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 비행기, 탑승마감 15초 전

이런 나를 소박맞게 하지 않은 바깥양반의 아량은 대단해

by 공존

"신랑분은 발권이 되시는데 신부님은 안되시는데요."

"네?"


바깥양반과 나란히 선 나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다시 물었다.


"신부님은 발권이 안되세요. 확인해보겠습니다."

"아 뭐야 빨리 발권하고 샤워실 가서 머리 감고 가야하는데."

"아...뭐지. 기다려보자."


인생에 한번뿐인 신혼여행, 가뜩이나 우리 둘은 5일의 일정밖에는 빼지 못했고, 게다가 결혼식은 일요일에 치른지라 비행기 시간이 꽤나 타이트했다. 예식장에서 다이렉트로 공항에 달려와 2시간이 채 안되는 여유시간을 두고, 바깥양반과 나는 새벽부터 빡빡하게 굳어있는 머리카락과 메이크업을 지우고 편안히 비행기에 오르는 이야기만을 하며 공항에 온 터다.


그런데, 발권이 안된다.


분주한 공항에서 모니터를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며 빠르게 손을 놀리던 직원분이 결론을 내렸다.


"비자 발급이 안되셨어요."

"네에?"

"무슨 소리야 오빠가 분명히 비자 신청했잖아."

"어...나는 됐는데. 잠시만요 비자 신청을 했는데요. 저는 됐고..."

"여권 잠시만 줘보시겠어요?"


그녀는 조금 상기된 얼굴로, 그러나 침착한 어조로 내게 여권을 요청했고 나는 바깥양반의 여권을 건냈다. 다시 집중하는 얼굴로 돌아온 직원분이 허탈한 결론을 냈다.


"여권번호 틀리셨어요. 비자 신청하실 때 이 여권번호로 하신 거 맞으세요?"

"네에?!"

"아아아 오빠 나한테 왜 그래애애..."


심장이 쿵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카운터 너머로 몸을 돌려, 그녀의 손가락 끝이 가르키는 지점을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바깥양반의 여권을 확인했다. 끝자리 두개를 틀렸다. 둘 다 처음 가는 미국여행의, 비자를. 한달 전 쯤 바깥양반은 나에게 비자신청을 부탁했고 나는 바깥양반이 찍어보낸 사진을 보고 하나 하나 신청란을 채웠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쉽지는 않았지만 마침내 해결은 했는데, 비자 발급까지 마쳤는데 여권번호가 틀려서 발권이 안되는 황당한 일이라니.


"어 잠깐, 잠시만요 진짜 그럼 못 타요 비행기?"

"네 비자 발급이 안되면 보안상 비행기에 탑승 자체가 안되세요."


직원의 침착한 얼굴에 난처한 빛이 스치더니 무전기를 들고 빠르게 무언가 이야기를 나눴다. 잠시 뒤에 중년의 직원분이 한분 더 오시더니 카운터 맨 끝자리로 우리를 데리고 가서 상담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분이 비자 발급 신청을 하셨어요?"

"제가요..."


온 몸의 혈관이 박동하는 느낌이었다. 식은땀이 흘러야 마땅하지만 열 시간 전부터 내 피부를 꽉 막고 있는 화장품 덕에 얼굴은 반질반질하기만 했다. 사려깊은 중년의 직원분은 우리에게 상황을 설명해줬다.


"아시겠지만 비자가 발급이 안되면 탑승이 안되시구요."

"네..."

"오빠 어떻게 여권번호를 틀려 그걸..."

"아 진짜 미안해...그럼 저희 지금 어떻게 안되나요?"

"인터넷으로 비자 발급을 하셨죠? 지금 신청을 하시는 방법은 있어요. 그런데 아시겠지만 비자 신청을 하셔도 언제 승인이 될지는 확실치가 않아서."

"네네 지금 바로 할게요."

"네 그런데 지금...15분? 조금 남았는데, 마감시간 넘겨서 비자 발급이 안되면 비행기는 못타셔요."

"그럼..."

"다음 비행기는 있어요?"

"네 내일 새벽 다섯시반 비행기 있네요."

"네에?!"

"흐아앙 오빠아..."


바깥양반이 힘 없이 신음을 토했다. 화를 낼 겨를조차 없고, 분노라는 것을 떠올릴 수 없을만큼 절망 그 자체인 상황이었다.


"알았어 미안해 내가 빨리 해볼게. 저 지금 빨리 신청할게요."

"네 이리 오세요."


심각한 얼굴로 직원분이 몸을 비켜서 우리에게 컴퓨터 하나를 내어주었다. 모니터부터 구형 CRT인데다가, 윈도우 창을 봐서는 연식이 제법 된 PC였다.


"오빠 우리 갈 수 있는거지? 이거 되는거지?"

"어어 오빠가 해볼게. 있어봐. 괜찮을 거야."


