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처음 먹었던 설렁탕에 대한 아련한 기억
2000년 1월 어느날, 용산역 앞
"아 춥다 추워. 고생 많았지?"
아버지는 내 이마에 박힌 작대기 하나를 보며 애처로운 듯 말을 꺼내셨다. 입대 후 100일만에 나온 첫 휴가날. 내 기억 속 무뚝뚝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다정하게 내게 말을 건네셨다.
"배 고프지? 저기 들어가자"
아빠는 출입문 유리가 뿌연 가게로 나를 이끄셨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내 안경도 뿌옇게 김이 서렸다. 시끌벅적한 가게 안에는 아들 혹은 연인을 군대로 보내는 이들로 가득차 있었다.
"추울 땐 설렁탕이 최고야! 몸보신도 되고"
아버지는 자주 와보신 듯했다. 메뉴판이라곤 벽에 걸려있는 것이 전부였다. 설렁탕, 도가니탕... 모두 처음 보는 메뉴였다. 난 선택할 수 없었다.
"여기요! 설렁탕 특대로 두그릇 주세요"
나는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설렁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 이기도 했다.
"설렁탕 먹어봤니?"
"아니요... 처음 먹어요"
사실 군대가기전까지 내가 먹어본 음식이라곤 김치찌개와 짜장면 정도가 전부였다. 가끔 특별한 날에는 치킨이나 보쌈 정도 시켜먹은 게 전부였다. 어머니가 소뼈를 우려 낸 국물을 몸보신용으로 해주신 적은 있었지만 밖에서 사먹는 설렁탕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주문하신 설렁탕 나왔습니다"
설랑탕은 금새 나왔다. 은색 철로 된 국그릇에 우윳빛깔 국물, 그리고 밥 한공기와 잘 익은 섞박지.
"처음 먹어본다니 아빠가 설렁탕 먹는 법을 알려줄게. 설렁탕은 소금으로 간을 맞춰서 먹으면 돼. 하지만 좀 더 간편하게 먹는 방법도 있어. 바로 여기 먹음직 스러운 섞박지를 설렁탕에 듬뿍 넣어서 먹으면 그 맛이 아주 일품이란다. 아주머니 여기 섞박지 좀 더 주세요"
아버지는 섞박지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내 설렁탕 속에 한움큼 넣어주셨다. 아버지 설렁탕 속에도 섞박지가 수북히 들어갔다.
"이제 밥을 말아서 먹으면 돼. 설렁탕은 그렇게 먹는거야. 국물맛 어때? 맛있지?"
아버지는 설렁탕을 정말 맛있게 드셨다. 처음 맛보는 설렁탕이어서 쉽게 숟가락을 뜰 수 없었지만 아버지가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고 용기를 내어 한 숟가락 떴다.
설렁탕의 부드러움과 섞박지의 아삭아삭한 식감이 식욕을 자극했다. 여기에 섞박지 국물의 알싸함이 칼칼함을 더해주었다.
난 이날을 잊지 못한다. 추운 겨울 아버지와 함께 먹었던 새빨간 설렁탕의 첫 맛을 말이다. 벌써 18년 전의 일이 됐다.
2018년 1월 22일, 상계동
"아빠 설렁탕 먹고 싶어요. 어린이세트 먹고 싶어요"
오늘 따라 아들이 아침부터 노래를 부른다. 아들은 설렁탕을 무척 좋아한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설렁탕 타령이다. 평소엔 밥을 먹이려면 전쟁이지만, 설렁탕 집에 가면 게눈 감추듯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운다. 수저로 스스로 떠서 먹을 뿐 아니라 국물까지 싹 들이킨다.
"아빠 설렁탕 먹고 싶어요. 어린이세트 먹고 싶어요"
"알았어 가자. 어린이 세트 파는 곳 거기로 가면 되지?"
"네~!!! 빨리 먹고 싶어요. 너무너무 배고파요"
"안녕하세요. 여기 어린이 세트랑 설렁탕 한 그릇 주세요"
나는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주문했다. 그리고 자리를 잡았다. 18년 전이나 지금이나 설렁탕은 금방 나왔다. 내 아버지와 함께 먹던 섞박지도 그대로 있다.
우윳빛깔을 띈 설렁탕을 먹는 아들을 보니 스물살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첫 설렁탕을 먹던 풋풋했던 청년의 모습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