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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Oct 27. 2015

#23. 의욕만 앞섰던 그때

폼을 잡고 싶었다. 멋들어진 기사를 쓰는 기자로 보이고 싶었다...

점심 먹으러 가자

한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니 입사한 지 3개월쯤 됐을 시기다. 이날은 산업부장과 오찬을 하기 위해 조금 먼 곳으로 이동했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은 다양한 패션 타운이 조성된 곳이었다.


오찬 상대는 부장, 차장 직급의 분들이었다. 겉으로 봐도 내공이 상당해 보였다. 눈은 매서웠고 말투 속에서는 자신감이 강하게 묻어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점심을 먹으며 나눈 부장과 이들 대화는 상당히 깊이 있었다. 대화 주제는 국내 제조업부터 서비스업까지 업종을 넘나들었다.


나는 주눅이 들었다. 업종에 대한 이해가 미천했기 때문이었다. 부장 옆에 앉아 조용히 밥만 먹었다. 다만, 웃어야 할 타이밍에서는 적절히 웃음을 지었다. 모르는 이야기였지만, 눈치껏 웃어야 할 타이밍이라 판단되면 바보처럼 함께 웃었다. 나 혼자 이해 못 하고 멍하니 있으면 깔볼 것 같았다. 열등감이었다.


복잡한 내 마음과 달리 식사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 나를 빼곤 다들 즐거워 보였다.


이날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시간이 오래 흐른 것도 있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내용이었으니 기억할 수조차 없었다...
아직 명함 지갑 없으세요?

식사를 마치고 커피숍으로 이동했다. 패션 타운 내에 있는 전망 좋은 커피숍이었다. 깔끔했고 테라스가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기서 패션 타운의 한 직원을 소개받았다. 


인사를 하기 위해 지갑에서 명함을 꺼냈다. 당시 난 지폐를 넣어 다니는 공간에 명함을 20장 정도 넣고 다녔다.


그런 나를 보며 상대측 부장이 대뜸 "아직 명함 지갑 없으세요?"라고 물었다. 별 의도가 없었던 것 같긴 한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넌 기자면서 그런 것도 없니?'란 말로 들렸다.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이 사람들에게 내가 기사는 잘 쓰는 기자임을 보여주고 싶단 의욕이 넘치다 못해 솟구쳤다. 객기가 발동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당시 내 모습이라 생각한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그렇게 의욕을 불태우던 차에 상대 부장이 운을 뗐다. "요즘 패션타운이 이슈인데 여기 한번 둘러보세요"라고.


"부장, 저 여기 좀 둘러보고 복귀하겠습니다."


내 눈은 빛났다. 전투를 준비하듯 여기저기 꼼꼼히 살펴봤다. 사진도 열심히 찍었다. 관계자들로부터 패션타운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도 상세히 들었다.


2시간여의 취재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했다.


자!!! 기사 좀 써볼까

책상에 앉아 취재한 것들을 정리했다. 해당 부장은 메일로 참고자료도 보내줬다. 매우 상세하게 잘 적혀있었다.


그런데...........


노트북을 켜놓고 썼다 지우길 무한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3시간여나 흘러버렸다.


너 뭐하니?

부장이 날 쳐다보며 한심하다는 듯 물었다.


난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수많은 단어가 머릿속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데 도저히 이 단어들을 글로 조합해 낼 수 없었다. 뭔가 아노미 상태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랄까...


결국 난 온종일 낑낑대다가... 단신으로 처리했다. 기사 하나 제대로 처리도 못 하면서 기자란 명함을 들고 다니는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한심했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수치스러웠다. 며칠 동안 난 패배감에 휩싸였다. 열등감은 더욱 심해졌다. 잠도 못 잤다......


그러다 다짐했다. 기필코 기사 쓰기를 배우겠다고. 어떻게든 글 쓰는 방법을 익히고야 말겠다고...


에필로그

이번 편은 전편에 왜 제가 책방에 매주 가게 됐는지에 대한 이유입니다. 글을 발행한 뒤에 매주 책방에 간 계기를 궁금해하실 분이 있을 것 같아서요. ^^;;

당시 제게 글쓰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글의 구성과 틀이란 것을 몰랐으니 어쩌면 당연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겉멋만 잔뜩 들어 어깨에 힘이 굉장히 많이 들어간 상태였기에... 글쓰기의 준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거죠.

글을 잘 쓰려면 가장 먼저 어깨에 힘을 빼야 합니다. 그래야 수식어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저 역시도 잘 써보겠다고 용을 쓰면서 기사쓰면 엉망입니다. 퇴고하다 민망할 정도입니다. 중언부언에 미사여구만 잔뜩 들어간 것을 확인하게 되니까요...

만약 지금 당시 취재한 것을 기사화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르포로 녹여야겠다'는 글의 틀이 먼저 떠올랐을 겁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당시 전 르포가 뭔지도 몰랐습니다.

가끔 글을 쓰다가 이때가 떠올라 웃곤 합니다.  의욕과 패기는 넘쳤지만 글쓰기 능력이 따라주질 않았을 때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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