식은땀은 나지 않지만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 미국의 비자 신청 서비스인 ESTA의 낯익은 화면을 다시 마주하자, 집주소며 직장주소를 하나 하나 영어로 입력해야 하는 피곤함에 벌써 겁이 났다. 등 뒤에서는 바깥양반이 내게 매달려 처량하게 애원을 했다. 끝자리 숫자 두개를 잘못해서 벌어진 이 참혹한 상황에, 나는 눈 앞이 캄캄했지만 온 신경을 집중해서 입력해나갔다. 바깥양반의 직업, 집주소, 미국 체류 일정과 숙박...캡쳐해둔 폰의 숙박예약을 다시 찾아보며 쿵쾅거리는 심장을 억눌렀다.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탈출구를 찾는다. 왜 하필 미국, 왜 하필 뉴욕, 왜 하필 바깥양반은 자기가 비자를 신청하지 않고 내게 시켜서는. 그러나 여권 숫자를 잘못 타이핑한 내 미련함을 누굴 탓할까. 피곤하다. 새벽부터 일어나있었으니 이미 나도 지칠대로 지친 상태인데, 몸이 후끈 달아오르며 눈이 뻑뻑하다. 작은 글씨를 집중해서 하나 하나 채워서 마지막...드디어 입력을 마쳤다.


<사이트에 연결할 수 없음>


"으아아아 아앙!

"어? 왜 이러지? 왜 이래요?"

"잠시만요."


중년의 직원분이 빠르게 다가와 화면을 확인했다. 비자 정보를 모두 입력하고 발급을 눌렀는데, 인터넷 에러창이 떴다. 영문을 모르는 나, 그리고 멘붕이 가속된 바깥양반, 그리고 심각한 얼굴의 중년의 직원분이 모두 화면을 바라봤다.


"컴퓨터가 상태가 안좋아서 그런 것 같은데요, 다시 한번 해보세요."

"네에? 아..."


말이 되나. 지금 5분 가까이 손을 부들부들 떨어가며 입력을 했는데 인터넷 에러 때문에 발급신청이 안되다니. 게다가, 시간은 다시 5분밖에 남지 않았다. 비자가 나온다고? 지금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좌절과 절망이 한꺼번에 덥쳐왔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순 없었다. 등 뒤에서 바깥양반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얼굴을 하고 머리에 40개의 실핀을 꼽은 채로 말을 잃은 채 서 있었다. 캐리어 조차 들여보내지 못한 채로.


"오빠...오빠아..."

"미안해 미안해 해볼게. 잘 될거야."


다시 ESTA에 접속하며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맴돌았다. 두장의 티켓값, 그리고 하루치의 숙박 값. 우리의 4박 5일의 신혼여행의 또 다른 실수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바깥양반이 실수로 첫날 숙소를 잘못 예약했던 것이다. 부킹닷컴에서 최저가 핫딜이 떴길래 득달같이 예약을 했는데, 날짜를 잘못 택했다. 그래서 꽤 큰 돈을 손해를 보았고 나는 웃으면서도 몇번이나 그 일로 장난스럽게 바깥양반에게 구박을 했다.


그런데, 나는 수백만원을 날릴 판이다. 혼자 먼저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을 리도 없으니 두장의 뉴욕행 편도 비행기값에, 날아간 첫날의 비싼 숙박비. 이 일을 어째. 이 일을 어째.


다행히 두번째 비자 신청은 조금 더 빨랐다. 방금 전 입력했던대로 순발력있게 타이핑하며 유독 여권번호는 두번 세번 확인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렀고, 직원분이 통지한 발권 마감 시간은 시시각각 달려들어, 고작 2,3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입력 다 했어요!"

"확인하겠습니다."


마지막 신청 버튼을 누르자 다음 창으로 넘어갔다. 이번엔 에러 없이 신청 성공이다. 어느새 중년의 직원 옆에 서서우리를 바라보고 있던 젊은 직원분이 자리를 넘겨받았다. 나는 바깥양반과 손을 꼭 쥐고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1분, 50초, 40초. 미국 비자 시스템상, 언제 발급될지 알 수 없다. 발권 마감 2분 전에 신청을 해서, 비자가 나올 수 있다고?


"비자 발급됐습니다."

"와!""와!"

"빨리 빨리!"


바깥양반과 나는 같이 소리를 질렀다. 중년의 직원분이 웃음기조차 띄지 않은채 재촉하듯 우리를 이끌어 캐리어를 올렸다. 여권을 넘겨받은 직원이 자리에 앉은 그대로 빠르게 입력을 마쳤다. 마침내, 정말 힘들고 힘겹게 받아든 두 장의 티켓이, 우리 손에 들려졌다. 마감 15초 전에.


세상에서 가장 긴 한시간이 있다면, 나는 인생의 이 순간을 꼽지 않을까. 바깥양반은 그 일로 단 한번도 화를 내지 않았고, 나는 뉴욕으로 향하는 열다섯시간 내내, 뽑아도 뽑아도 새롭게 어디선가 튀어나오는 실핀을 하나 하나 손으로 뽑다가 지쳐서 잠에 들었다가 다시 깨어나서 머리카락을 뒤적이곤 했다.


결혼한지 1000일때쯤이 되어서 이 사건을 글감으로 떠올렸는데, 그동안 거의 이 일을 잊고 살 정도로 이런 대형사고를 쳐버린 나를 바깥양반은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셨다. 물론 바깥양반 친구들 중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사방팔방 소문을 내긴 했었지만 말이다.

메이크업 그대로 비행기 탑승한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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