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얘는 바쁠 때 이런 걸 시켜
"오빠 엄마 케이크 도안두."
언제나처럼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지필평가를 끝낸 직후라 성적처리에 여념이 없다. 바쁘다. 저번주에는 이틀이나 야근을 했다. 주말엔, 10시간이나 운전을 했지. 물론 어제도 야근을 했고, 오늘은, 시험 때문에 밀린 업무를 하느라 손이 쉴 틈이 없었다.
"오빠 도안"
"어어 알았어 바빠ㅠㅠ"
재촉하는 카톡이 또 왔다. 점심 먹을 때쯤이었던가, 성적을 입력하면서 동시에 빵을 먹고 있었다. 손이 양갈래로 바빠 답을 하지 못했더니 바깥양반이 재촉을 한다. 다음주에 어머님께서 환갑이시다. 바깥양반이 지난번 케이크 도안을 워낙 만족스러워하기도 했고, 그리고 당연히 남의 편인 나도 해줬는데 자기 엄마의 케이크도 그정도 정성은 들이고 싶겠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딱 바쁠 때인데.
"선생님 성적 마감은 하셨어요?"
"아아아 지금 바로 할게요, 아니 수업 지금이라, 아니다 지금 바로 입력할게요!"
오후 첫 수업을 마치고 내려오니 고사 담당 선생님이 성적입력을 재촉한다. 바로 다음 시간에 또 수업을 가야하는데, 고3 수업인데 시험 끝나고 바로 수업을 들어가줘야 한다. 미리 수업자료를 편집을 해서 가야하는데 다 마치지 못했다. 후다닥 전산을 켜 성적을 입력하면서 나머지 내용을 보니 다행스럽게도 쉬운 지문이라 수업자료 편집을 안하고 말로만 설명할만하다. 재빠르게 성적을 입력하고, 노트북을 뛰고 달려올라갔다.
그리고 퇴근을 한시간 앞 둔 마지막 7교시 시간. 수업은 없다. 조금 한 숨 돌릴 수 있으려나. 화장실을 다녀오며 바깥양반이 부탁한 도안을 생각하니...하니...아. 그래, 좋은 생각이 딱 떠올랐다. 몸은 지치긴 했지만.
자리로 돌아와, 복사기 옆에서 이면지를 꺼내서 스케치를 했다.
우주의 중심에 자리한 태양으로 어머니를 표현하고 주변을 도는 가족들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장모님의 머리 모양도 세심하게 모사하고, 항상 단촐한 꾸밈새의 처제는 묶은 머리로 알기 쉽게 만든다. 이 정도면...만족스러울듯하다. 바깥양반에게 보냈다.
"와ㅋㅋ"
"기발해"
"이거 지난번처럼 색상 지정해서 보내줘"
"짜잔."
당연히 미리 하고 있지. 이번 도안에서 색상은 중요하다. 단순한 디자인이라 색상에서 충분히 우주의 이미지가 전달되어야 한다. 게다가, 스케치를 하면서 느낀 것인데 다섯명을 글자와 함께 궤도 상에 조화롭게 배치를 해야 하는 것이라 그리고 지우고, 그리고 또 지우고를 여러번 반복해야 할 것 같아서 포토샵으로 작업을 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오는데만 20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등 뒤에서 사람들이 휙휙 지나가는데 개인 작업을 하는 것이라 항상 뜨끔하다. 퇴근시간은 조여들어오고, 사람들의 눈치에 마음도 바쁘다. 빠르게 빠르게 손을 놀린다.
궤도의 간격을 잡는 것이 어렵다. 아마도 케이크 디자이너분은 더 힘들 것이다. 고리 셋을 늘리고 줄이며, 어머님의 후광의 햇살 크기, 그리고 다섯 가족의 얼굴 크기를 조정한다. 자리 잡기가 여간 어렵다.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에서는 글자의 곡선을 바로 구현할 수 있는데, 포토샵은 별도의 처리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아, 색상 지정을 위한 양식이지만 이왕이면 구체적인 것이 나도 디자이너분도 서로에게 좋다. 글자 레이어를 나눈다. 꺾어서 어설프게나마 곡선으로 글자 배치를 만들었다.
