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좌절하고 세번째엔 가지솥밥!

돌솥 길들이기 때문에 일주일이나 걸려버린 나의 집밥

by 공존

"오빠 돌솥 사자 솥밥 해줘."


언제나처럼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겨울에 한남동의 큰 레스토랑에서 점심 한정메뉴라는 돌솥밥을 먹으러 다녀왔는데, 고급 레스토랑이다보니 꽤나 호화스럽게 한상차림으로 식사가 나왔다. 젓갈과 감태 등을 곁들여 꽤 만족스럽게 먹고서 그 뒤로 종종 바깥양반은 돌솥밥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곤 했다.


그 의지가 실현된 것은 아직 봄꽃이 떨어지기 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외출을 못해 울적해하시던 바깥양반을, 저녁쯤 모시고 나와 비오는 날씨를 뚫고 좀 멀찍이 카페에 다녀왔다. 책을 읽는둥 마는둥, 잠을 청하다가 말다 하다가 저녁 메뉴를 어찌할지 한참 고민을 했다. 떡볶이? 곱창? 이리 저리 둘러봐도 외출 나간 동네에 마땅한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지도 앱을 보고 집으로 가는 길목을 한참 보다가 나는 마침내 바깥양반에게 돌솥밥을 하는 식당을 하나 찾아서 보여주었고, 바깥양반은 옳다쿠나 하며 그 식당에 가서 전복솥밥을 선택, 그리고 나는 영양솥밥을 먹었다. 나는 전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반대로 바깥양반은 전복요리를 꽤 좋아한다. 제주도에 여행을 몇번 갈 때마다 그놈의 전복김밥에 전복밥은 그리 꼭 드시는지.


하여튼, 그러고 나서 5월쯤 되었나, 새로 생긴 대형 식자재매장이 있어 바깥양반과 갔다가, 바깥양반이 돌솥을 발견하고는 돌솥밥을 해달라고 한다. 내가 집에서 미니화로로 고기를 두어번 구워먹다가 연기와 약한 화력에 완전히 흥미를 잃고 난 뒤였다. 돌솥. 돌솥이라. 일단 문제가 있다. 우리집은 인덕션이라서 소형가스렌지를 꺼내서 밥을 해야 한다. 뭐 그것 말고는, 당장에 문제될 것은 없지. 두개의 돌솥을 샀다. 4~5인분은 넉넉히 들어갈만한 큰 돌솥냄비와 1인분용 돌솥을. 바깥양반 전용으로 밥을 넣고 해주면 뭐 괜찮아보인다. 볶음밥을 사랑하시는 분인지라 누룽밥을 무척 좋아하기도 하고 말이지.


- 오늘은 특별 메뉴야

- 뭐지

- 기대하렴 후후후훗


그게 2주쯤 전인데, 바깥양반이 좀 업무가 과중하다보니 몸이 지쳐 힘들어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날도- 오늘 저녁엔 뭘하지 뭘하지 하면서 퇴근시간을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드디어 벼락같이 뇌리를 스치는 메뉴가 있었다. 전복솥밥. 마침 솥도 있으니 말이다. 차를 몰아 마트로 향하며 대강 레시피를 확인했는데 이미 그때쯤은, 새로 산 돌솥은 바로 사용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무려면 어때. 오늘은 전복솥밥이다. 의기양양하게 전복을 사서 집으로 향했다. 10cm 가량 되는 여덟마리가 8900원. 가격도 꽤나 저렴한 것이 만족스럽다.


전복을 사 집으로 가는 길때쯤엔 돌솥은 완전히 포기했다. 마트에서 전복을 먼저 고른 뒤 돌솥 세척법을 찾아보니...일주일 가량은 걸리는 긴 작업이다. 그래. 오늘은 일단 소금물에 하루 담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라나. 집에 가서 무쇠솥으로 하지 뭐. 애초에 인덕션이라 그게 편하기도 하다. 그리고 인덕션만의 장점이 또 하나 있는데, 불이 아니라 전기로 냄비만 가열하는 것이라 여름엔 덜 덥다. 살림하는 주부 입장에선 꽤나 큰 메리트다. 특히나 나처럼 덩치 크고 땀 많은 사람에겐.


