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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Nov 02. 2015

#25. 첫 박스기사를 쓰다..신세계를 맛보다

진저리가 치도록 쫓아 다녔다...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가르쳐 주세요!

입사하고 8개월여가 지났을 때 즈음. 선배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외쳐댔던 말이다.


"선배!! 선배!! 저도 이런 기사 쓰고 싶어요!!! 가르쳐 주세요!!! 저도 이런 기사 쓰고 싶다구욧!!"


아주 진저리가 나도록 조르고 졸랐다. 당돌한 외침이었다. 이런 버릇없는 요구가 가능했던 것은 '외로운펜잡이' 선배와 '마음통' 선배의 넓은 이해심 덕분. 


두 선배와 난 그동안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며 아주 가까운 인생의 동반자로 거듭났다.  형님, 누님하며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했다. 그렇기에 난 두 선배를 더욱 귀찮게 했다.


"동생이 어려움에 부닥치면 도와줘야 하는 게 형, 누님 인 것을!"이라며!


이 모든 것은 마음통 선배와 외로운펜잡이 선배에게 배운 것이다. ㅋㅋㅋ

그 누가 나를 거부하랴! ㅋ

선배들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지겹도록 쫓아다니며 앵무새처럼 외쳐대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글을 봐주기로 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매체는 기사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던 탓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배울 기회조차 없었다.


어디든 비빌 언덕이 있으면 무조건 들이대고 봐야 했다. 그래야 이 험난한 기자 바닥에서 버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었다.

선배들의 한숨

기사가 완성되는 즉시 선배에게 보냈다. 난 당시 퇴고의 진가를 모르고 있었다. 선배들은 내가 기사를 보낼 때마다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너 이 기사 충분히 퇴고한 거야?"라고.


난 그럴 때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오탈자를 잡았다. 난 오·탈자 때문에 선배가 한숨을 쉬었다고 생각했다. 가끔 오·탈자가 없으면 선배가 일이 바쁜데 내가 기사를 봐달라고 해서 한숨을 쉬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 한숨의 의미는 말 그대로 "글을 스스로 몇 차례 고친 뒤에 보내라"였다. 글은 고칠수록 다듬어지는데, 난 초고(草稿)를 보냈으니 얼마나 개판이었으랴. 지금도 기사 초고를 쓰면 개판이긴 마찬가지인데... 당시엔 더 엉망이었으리라...

심지어 브런치 글도 최소 10번은 퇴고한다. 고치고 또 고치고... 고치기를 반복한 뒤 맨 마지막으로 오탈자를 잡고 발행한다... 퇴고의 진가를 알고 난 뒤 내게 퇴고는 글쓰기에 가장 강력한 스킬이다.
단순 나열

당시 내가 쓴 취재 기사는 꽤 길었다. 온라인 매체였으니 분량 제한도 없었으니 오죽했으랴...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분량이 아니었다. 글의 구성이었다. 당시엔 글의 구성조차 모르고 그냥 막 글을 쓰던 시기였다. 지금의 눈으로 보자면 그건 글이 아니었다. 취재한 것을 단순히 나열한 메모 수준에 불과했다.  


선배들이 한숨을 쉴 만 했다. 귀찮아서가 아니라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는 답답함에서 나오는 그런 한숨. 요즘 후배 기사를 보다 보면 당시 두 선배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친절한 과외 선생님

그런데도 선배들은 귀찮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원석(아직 가공하지 않은 보석)이라며 치켜세워줬다. 글쓰기 역시 자신감이 필요했는데 그런 차원에서 내게 용기를 북돋아 준 것 아닌가 싶다. 정말 매우 친절했다. 말투도 따뜻했다. 내 기억엔 그렇다. 마치 고액과외를 받는 느낌이었다.


난 일주일에 한두 번 찾아오는 선배들의 기사 고침을 그대로 넘기지 않았다. 기사를 받으면 원본과 비교했다. 그리고 문장과 문장의 이음과 단락과 단락의 흐름, 소제목의 구성 등에 대해 분석했다. 내 나름대로 원리를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선배들은 왜 이렇게 썼을까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며 답을 찾으려 했다.


