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처 없이 닭강정

비 와서 김치전 하려고 오징어 고르다가...

by 공존

"저녁 뭐먹지."

"아무거나요."

"비오는데 막걸리랑, 아침햇살 사가서 김치전이나 할까?"

"쫗아용."


그러니까 그게 목요일이나 금요일이었던 것 같은데, 저녁을 뭐 해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또 펑펑 쏟아지는 호우에 오랜만에 김치전이나 할까 생각이 들었다. 김장 두달 전이니, 몇개 안남은 배추김치라도 빨리 빨리 해치워야 한다. 그리하여 퇴근길에 집 근처 마트를 들러서는 먼저 내가 마실 막걸리, 그리고 바깥양반이 마실 아침햇살을 고르고 호화롭게 오징어라도 넣을까 하며 신선식품 코너를 지나가다가...


어. 반값이다. 닭가슴살이 반값이다. 6천 얼마 하던 것이 2,900원.


이걸 어쩌나. 고민을 조금 했다. 그리고 매대엔 내가 며칠 전에 샀던, 반값하는 쇠고기도 조금 있고, 신선도가 떨어지기 전에 털어버리려는 품목이 몇개 보인다. 소고기는 미트볼을 만들어서 지칠만큼 먹었다. 그리고 자주 해먹던 닭갈비를 요 한달 정도는 안샀다. 마침 땡길 타이밍이긴 한데...닭가슴살 이걸로 뭘 해먹는다. 고민이 들었다. 안사고 지나치기엔 가격이 너무 혹하고, 그렇다고 사서 가져가기엔 밑도 끝도 없이 해먹을 게 딱히 없다. 허벅지 살도 아니고 그냥 가슴살, 껍질도 없는 녀석들인 걸.


그러나, 나라면 답은 정해져 있지. 두 팩을 사서 집에 가져가서, 일단 신선도가 염려되어서 염지를 한답시고 치킨튀김가루를 꺼내서 물과 반죽한 다음 닭고기를 한입 크기 씩으로 잘라서 담갔다. 일단 오늘은 김치전이다. 너희는 들어가 있어보려므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뚜기에서 판 치킨튀김가루는, 염지가 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틀 뒤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닭고기를 꺼내봤을 때 조금도 상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다행이야.

일단 이건 다음 날 일요일 아침에 또 튀긴 사진. 토요일 아침은 딱 이거 절반 정도였다.

아침햇살을 맞으며 치킨을 튀기는 한가로운 시간이 삼삼하다. 그런데 또 상황이 조금 꼬인다. 닭가슴살이 너무 많다! 600그램은 되는 것 같다. 아니, 800그램인가? 두 팩을 사서 한꺼번에 반죽에 담가뒀으니 그걸 다시 튀김옷을 묻혀 튀기니 금방 금방 채반이 가득찬다. 아직 반의 반도 튀기지 않았는데? 아침 식사로 닭고기 튀김을 만드는 미친 짓을 하고 있으려니 더욱 양이 많아 보인다. 밥반찬이므로 조금만 튀겨서 상을 차리고 바깥양반을 불렀다. 밥 반찬으로 순살튀김의 퍽퍽함과 바삭함을 즐기려니...아...남은 저 닭고기들을 어쩌나...게다가 염분이 별로 없어서 전혀 짜지 않은 맛이었다. 당장 내일 마저 튀겨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저녁 뭐먹지."

"아무거나요."

"아...의견 좀 내봐. 내가 하고 싶은 요리가 없는 상태라서 의욕이 떨어져서 그래."

"난 다 괜찮은데?"

"으윽...아...뭐하지...뭐하지...아...하고 싶은 게 없으니까 하기도 싫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일요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남은 닭고기를 모두 튀겼다. 그리고 아침 메뉴는 전날 먹다가 남은 김치찌개에 라면사리를 넣어서 해결을 하고는 외출을 하고 집으로 향하는데, 집으로 향할수록 저녁 메뉴를 뭘로 할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애초에 닭고기를 산 것도 가격에 혹해서이고, 튀김은 좋지만 있으면 있는대로 먹는 편도 아니고, 이틀 내내 꽤 많은 양을, 꽤 많은 시간을 들여서 튀겼으니 나의 요리의 성취감은 충족된 상태였다. 짜지 않고 바삭해서 먹을만한 홈메이드 순살튀김은 꽤나 괜찮은 맛이긴 하지만, 따악히, 따악-히 일요일 저녁 메뉴로 하고 싶진 않았다. 아침에 튀겨서 냉장고에 넣어둔 상태라서 식어있을 것이기도 하고. 이걸 오븐에 돌려서 데워서 먹는 건, 더욱 재미가 없다.