집에 와서 먼저 쌀을 불려두고 전복을 손질해 휘딱 밥을 앉혔다. 전복의 입을 잘라내고 내장을 다지는 과정이 꽤나 손이 가지만 워낙에 나와 바깥양반 사이에 전복 취향이 갈리니 별로 불만은 없었다. 같이 식당을 간다면 나는 비싸기만 한 전복돌솥밥에 마뜩치 않은 식사가 될 것이고, 그렇다고 애초에 돌솥밥이, 집에서 그냥 해먹으면 되는 거니까. 그나저나 전복 손질 꽤 징그럽네. 사람같은 이를 잘라내고 식도같이 보이는 것도 조금 떼어낸다. 오늘은 처음이니까 네마리만 써야지.

...음. 명백한 실수를 두가지 했다. 솥이라기엔 뚜껑이 너무 가볍다. 인덕션용 냄비들이 열전도율이 가뜩이나 터무니없이 좋은데, 게다가 코펠마냥 가벼운 뚜껑이니...내가 평소에 먹는대로 찹쌀, 귀리, 보리, 현미, 흑미, 백미가 섞인 밥이 잘 익지 않아 정말 까슬까슬하다. 게다가 이 색깔에, 비쥬얼은, 와우. 입맛이 확 달아나는 기분이다. 흑미를 너무 썼다. 전복식당에선 백미로 전복 내장의 색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데 그런 비주얼적인 고민 따위 내게 있을리가. 게다가 같이 넣은 가지. 맛은 부드럽고 좋은데 가뜩이나 흉물스러운 색감에 초록색이 거북스럽다. 바깥양반이 좋아할까 싶어서 버터를 올렸더니 그것도 완전 미스. 가뜩이나 기력이 떨어진 바깥양반이 버터의 느끼한 맛에 영 숟가락질을 하지 못했다. 밥 반 전복 반은 될만치 퍼줬는데 말이다.


역시나 나답게, 첫번째 솥밥은 종합적으로 실패. 다음날 소금물에 돌솥을 끓이며 이 매끈한 솥에 누룽지를 앉힐 상상만 가득했다. 머릿속에 솥밥만 품고 있으니, 당연히 또 한번 판을 벌릴 수 밖에. 삼일쯤 뒤에는 이번엔 전기솥에 가지밥을 하기로 했다.


가지밥은 엄마가 몇년전에 만들어주셨는데, 엄마는 큰이모 식당에서 같이 일하시는 조선족 아주머니들에게 배우셨다고 한다. 기름기 없는 돼지고기부위를 섞어서 같이 솥에 밥을 해서 간장을 훌훌 쳐 먹으면 그 맛이 오가닉이라. 싱겁고 심심하다. 고기가 아니라면 아이들은 안좋아할 맛인데, 그게 내겐 딱이다. 일단, 그래도 처음 해보는 것이니 레시피를 검색해보니 백종원 스타일 가지밥이 나온다. 호오. 흐응. 아하. 미리 가지를 반쯤 익혀서 밥을 해라. 그래그래. 알았어.


퇴근길에 가지를 또 한봉다리 샀다. 제법 비싸다. 그래도 채소는 철 따라 딱딱 먹어줘야 밥상이 복스럽다. 어릴 때 엄마는 등굣길에 밭에 난 가지를 툭툭 따서 드시면서 가셨다지. 까슬까슬 떫은 맛이었다고 한다. 요즘 내게 느껴지는 가지 맛은 아주 푹 익혀진 호박고구마의 촛촉한 질감이랄까. 물론 껍질이 질긴 탓에 여전히 조금은 의문스럽지만.


파기름을 내고, 가지를 볶고, 간장과 굴소스, 설탕을 약간씩. 간은 싱겁게 한다. 가지요리는 왠지 항상 간이 약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게다가 다른 반찬도 있으니 밥은 밥으로 남겨두자. 압력밥솥이니 이번엔 제대로 귀리와 현미도 익을 것이니 안심을 하고 밥을 안히고, 쌀을 씻으며 모아진 쌀뜨물을 돌솥에 부어뒀는데-

음. 이런. 절반의 실패다. 가지가 양이 적었던 것 같다. 보기엔 썩 괜찮긴 한데 가지밥에서 가지의 감촉은 지나치리만큼 희미하다. 원래 이렇게 먹는 게 맛다고 생각해야 할까나. 그래도 가지의 촉촉함을 즐기고 싶다던 내 의도는 사라져있다. 생각보다 가지 껍질이 익히고 나면 흐물흐물한듯 싶기도 하고. 아쉬움을 달래며 부추를 후두둑 씻어 밥에 올렸다. 가지에 부추라니 꽤나 건강해지는 느낌이야. 실제로, 별 거 없이 채소로 이런 저런 장난질을 치는 사이에 몸무게도 조금 줄었다.


