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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제목도 보호받을 수 있나요?

그림을 그리면 태어나는 관계들

by 박윤경

그림을 꾸준히 그리다 보니, 전시도 하고 다른 작가님의 전시도 다니게 되었어요. 작가로 전시를 하려면 작품 외에도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전시에 꼭 필요한 준비 사항 중 하나가 캡션입니다. 그림 제목과 작가명, 창작년도, 규격과 재료 등을 단정하게 정리해서 그림 옆에 이름표처럼 붙여줍니다.


그림의 제목은 필수는 아니라서 정하는 경우도 있고 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여러분은 제목이 있는 작품과 제목이 없는 작품 중 어느 쪽을 선호하시나요? 저는 다 좋습니다. 다만 작품을 감상할 때는 제목을 보기 전 작품을 감상하고 제목을 확인한 다음에 작품을 다시 한번 감상합니다.


작품의 감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미술작품의 제목은 지재권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까요?


crayons-1445053_1280.jpg © Aline Ponce 출처 : pixabay



● 그림의 제목도 저작권으로 보호받을 수 있나요?


그림의 제목이 저작권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지는 서적, 영화 등의 제목인 '제호'가 저작권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서적, 영화, 게임은 물론 방송 프로그램의 등의 제목을 '제호'라고 합니다. 국내 저작권법은 창작적 표현만을 보호할 뿐 아이디어는 보호바지 않습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제목, 제호는 저작권으로 보호받기 어렵습니다.


그림의 제목이 보호받을 수 있는지는 서적, 영화 등의 제목인 '제호'가 저작권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제호(제목)가 저작물인지와 관련하여 국내 법원은,


『저작물의 제호, 즉 타이틀이 저작물과는 별개의 독자적인 저작물 또는 그 중요한 일부로서 보호받을 수 있는지 여부를 살펴보면,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저작물이라 함은 문학, 학술 또는 예술에 속하는 것으로서 사상 또는 감정을 창작적으로 표현한 것을 말하는바, 제호 자체는 저작물의 표지에 불과하고 독립된 사상, 감정의 창작적 표현이라고 보기 어려워 저작물로서 보호받을 수 없다(2004가단31955판결) 』


고 일관적으로 판시하고 있습니다.


books-5937716_1280.jpg ⓒ Hermann Traub 출처 : pixabay



●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처럼 특이한 경우는 어떨까요?


제목이 작품만큼 독창적이고 특이한 경우도 있어요. 예를 들어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는 책 제목처럼요. 이 경우에도 저작권으로 보호받을 수 없나요?


2000년대 큰 인기를 끈 영어학습방법 교재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의 제호(제목) 자체에 대한 저작물성이 문제 된 사안에서도 국내 법원은,


『 일반적으로 저작물의 제호 자체는 저작물의 표지에 불과하고 독립된 사상, 감정의 창작적 표현이라고 보기 어려워 저작물로서의 조건을 구비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저작물로서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것인바(대법원 1977. 7. 12. 선고 77다90 판결 등 참조),


이 사건 제호 또한 비록 반어적인 의미의 문장적 구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나, 기존의 통념화된 영어학습방법을 거부한다는 구호적 의미를 전달하는 것으로서 일견 독특하게는 보이더라도 창작적 표현이라기보다는 아이디어의 영역에 해당하여, 그 자체 만으로는 저작물로 보기 어렵다 할 것이므로 원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서울고등법원 2006. 11. 28 선고 2005나62640 판결)』


고 판시하였습니다.


판례에 따르면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라는 제호(제목)도 독특하기는 하지만 창작적 표현보다는 아이디어의 영역에 해당하므로 저작물로 보기 어렵습니다.



● 그림의 제목을 저작권으로 보호받기 어렵다면, 보호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림의 제목은 표현보다는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어요. 책 제목을 저작물로 인정받기 어려운 것처럼 그림의 제목도 저작권으로 보호받기는 어렵습니다.


그림의 제목을 권리로 보호받고자 한다면 상표권으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그림에도 시리즈처럼 '제목+번호', '제목+부제목'의 형식으로 제목을 붙이기도 하는데, 한 점의 그림의 제목보다는 이러한 시리즈 작품의 제목은 상표권으로 등록받을 필요가 더 있겠죠?



● 그림의 제목은 어떻게 상표권으로 보호받을 수 있어요?


그림의 제목도 일반 상표와 동일하게 등록받을 수 있는지 판단받습니다. 다만, 그림의 내용을 그대로 표시한 제목(오리 그림의 제목이 오리인 경우), 지리적 명칭 등으로만 표시한 제목(오리 그림의 제목이 서울의 오리 경우)은 상표로서의 특징이 없어서 등록받기 어렵습니다 상표법은 식별력이 없는 상표로 등록받을 수 없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그림의 제목이라고 무조건 상표로 등록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법에서 정한 요건을 충족시켜야 등록받을 수 있어요. 즉, 상표법에서 정한 거절이유가 없다면 상표권으로 등록되어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art-1209519_1280.jpg ⓒ 1681551 출처 : pixabay



● 상표권 등록요건을 만족하지 못해 거절된 경우


"영어 실력 기초"라는 영어참고서의 제호에 대하여 기술적 표장이라는 이유로 상표권 등록을 거절한 판례를 참고해 주세요.


『영어참고서를 지정상품으로 한 등록상표 “영어 실력기초”를 구성하고 있는, “영어”, “실력”, “기초” 등의 각 단어는 특별현저성이 결여된 기술적 표장에 불과한 것으로서, 위 상표는 그 지정상품과 관련지어 볼 때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는 기초적인 영어참고서”로 인식되어지므로, 구 상표법 제8조 제1항 제3호에 해당되어 같은 법 제46조 제1호에 의하여 무효이다(대법원 1990. 11. 27. 선고 90후410 판결).』



● 중요한 그림의 제목이라면 상표권으로 등록받아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시리즈 작품이거나, 일러스트, 웹툰 등의 제목이라면 그림은 물론 제목 자체도 가치가 있습니다. 제목 자체가 가치 있는 동일한 제목으로 꾸준히 작품활동을 할 계획이 있다면 독점적인 권리인 상표권으로 등록받아 두시길 권해 드립니다. 권리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 권한 없는 타인의 선등록으로 제목을 변경하는 경우 등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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