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90도 인사

출근 길 봤던 아들의 모습이 온종일 눈에 밟힌다

by 광화문덕
새벽 5시30분

어제 자정까지 상황 대기하고 4시간 남짓 자고 일어났다. 아들과 난 기침 감기가 걸려 밤새 콜록콜록 거렸다. 눈을 감고 있었던 시간은 4시간가량 되지만 실제 깊은 수면을 청한 건 1시간도 채 안 될 것 같다. 몸이 그렇게 내게 말하고 있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다. 나라 꼴도 말이 아니다. 일어났다. 그래야 했다. 서초동까지 출근하려면 늦어도 새벽 6시에는 나와야 한다. 갑작스러운 법조 파견 결정으로 출근하면서 가족 얼굴을 못 본 지 좀 됐다.


출근 준비를 하다 아들의 얼굴이 보고 싶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아들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새벽에는 그토록 기침하던 아이가 쌔근쌔근 소리를 내면서 곤히 잠들어 있다. 아내도 꿈나라다. 결혼하고 많이 야위었다.

공동육아의 기본, 배려

요즘 난 집에 들어와서는 뻗기 일쑤다. 이는 내게 죄책감으로 다가온다.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마음의 부담 때문이다. 내가 가정에 소홀하면 결국 그 피해는 아내에게 돌아간다. 아내가 퇴근 후 쉬지 못하고 온전히 내가 해야 할 육아의 몫까지 독박을 써야 한다.


오늘도 죄책감을 한 움큼 가슴에 얹고 출근 준비를 했다. 그래서 요즘 내가 생각해낸 것이 있다. 아들의 아침 도시락은 내가 만들고 나오는 것이다. 아들은 어린이집에서 혼자 1시간가량을 있어야 한다. 다른 아이들은 9시 정도에 오는데 아들은 8시쯤 어린이집에 도착한다. 아들은 다른 아이들이 오길 기다리면서 도시락을 먹는다. 4살 아이에게 혼밥을 먹게 해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아프다. 상상만으로도 슬프다...


아내의 출근 풍경

사실 아들의 도시락을 싸줘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 전날 새벽 4시까지 서초동에서 뻗치기를 하고 다음 날 점심쯤 출근하게 된 때가 있었다. 얼마 전이다.


새벽 4시에 잠을 청했지만, 깊게 잠이 들지 않았다. 눈은 오전 7시쯤 떠졌다. 피곤했지만 도저히 누워있을 수 없었다. 아내의 모습이 굉장히 안쓰러웠다. 요리하고, 씻으며 화장하고, 아들 등원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짠했다.


피곤하지만 여유롭게 씻고 옷을 입는 내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날마다 저렇게 출근 준비를 했다고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무겁게 내 심장을 짓눌렀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부터 아들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메뉴는 간단하다. 전날 밤 아들에게 물어보고 정하면 된다. 야채죽이나 양송이수프, 야채볶음밥 정도다. 레시피는 초간단화시켜 놨다. 모든 요리는 20분 이내 가능하게 해놨다.


아내의 만족도는 기대보다 컸다. 아침 도시락 요리를 하니 아내의 출근 준비가 한결 수월해졌다. 하루의 시작인 아침이 정신없으면 하루가 상쾌할 수 없다. 내게 하루의 시작이 소중하듯 아내의 하루 시작도 조금 더 여유로워지길 기도할 뿐이다.


오늘은 삼겹살야채죽을 끓였다

보통 마트에서 파는 얇게 썰린 업진살(호주산)을 가지고 소고기야채죽을 끓이는데 냉장고에 삼겹살밖에 없었다. 아차 싶었지만 새로운 요리를 좋아하는 내게 이 정도 따위는 문제될 게 없었다.


삼겹살을 다져서 프라이팬에 한 번 구운 다음 야채죽에 넣어 끓였다. 맛이 일품이다. 이번에도 야채죽은 성공적이다.


출근 준비를 마쳤다

문을 열고 나오려는데 아들이 깨서 방문을 열고 뛰어나왔다.


"아빠, 가지마!!! 가지마!!!"


아들이 흐느끼며 말했다. 아빠의 사랑이 부족한 요즘인가보다. 나가려던 걸 멈추고 현관에 걸터앉아 아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아들 젤리랑 맛있는 거 많이 사주려면 아빠가 나가서 일해야 해. 그래야 아들 맛있는 거 많이 사주지"


한참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10분 정도 만에 아들이 알겠다고 했다.


"빨리 들어와야 해"


아들은 이 말을 하며 내 손을 놨다. 그리고 내게 90도 인사를 했다.


그 모습이 온종일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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