손으로 그리는 것에 비해서 캐릭터들은 마우스로 표현하기 어렵다. 웹에서 아무 이미지나 마구잡이로 긁는다. 그런데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어떻게 딱 맞춤한 그림이 있었는데, 그리고 바깥양반도 딱 적당한 도안이 있어서 긁어와서 올렸는데, 나와 처제와 비슷한 이미지가 케이크 도안들 사이에선 없다. 아. 번거롭고 귀찮다. 해결하는 방법은 있지만, 검색보다는 손이 많이 간다. 구글에서 검색어를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며 이미지 검색을 계속했다. 아아...없다 없다. 어쩔 수 없지. 결국 처제와 나는 얼굴만 딴 뒤에 마우스로 머리카락을 표현했다.
대체 바깥양반은 나의 이런 노고를 알고 있을까. 그러나 도안은 완성. 바깥양반에게 다시 보낸다.
"아오 개빡쳐 진짜"
"헤어스타일도 저대로 해달라고 하고, 어머님 아버님 주름만 좀 표현해달라고 해."
"대박ㅋㅋ"
"주름은 빼자ㅋㅋ"
"잘했지?ㅋㅋㅋ"
"응 근데 아래 글씨가 많아서 다 들어갈지ㅠㅠ 일단 의뢰 보내볼게"
"응"
아래 문구는 그래픽 작업을 하면서 바깥양반과 상의해서 완성했다. 엄마가 아닌, 당신 혹은 여보가 아니라, 오롯한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엄마"들의 바람일 테다. 어쨌든, 그렇게 완성. 진짜 또 40분 가량 숨도 못쉬고 집중해서 작업을 했다. 퇴근시간을 조금 넘겼다. 교육청도 가봐야 해서 빠르게 짐을 챙겨 나온다.
"야 근데 호강은 무슨ㅋㅋ"
"엄마가 좋아하는 멘트야 호강ㅋㅋㅋ"
"보냈어?"
"응 아 답문 지금 왔다."
"뭐래?"
"움.. 선 위에 문구는 어려우시구요! 작은문구도여 ㅠㅠ 요게 예쁘지가 않을것 같아요 ㅠㅠ"
"이렇게 왔어"
"선 위에 글자는 안되는듯"
끄응. 궤도 상에 글자가 흐르는 게 포인트인데, 잘 안되려나. 차를 몰고 이동하는 동안 다른 개선점을 생각했다. 우선 색상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우선 바깥양반에게는 급한대로 보냈지만, 우주의 느낌이 살아나지 않는다. 파란색 말고...더 나은 색이 없을까? 그리고 궤도도 뭔가 못마땅하다. 작업 소요를 줄이기 위해 궤도 중간 중간 별 같은 걸 그리려고 했는데, 그러면 천문학적으로부터 문제가 발생하는지라. 어떻게 할까 곰곰.
교육청에 도착해 보니 회의까지 시간이 좀 난다. 노트북을 다시 연다. 바깥양반과 통화를 하며 몇가지를 상의했다.
"연분홍? 무슨 색으로 하지? 색상이 제일 중요해 우주 느낌 나야해. 아 그리고 디자이너분이 좀 오해하신듯. 선 위에 글자를 겹치라는 게 아닌데, 선 위에 글자를 써달라는 줄 아셨나보네."
"ㅋㅋㅋ고생하네 멘트만 조금 수정해줘. "우리집" 은하의 태양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이 색 저 색을 바꿔본다. 연분홍과 연보라, 모두 별로다. 우주. 우주. 파란색? 아악 전혀 아니다. 역시 밤하늘이라면, 그래...채도를 낮춰야겠다. 보라색의 톤을 낮춘다. 궤도의 색상은 회색에 파란색을 섞은 느낌으로, 역시 채도를 낮췄다. 배경의 채도가 낮은 만큼 태양의 따스함과 노란색 글씨가 돋보일 수 있을 것이다. 대체 며칠째 야근에 출장인데 교육청에 와서까지 이러고 있다니. 궤도! 그래 어쩔 수 없다. 중간에 틈을 만들고 별을 띄운다. 이래야 제대로 된 orbit이지. 자자자. 자자. 완성!
바깥양반에게 파일을 보낸다. 좋아하는 반응과 함께, 나는 회의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