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화문덕 Oct 14. 2015

#21. 대표의 패기 '1/N빵' 선언

난 이 회사의 성장의 주역이 되고 싶었다...하지만....

워크숍

회사 입사하고 첫 워크숍이다. 30여 명의 기자가 모였다. 조촐한 자리다. 족구도 하고 이어달리기도 했다. 저녁이 됐다. 캠프파이어가 시작됐다. 30여 명의 기자들이 둘러앉았다. 대표를 중심으로. 


출입처로 뿔뿔이 흩어졌던 기자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의미 있고 즐거운 시간이다. 기수별로 한마디씩 하는 자리가 이어졌다. 어떤 이는 그동안 구성원들의 노고를 치켜세우며 사기를 드높였다. 어떤 이는 대표와 데스크들에게 성토했다. 더 나은 언론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 자리에서 그 누구도 특정인을 찍어누르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만큼은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대표도 모든 이들을 존중했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열고 포용했다.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내 귀의 캔디

저녁 장기자랑 시간이 됐다. 막내 기수부터 기수 대표자들이 장기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후배들은 커플 댄스를 추기도 했다. 당시 '내귀에 캔디'가 한창 유행이었다. 난 아직도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이 노래를 불렀던 후배 두 명이 떠오른다.


한 선배는 조 피디의 '친구여'를 불렀다. 조 피디보다 더 맛깔스럽게 불렀다. 이후 나도 그렇게 부르고 싶어 열심히 따라해봤지만 나랑 조 피디 음색이 다름을 깨닫고 포기했다. 가사가 참 주옥같아 잠시 흥얼거려본다.

친구여 - 조PD(Feat. 인순이)

친구여 (Feat. 인순이)|5집 Great Expectation 조PD Pt 2: Love And Life

친구여. 세월이 많이 변했구려. 
같이 늙어간단 말이 내게는 그저, 

먼 미래의 일일 뿐이었는데 얼굴에 솜털은 흔적도 없구려. 
어느새 남자의 미래는 책임감과 무거운 중압감.. 

하지만 햇살은 저 높은 곳에 각자의 이상을 위해 모두 바쁘네. 

자랑스런 나의 친구들아. 
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단다. 

우린 일, 사랑, 사회가 Issue. 
하지만 인간적일 뿐인 실수 모두 겪어야지.

너무 재수 없는 직장상사 얘기. 
별수없이, 아저씨, 되는게 뭐가 대수 

이담에 쏘주 한잔 할 때까지 답장은 필수, 
always miss you.

세월에 무감각 해져가네
현실의 삶과 이상속에
아련한 추억이 너무 그립네.
친구들과 뛰놀던 그 동네.
 
바쁘게 지내온 나날 속에 지난날 돌아 보지 못했는데
어느날 잠에서 깨어날 때 꿈에서 본 듯한 나의 동네 

찾아가봤지. 친구들과 같이 너무 큰 기쁨으로 가슴이 뛰었지
Deja Vu, 느끼고, 추억의 자리에서 흐느끼고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해지면 소주병 나발을 불고. 여기 추억과, 바닷바람. 그리고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네
인생에 이상 뭐가 더 있나? 돈, 명예? 미래? 따위야 말로. 영원할 순 없소

우리들의 얘기로만. 긴긴밤이 지나도록 세월이 지나도 변치 말자고, 약속했잖아.
영원토록 변치않는 그런 믿음 간직 할래. 세월이 지나서 다 변해도 변치 않는 것 하나. 

이젠 뭘 하더라도 그시절 같을 순 없으리오 이제 바 쁘더라도 가끔 전화를 해 보시오
이젠 뭘 하더라도 그때와 같을 순 없으리오 이제 바 쁘더라도  우리의 추억을 기억해줘

이젠 뭘 하더라도 그시절 같을 순 없으리오 이제 바 쁘더라도 가끔 전화를 해 보시오
이젠 뭘 하더라도 그때와 같을 순 없으리오 이제 바 쁘더라도 우리의 추억을 기억해줘.. 친구여..

