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무렵의 기억
저녁 8시 30분. 도심 방면으로 향하는 전철은 많지 않은 수의 사람들만으로 채워져 있었다. 고요하다. 이 시간의 전철이란 모름지기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것이므로, 거꾸로 도심을 향해 집으로 가려는 나는 한적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대편 전철 안에는 오늘도 한가득, 고단함을 양 어깨에 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과 사람들이 있겠지. 그 인파에 실린 채로 집에 가지 않는 나는 운이 좋은 것일까. 머리를 전철 유리창에 비스듬히 기대고 잠을 청하려는데 케이크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퍼억. 쨍그랑.
그는 삼십대 후반에 접어든 것으로 보이는, 몸집이 작고 색이 바란 녹색 작업용 점퍼를 입은 남자였다. 엉거주춤 무릎을 구부리고 그는 바닥에 떨어진 케이크를 추스르고 있었다. 그와 함께 떨어졌을 터인 쟁반은 본래 제과점에서 쓰이지 않는 쟁반. 다음 역에서 내리기 위해 몸을 일으키다가 떨어트렸을 터인 그 케이크와 쟁반은 본래 하나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누구에게 전해지기 위해 그 남자의 손에 들려있었던 것일까. 전철 속의 저마다의 사람들은 케이크로부터, 그리고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과일을 얹은 생크림 케이크는 전철 바닥의 먼지를 가득 묻힌 채 상자 안으로 쓸려 들어갔다. 바로 옆 자리에 앉은 중년의 여성이 휴지를 건넸고 남자는 힘없이 받았다. 누군가가 먹다가 남긴, 이제는 먹지 못하게 된 케이크와 남자를 바라보는 이들의 눈빛이 한결같다. 사회면에서는 부의 양극화를, 경제면에서는 웰빙 히트상품을 보도하는 사회. 누군가가 남긴 케이크를 상자에 담아 어디론가 향하는 남자와 아무 망설임 없이 먹다 남은 음식을 쓰레기통에 버릴 수 있는 사람이 한 지하철 안에 공존하는 도시. 혼란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솟는 등록금에 신음하는 사이에도 매일처럼 술로 밤을 보내는 대학생활의 일말 속에서 나는 케이크를 남기는 사람인가, 아니면 쟁반에 담아 가져가는 쪽인가. 누군가를 위해.
건네받은 휴지로 바닥에 묻는 크림을 남김없이 닦은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출구를 향해 돌아섰지만, 조금 전 그의 온전한 보호 아래 있던 케이크와 상자는 무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구부정한 남자의 뒷모습이 케이크와 닮아 있었다. 낡은 작업복 점퍼의 그는 어디로부터 어디로 옮아가려던 중이었을까. 이 지하철 속에 우리는, 그러니까 케이크와 쟁반처럼 애초에 별개의 존재인 것일까, 제과점에서 함께 태어나지 못한 채 섞여서 만나다가 함께 땅에 떨어지기도 하는. 남자의 뒷모습은 마치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그 질문들이 하나같이 맵고 아픈 것이어서 그를 바라보는 삼삼오오의 눈빛들이 그리 쓸쓸했던 것인지.
나는 그가 홀로이길 바랐다. 케이크가 오로지 홀로인 그만을 위한 것이었기를. 남자의 집에서 어린 아이가 케이크를 기다리고 있지 않기를. 그가 던진 수많은 질문들과 함께, 그것은 하나의 절실한 바람이었는데 그러나 케이크와는 무관하게 나는 그가 행복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가 행복하다면, 그날 그 지하철 속에서 그를 바라보던 모든 사람들이 조금은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