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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려도 되나요?

그림을 그리면 태어나는 관계들

by 박윤경

그림의 주제, 소재 등이 머릿속에서 뚝딱하고 나오면 좋지만, 풍경, 일상, 사진 등을 참고하여 떠오른 영감을 표현할 때도 많습니다. 무료로 사진 이미지를 제공하는 웹사이트, 지인의 SNS, 내가 찍은 사진 등을 보고 그릴 수 있는데요, 이 중 타인이 찍은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려도 될까요?


mr-cup-fabien-barral-Fo5dTm6ID1Y-unsplash.jpg © Mr Cup / Fabien Barral 출처 : unsplash.com


• 사진은 피사체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다고 볼 수 있는데요, 사진도 저작물인가요?


저작권법은 사진저작물을 저작물의 예시로 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진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저작권은 사진을 촬영한 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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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법원은 사진저작물의 요건에 대하여 “사진저작물은 피사체의 선정, 구도의 설정, 빛의 방향과 양의 조절, 카메라 각도의 설정, 셔터의 속도, 셔터 찬스의 포착, 기타 촬영 방법, 현상 및 인화 등의 과정에서 촬영자의 개성과 창조성이 인정되어야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저작물에 해당한다(대법원 2001.5.8. 선고 98다43366판결).”고 판시하였습니다.


모든 사진이 사진저작물이 되는 것은 아니고, 촬영, 현상, 인화 등의 과정에서 촬영자의 창작성을 인정받아야 저작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사진저작물은 단순히 기계적인 방법으로 피사체를 다시 재현시킨 것이 아니라, 사진작가의 사상·감정을 창작적으로 표현한 사진으로서 독창적이면서도 미적인 요소를 갖춘 것이어야 해요.


최근 풍경 사진에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산이나 들판, 강가 등의 풍경은 누가 촬영하더라도 같거나 비슷한 시각적 결과를 얻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입니다. 그렇지만 풍경 사진도 창작성이 있다면 저작물로 보호를 받을 수 있어요. 촬영 구도나 피사체 선정 방식, 빛이나 방향, 각도 등의 조정에 의해 단순 풍경 사진에서 얻을 수 없는 촬영자의 개성이나 특색이 인정된다면 창작성이 인정되어 저작물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annie-spratt-_VxyFCTEpW8-unsplash.jpg © Annie Spratt 출처 : unsplash.com


•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은 저작물이 될 수 있나요? 사진저작물과는 어떤 법적 관계가 발생하나요?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이 저작물이 되는지, 사진저작물과는 어떤 법적 관계가 발생하는지는 보고 그린 사진이 저작권물로 인정되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 사진이 저작물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

단순한 풍경 사진, 단순히 기계적인 방법을 통하여 대상을 재현시킨 사진은 저작물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저작물로 인정되지 않으면 권리도 생기지 않아요. 따라서 저작물로 인정되지 않는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은 사진과의 관계에서 저작권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 사진이 저작물로 인정되는 경우


< 그림이 단순 복제에 해당하는 경우 >

사진이나 그림의 윤곽선을 따라 그리는 트레이싱이 있습니다. 태블릿 기술의 발달로 사진을 찍고 사진의 윤곽선을 따라 그림을 그리는 것이 매우 수월해졌습니다. 이처럼 사진이나 그림의 윤곽선을 그대로 따라 그리는 트레이싱은 저작물의 복제로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저작자의 허락 없이 단순 복제하면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습니다.


< 그림이 2차적 저작물이 되는 경우 >

보고 그린 사진이 저작물로 인정된다면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은 2차적 저작물이 될 수 있습니다.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이 ①사진을 기초로 하고, ②사진과 실질적으로 유사하고, ③사회 통념상 새로운 창작물이 될 수 있도록 수정, 증감하여 새롭게 제작했다면 2차적 저작물이 될 수 있어요.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이 2차적 저작물로 인정되면 사진과는 별개의 저작물로 보호되지만, 원작자인 사진 촬영자에게 이용의 허락을 구해야 합니다. 따라서, 사진 저작자의 허락 없이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렸다면 저작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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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이 독립적인 저작물이 되는 경우>

국내 법원은 2차적 저작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습니다.


『 2차적 저작물로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원저작물을 기초로 하되 원저작물과 실질적 유사성을 유지하고 이것에 사회통념상 새로운 저작물이 될 수 있을 정도의 수정‧증감을 가하여 새로운 창작성을 부가하여야 하는 것으로서, 어떤 저작물이 기존의 저작물을 다소 이용하였더라도 기존의 저작물과 실질적인 유사성이 없는 별개의 독립적인 신 저작물이 되었다면, 이는 창작으로서 기존의 저작물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되지 아니한다(대법원 2011. 4. 28. 선고 2010도9498 판결). 』


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사진을 참고하였어도 사진과 실질적인 유사성이 없는 별개의 저작물이 될 정도의 창작성이 가해졌다면 새롭게 그린 그림은 사진과는 별개의 저작물로 인정될 수 있어요. 사진과 그림은 별개의 저작물이므로 사진을 참고했다는 이유로만으로 저작권 침해가 되지 않습니다.



• 타인이 찍은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려도 될까요?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은 사진이 저작물인지 여부, 그림에 추가된 화가의 창작성의 정도에 따라 저작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사안마다 다르게 판단될 것입니다. 타인의 저작물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저작권자 허락 없는 저작물 이용은 비영리를 목적으로 하거나 출처를 밝힌다고 해도 저작권 침해가 되어 법적 책임이 면제되지 않습니다.


직접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참고하여 그림을 그린다면 저작권 침해 염려 없이 창작 활동에 더 열중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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