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이 성적이 아니라면?
“오빠 우리도 애 이제 영어 좀 더 신경쓰자.”
아이와 여름 휴가를 갔을 때의 일입니다. 수영장에서 재미나게 노는데, 벌써 며칠이나 수영을 하고 놀았는지 피부가 까맣게 탄 중국인 아이가 신나게 우리 아이에게 말을 겁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중국어를 우리 아이에게 한참 떠들던 아이는 제가 공을 건내주며 “어디서 왔니.”라고 묻는 말에 못 알아듣는 표정을 짓습니다. 이런. 제 중국어 성조가 나빴나 봅니다. 다시 영어로 어디서 왔느냐 물으니, 상하이라고 대꾸합니다.
그런데 저와 중국인 아이가 잠깐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걸 보더니, 딸아이가 아내에게, “암마 저 오빠 영어 잘해.”라고 말하더랍다. 아이코. 다른 아이와 어울리다 그만, 학습에 동기부여가 될만한 경험을 갖게 되었네요.
수영을 마치고 나서 우리는 카페에 앉아 딸아이에게 영어공부를 언제쯤 시킬지, 잠시 얘기를 나눴습니다. 영어유치원을 보낼 형편이 안되는 마당에 굳이 영어를 조기에 가르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발달하고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경험을 통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전달했습니다. 아이 앞에서 폰은 줄이고 책 읽는 모습이나 더 보이는 것이 급선무였으니까요.
그러면서도 물론 제 가슴 한켠에는 “우리 아이가 뒤처지는 것은 싫다”라는 평범한 불안이 싹이 트고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학원과 사교육을 받아들일 시기가 올 것이고 그때부터는 더 좋은 학원과 아이의 공부 스케쥴 사이에서 우리의 관계를 매일 저울질하게 될 것입니다. 과연, 저는 우리 딸아이와 공부 문제로 다투게 될까요?
사교육, 이끄느냐 끌려가느냐!
우리나라에서 사교육이란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치는 관문입니다. 사실 어느 시대든 그래왔습니다. 유럽의 명문가에서는 자녀 교육을 위해 뛰어난 명사를 가정교사로 초빙했습니다. 조선, 고려, 그 이전 시대에도 뛰어난 유학자와 선비들이 집집마다 상주하며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요즘도 암암리에 보이고 있습니다만, 예전엔 서울대 등 명문대 학생들이 무료로 하숙을 제공받으며 그 집의 아이를 가르치는 “입주과외”도 있었다고 하지요. 학교교육만으론 나와 아이가 꿈꾸는 미래를 실현하기 어려우니, 사교육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사교육이 없이는 20명 이상 한 교실의 아이들을 “기초 수준”에 집중해서 가르쳐야 하는 학교의 교육 상황에서, 빼어난 재능과 역량을 가진 아이들은 “맞춤형” 학습 코칭을 받기 어렵습니다. 구구단을 다 외운 아이는 방정식을 배울 수 있고, 방정식을 배웠으면 함수로 나아가야죠. 지식 엘리트로 자라날 잠재력이 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월반이라는 정당한 제도도 존재합니다. 학교교육이 채워주지 못하는 맞춤형 교육을 위해 우리는 사교육에 의지합니다. 비용이 퍽 비싼 것만 빼면, 사교육을 탓할 순 없는 일이죠.
저는 공교육에 속한 사람이긴 하지만, 사교육의 필요성에 동의합니다. 사교육을 적절히 활용할 경우에 아이들의 성장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배움의 속도”가 있습니다. 느린 아이들은 느린 아이들의 속도에 맞추어, 빠른 아이들은 빠른 속도에 맞추어 적절한 교사의 상호작용과 함께 지식을 제공할 때 아이들은 훨씬 더 큰 교육 성과를 보입니다.
문제는 사교육이 순수히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기관이 아니라 시험과 입시 경쟁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라는 점입니다. 어마어마한 돈이 몰리고, 학원끼리도 또 강사끼리도 경쟁하는 대규모의 산업입니다. 학교교육의 한계로 인하여 방과후학교를 넘어서서 사교육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는데, 사교육 기관들은 그 자체로 크나큰 힘을 가지고 아이들의 공부습관을 길들이면서 사교육에 의존하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꽤나 큰 돈을 들여 사교육을 지속함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집집마다, “왜 우리 아이는 성적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하는 결과가 찾아오지요. 같은 학원을 다녀도 비슷한 수준의 과외 선생님을 붙여도, 성적이 통 나오지 않고 아이들은 공부에 흥미를 잃은 듯 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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