"아 골라봐. 치킨을 어떻게 살려서 대충 먹어볼까 아니면 차돌박이 된장찌개를 끓여볼까?"

"치킨도 먹어야 하지 않아?"

"아...그럼 별 수 없지. 닭강정 하자. 치맥이다."


바깥양반이 차돌박이를 좋아한다. 그러나 이것도 제 무덤을 파는 짓인 건 마찬가지. 손이 적지 않게 간다. 그리고 엄마표 집된장은 바깥양반 입맛에 맞지 않아서 조미료를 꽤 부어야 한다. 치킨을 먹으면 먹겠지. 근데 데펴먹잖아. 싫잖아. 재미도 없잖아. 에라 모르겠다. 다른 무덤이지만 파보자. 닭강정을 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사실 집에서 닭튀김을 만들어놓았으니, 거기에 집에 있는 양념거리들이면 뚝딱이다. 사실 애초에 금요일쯤, 닭고기를 반죽에 재워놓고는 양념법도 찾아놓은 참이다. 고추장 한스푼, 케찹 한스푼, 물엿 두 스푼에 고추나 마늘, 파면 간단히 완성되는 요리다. 이걸 찾아놓고도 안한 이유는 왜인지 모르겠다. 닭강정은 정말 좋아하는데 뭔가 도전욕구가 불타지 않았던 것 때문인지. 최근에 너무 엄혹한 음식들만 만들긴 했다.


어쨌든간에 집에 돌아와서 후라이팬을 올린 뒤 빠르게 파와 마늘을 손질해서 볶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념장을...조금 내 스타일로. 고추장 한스푼 반, 케찹 한스푼, 거기에, 피넛버터를 반스푼 넣었다. 이게 나름의 회심의 카드인데, 맵고 시고 단 자극적인 양념의 가운데에서 피넛버터가 고소한 맛으로 중심을 잡아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완성된 뒤에 그 생각은 정답이었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속초의 북청닭강정 스타일로 깻잎도.

물엿을 추우웅분히 짜서 물과 함께 양념을 한 데 붓고 뒤섞은 뒤에 냉장고에서 튀김을 꺼내 모두 부어버렸다. 다시 땅콩버터로 돌아가자면, 피넛버터가 안들어갔을 경우에 가벼운 맛들이 날 것이다. 그것을 잡아주기 위해 파와 마늘이 동원되는 것이지만 고추장과 케챱의 비율을 생각해볼 때는 아마 파를 굉장히 많이 넣어서 고추장의 자극적인 맛을 보완해줄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인데, 아마 그렇게 되면 닭강정이 아니지. 그러니까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집에서 닭강정을 해보실 분이 계시다면, 피넛버터를 고추장보다 약간 적은 비율로 넣어보시길.


보글보글 센 불에 양념이 졸여지면서 튀김도 데워지고, 그러면서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간다. 기름에 함께 볶아진 깻잎도, 유통기한이 한참 지나긴 했지만 그래도 먹어치워야 하니 이 기회에 털어넣어버린 아몬드들도, 언제 쓴 것이 마지막인지 기억도 잘 안나는 볶은 깨도. 아차 그러고보니 볶은 꺠도 빨리 먹어치워야 하는 것 중 하나인데. 제대로 요리를 배운 게 아니고 하니 깨소금을 잘 쓰질 않는다. 비빔국수에 앞으론 자주 넣어야겠다.


어찌됐든 저찌됐든, 텐션이 한껏 떨어지는 가운데 닭강정은 완성되었다. 만들어놓고 보니 그래도 곱고 예쁘다. 맥주와 아침햇살을 꺼내서 다시, 바깥양반과 마주앉았다. 정처없이 흐르기도 하는 인생처럼, 주말 마지막 저녁시가가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정처없이 흐르기도 한다. 근데 웃기게도, 팔아도 될 정도의 맛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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