다. 늘 내 입장에서 상대의 행동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상대의 동의를 전제로 질문을 하고 답변이 곤란한 상황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상대를 배려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어려운 것이지만, 그래도 오늘 얻은 깨달음을 마음 속 깊이 두고 살아야겠다.
오늘 또 하나를 배웠다. 육아를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