자리는 그렇게 무르익어갔다. 장기자랑 시간이 끝나고 대표가 무대에 올랐다. 달빛이 은은하게 비추는 밤하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얼큰하게 취한 그는 연설을 시작했다. 아직도 생생하다. 참 멋진 연설이었다.


여러분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금 주위에서 가파르게 성장하는 우리 회사를 모두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년에 더 많이 도약할 것입니다.

우리는 온라인경제 매체로서
빠르고 정확한 속보와 깊이 있는 국제뉴스를 기반으로
인지도를 높여 나갈 것입니다.

전 여러분께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제겐 비전이 있습니다.

손익분기점이 넘으면 전 여러분들과
우리 회사의 순익을
1/N 하겠습니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더라도 확실한 건 구성원들과 순익을 공유하겠다는 공약이었다. 어찌 이런 회사에서 충성심이 강하지 않을 수 있으랴!!!

성장의 주역이 되고 싶었다

이후 난 열심히 일했다. 출입처에서 인정받으려고 노력했고, 어느 출입처에서든 나만의 시각으로 기사를 쓰려고 했다. 매체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 기사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회사를 옮기겠다는 생각보다 이 회사에서 함께 성장하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였다. 이 회사를 키운 성장의 주역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호기로웠던 1/N 빵 이야기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밤 9시든 10시든 술에 취해 전화해 "대표님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면 언제든 달려와 얼싸안아주던 대표의 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졌다. 


막소사(막걸리+소주+사이다)를 즐겨 마시던 대표... 늘 기사의 콘텐츠를 강조하던 대표... 40대 중반의 열정으로 기자다운 기자를 키우겠다고 했던 대표... 집을 담보로 회사를 운영하면서 후배들을 가족같이 아껴주던 대표...  기자를 꿈꾸던 한 젊은 영혼을 구제해준 대표... 


함께 열정을 불태우자던 친구 같았던 대표의 모습은 잊혀져 갔다.

사람은 변한다?

자리가 사람을 변하게 한다고 했던가... 회사가 업계에서 주목을 받을수록 예전에 알던 대표의 모습은 사라져 갔다. 적어도 내 눈에 비친 모습은 그랬다. 그 자리에 권위적인 대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기자들을 신경 쓰기 보다 매출에 더 신경 썼다. 기자들을 너무 많이 뽑아서 그런 것일까? 중앙 일간지에서 온 국장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퇴사했다. 데스크들도 영입했는데 그들은 기자라기 보다 영업에 더 신경썼다. 회사는 여느 타사와 다를 바가 없어져 갔다...


기자들의 이탈도 본격화됐다. 난 이렇게 생각한다. 성장하는 매체에서 기자들의 이탈은 필수적이다. 그 가운데에서 회사에 충성심을 가진 이들이 의식을 가지고 남는 게 맞다고 본다. 다른 매체로 이직하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들을 억지로 잡아둘 순 없다. 이탈을 막을 수 없다면 남아있는 기자들의 역량을 키우는 게 맞다. 그런 기자들을 많이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런데....


난 늘 그 대표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와의 추억도 가슴 속에 잘 간직하고 있다. 그 대표가 날 뽑아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난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전 당시 대표가 정말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CBS에 입사하고 회사를 한 번 찾아갔었습니다. 저를 기자로 뽑아준 고마운 곳이니까요. 

하지만 대표는 절 못 알아보시는 듯했습니다. 감사 인사를 하러 갔다가 겉도는 이야기만 하다가 나왔거든요. 어쩌면 저만의 착각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떠나간 회사에 가서 인사를 하면 다들 반갑게 맞아줄 거라는 환상을 가졌으니까요.

어쩌면 지난 5년 여란 시간동안 대표에게 많은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사이 많은 이들이 나가고 들어왔더라고요. 이제 더는 그 회사에는 제가 아는 기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전 18화 #19. 이 책 달달 외워! '재벌가 혼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