2개월 후

그동안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아주 눈에 띌 정도로 기사가 늘지는 않았다. 그러나 분명 달라진 것은 있었다. 박스 기사의 개념조차 몰랐던 내가 '감'이 생겼다. 소제목이 들어가야 할 기사와 그렇지 않은 기사를 구분하는 능력이랄까. 그리고 소제목을 달아야 하는 기사에는 어떤 식으로 흐름을 잡아갈지에 대한 어렴풋한 느낌이 생겼다. 선배들처럼 매끄럽진 않았지만, 머릿속에 희미한 흐름 구성이 스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난 그 이후에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희미한 무언가를 알아내기 위해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다. 뭔가 감은 오는데 분명하게 말할 수 없는 그런 오묘함의 경지에서 분명한 단계로 발전하고 싶었다.

잊지 못할 짜릿함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리곤 또다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이날도 여느 날처럼 박스 기사를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취재는 이미 끝난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릿속에 기사의 흐름이 잡혔다. 떠오른 구성으로 뼈대를 잡고 거기에 취재한 내용을 버무리니 어설펐지만, 중간에 소제목이 들어간 박스 기사가 완성됐다. 드디어 나도 선배처럼 얼추 비슷하게 기사 틀을 잡게 됐다.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중간에 소제목이 들어간 기사를 처음 썼을 때의 기쁨을. 그 짜릿한 쾌감을! 마치 강태공들이 잊지 못하는 손맛이랄까. 박스 기사의 신세계를 맛본 이후 난 미친 듯이 박스 기사를 써댔다. 박스 기사를 쓴다는 것 자체에 대한 희열에 자꾸 취재하게 됐고, 그것을 글로 표현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취미로 바뀐 것이 바로 이 시점부터이지 않았나 싶다.


지금도 난 글쓰기의 짜릿함을 느끼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과 추억들을 한 편의 글로 잘 담아냈을 때의 희열은 그 어떤 것보다 나를 설레게 한다.


에필로그

사실 전 틈만 나면 글을 쓰려고 합니다. 글을 쓰는 게 정말 재미있거든요. 추억을 담아냈다가 나중에 읽어보면 재미있기도 하고요. 어쩌면 글쓰기 중독에 걸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본업에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사로 풀어내야 할 것들이 생기면 취재를 한 뒤에 뚝딱 써냅니다. 요즘엔 전형적인 기사 틀이 아니라, 정말 독자에게 이야기하듯이 전달하는 저만의 기사체를 고민하며 쓰고 있습니다.

인터랙티브 뉴스란 것이 요즘 언론계에서 주목받고 있는데요. 사실 인터랙티브란 것이 사전적 용어로는  ①대화식의  ②쌍방향의  ③상호적인을 말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대화형(쌍방향) 뉴스라고 해서 꼭 화려한 개발(코딩)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글을 통해서도 충분히 대화형 뉴스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는 독자에게 아주 쉽게 기사를 전달하는 방법을 찾고, 그 기사를 읽은 독자가 댓글 또는 기자의 이메일을 통해 피드백을 준다면 그것 또한 훌륭한 인터랙티브 뉴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 제 고민은 글을 좀 더 쉽게 전달하는 방법입니다.

요즘 누군가 제게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전 자신 있게 말합니다. '글쓰기'라고요. '기자의 글쓰기' 운영하는 것도 정말 재미있고요. 행복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당연히 본업인 기사를 쓰는 것은 제 삶의 행복이자 축복입니다. ^^;;; 본업을 버릴 순 없죠~!

전 요즘 잠이 안 올 때면 컴퓨터를 켜고 브런치에 글을 씁니다. 기자의 글쓰기 페이지도 살펴보고요. 물론 노컷뉴스 페북에도 자주 들어갑니다. 이런 일련의 것들이 제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신기하기도 합니다. 처음엔 매우 두려웠던 글쓰기가 이젠 제 삶 자체가 된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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