이번엔, 설거지를 하며 다시 돌솥을 바라본다. 돌솥. 쌀뜨물에 하루를 불렸다가 헹궈낸 뒤에는 식용유로 속을 한번 코팅해서 완전히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3일정도 걸리겠군. 이번엔 가지를 크게 자르리라. 나는 생각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자 그래서 마침내. 나는 우선 가지의 양을 두배로 늘렸다. 3인분에(바깥양반과 나 둘이 먹는 상인데 왜 3인분이냐 하면 2인분은 지나치게 볼품없는 분량이라 그렇다.) 가지가 하나였던 것을 두개로. 아 그런데, 막상 가지를 잘라놓고 보니 뭔가 무시무시한 양인데, 그래도 괜찮겠지 뭐. 도마 위에 수북한 가지를 한쪽으로 치우고, 일주일 전 해먹고 남은 전복을 손질한다. 일주일을 냉장고 안에서 지냈으니 신선도는 깔끔히 사라져지만 어차피 주인공은 가지들이다. 그리고 돌솥이다. 내장은 깔끔히 잘라내서 버리고 살집만 쓴다.


손질을 하는 동안 불려뒀던 쌀을 냄비에 담고, 가스레인지를 꺼내어 먼저 솥을 올린 뒤에 차곡차곡 가지를 올리...는...데...많다. 많아도 진짜 많다. 이래도 되는걸까 싶지만, 얘들 다 익어서 숨 죽으면 괜찮겠지. 바깥양반과 나, 각자 가지 한개씩을 먹는다고 생각하니 또 괜찮은 양이기도 하다. 냄비가 그래도 꽤 커서 다행이다. 전복살도 가지 아래 깔아두고, 불을 켰다.


처음으로 밥을 지어서 해먹어본 게 내 기억에 10살쯤일까. 전기밥솥에 물을 올리는 걸 누나가 먼저 배웠고, 나는 이내 따라했다. 그 와중에 열 한 살 떄쯤엔 당시 막 선풍적인 인기를 얻던 신제품인 압력밥솥(전기 밥솥 말고)의 사용법을 내게 알려주고 밥을 실제로 짓게 하셨던, 엄마는 확실히 비범한 사람이랄까. 팔팔 끓어가는 밥솥 앞에 앉아서 어렵게 책장을 넘기며 솥밥의 추억에 젖는다. 그보다 어릴때, 내가 무엇이든 응석을 부릴 수 있던 시절에는, 서점 직원들을 여럿 밥을 해줘야 해서 굳이 누룽지를 만들 필요가 없었던 엄마에게 누룽지와 숭늉이 먹고 싶다고 말했던 기억도 슬그머니 떠오르다. 그때 엄마는 생글생글 웃으시며 "누룽지? 그럼 밥 좀 더 익혀야 되는데?"라고 말씀하셨지.


불을 줄인다. 냄새를 맡는다. 오랜만에 하는 것이지만 냄새만으로도 충분히 밥이 어느 정도 익었는지는 알 수 있다. 작은 불에서 충분히 인내심을 갖고 밥이 고루 익도록 한다. 귀리, 보리, 현미가 합쳐진 이 까슬까슬 거칠거칠의 향연이란. 앞서 첫번째 쇠솥밥에서도 누룽지는 아주 조금 만들어졌지만, 가뜩이나 설익은 귀리며 현미가 씹기에 거북할 정도로 거칠었다. 과연, 오늘은 어떨지. 그리고 익히지 않고 바로 넣어 익힌 가지들은 어떨지.


자아-. 그래서 마침내 충분히 뜸까지 들인 가지밥의 뚜껑을 연다. 다행히도 착실히 다이어트를 한 가지들이 차곡차곡 밥알에 섞여있다. 구수한 누룽지 내음. 아래에 두꺼우면서도 부드럽게 누룽지가 잡혀있다. 바깥양반이 채비를 하는 동안 슬쩍 한 숟가락 입에 물어봤다. 솔솔 피어오르는 누룽지의 풍미가 코를 간질이고, 마치 뜨겁게 익힌 마시멜로우를 먹듯 촉촉하고 부드러운 가지가 입을 꽉 채운다. 여기엔, 마찬가지로 가지밥처럼만큼이나 싱건싱건한 장조림이지.


그릇을 착착 내어 바깥양반과 나 한그릇씩. 그리고, 장조림과 간장을 충분히 붓는다. 일주일 꼬박의 노력의 성과랄까, 혹은 노동의 댓가랄까. 시원한 여름바람처럼 가지의 맛이 달고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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