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면 태어나는 관계들
저는 매일 작은 그림 한 점을 그리며 번아웃을 극복해서 그림 그리는 변리사가 되었습니다. 그림을 계속 그리니까 그림체가 생긴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그림체는 '그림에 드러나는 개성적인 특색이니, 제 그림에도 이제 저만의 개성적인 특색이 나온다는 이야기였어요. 제 그림에 저만의 특색이 생겼다면, 제 허락을 받지 않고 제 그림체를 모방해서 그림을 그리면 저작권 침해일까요?
● 저작권은 무엇을 보호할까요?
작가들이 가장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 모든 창작물이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모든 법, 권리가 그렇듯 저작권도 저작권법에서 규정하는 요건을 갖추어야 권리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요.
저작권법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 판단은 ‘저작물’에 해당하는 지의 검토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저작권법은 저작물의 정의를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라고 정하고 있습니다(저작권법 제2조 제1호). ‘표현한 창작물’이므로 외부로 표현되지 않은 단순한 아이디어는 저작물로 보호받기 어렵습니다. 작품의 콘셉트, 주제, 화풍, 표현 기법은 아이디어에 해당하기 때문에 저작물로 보호받지 못해요. 아무리 독창적인 아이디어라도 저작물로 보호받지 못하므로 타인이 무단으로 사용해도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기 어렵습니다.
한때 <드라마 우영우>의 영향으로 고래 그리기가 유행이었던 적이 있어요. <드라마 우영우>를 보고 감동받고 영감이 발현되어 작가들이 고래를 그렸지만 모티브의 출처가 동일하다는 이유로 저작권 침해를 주장할 수 없는 경우를 생각하면 됩니다.
또한 저작물이 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작품을 베낀 것이 아닌 독창성이 있는 것이어야 해요. 이미 존재하는 표현, 통상적인 표현은 창작성이 없어 저작물로 보호받기 어렵습니다.
● 작품이 서로 유사하면 저작권 침해일까요?
나의 작품과 타인의 작품이 유사하면 저작권 침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두 작품이 유사하다는 것만으로는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형사 고소를 하거나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저작권법에서 요구하는 요건을 갖춰야 저작권 침해가 되고, 저작권 침해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첫째,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는 사람의 저작물과 그 상대방의 저작물이 실질적으로 유사해야 합니다. 둘째, 의거성이 인정되어야 해요. '의거성' 좀 생소하죠? 의거성이란 ‘남의 것을 보고하는 것’입니다. 의거성을 요구하는 이유는 두 창작자가 동일한 작품을 창작했어도 우연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표절 의혹이 불거진 경우 먼저 창작된 작품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 다툼이 있는 경우 보셨죠? 동일한 창작물이라고 해도 먼저 창작된 작품을 몰랐다면 저작권 침해가 아닙니다.
내 저작권이 침해되었다고 생각되는 경우 상대방이 내 작품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보고 따라 했는지 정확히 알기 어려워요. 실무상으로 상대방이 나의 저작물에 접근할 수 있었는지, 상대방과 나의 저작물이 얼마나 비슷한 지, 두 저작물에 공통된 오류가 있는지 등을 살펴 의거성을 추정하고 있어요. 정리하면 비교 대상의 작품이 유사하고, 보고 베꼈다는 것이 인정되어야 저작권 침해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 그림체가 유사한 작품 저작권 침해일까요?
‘그림체’, ‘화풍’, ‘스타일’은 그 자체가 외부에 표현된 창작물보다 아이디어에 가까우므로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림체가 유사하다는 이유만으로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기는 어려워요. 그렇지만 그림체도 유사할 뿐만 아니라 그림체에 따라 그린 그림 자체가 유사하다면 침해를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