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두 통

그 안에 담겨 있던 아들의 자존

by 공존

아버지가 딱 내 나이가 되셨을 무렵 부모님이 하시던 서점이 부도가 났다. 지금 내 나이에서 25 정도를 빼야 셈이 나올 어린 나이였던 나는, 번창하던 서점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얼마나 빚이 생기고 부모님이 어떤 처지가 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단지 집으로 빚쟁이가 찾아오거나 급기야 드라마에서나 보던 빨간 딱지들이 집안 곳곳에 붙여지는 것을 본 다음날 급하게 고향을 떠나는 처지를 겪으며 한번의 실패로 삶이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몸소 경험해보았을 뿐이다. 철없는 나는 그때 자전거를 타다가 팔을 분질러먹었다. 엄마는 하나 둘 삶의 기반이 처절하게 무너지는 와중에 나마저 다치는 것을 보며 정말로 겁이 났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2년 뒤, 우리는 서울의 언덕배기 반지하방에 살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버스 정거장에서 20분을 걸어야 집에 당도했는데, 가파른 언덕을 한참 올라가 꺾어지는 지점이 우리집이었다. 성장기와 사춘기를 동시에 맞은 나는 누나와 한 방을 쓰며 매일 다퉜고, 누나는 누나대로 이리 저리 고생하며 예민한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이 주무시던 안방의 창문은 바로 길가로 연결되어 있어서 아무나 지나가다가 안방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었다. 차가 지나가면 흙먼지가 들어왔다. 두분은 한 여름에도 창문을 열지 못했고, 선풍기 한대만 놓고 잠을 청하던 어느 무덥던 날에 엄마는 자다 말고 길바닥에서 앉아서 잠시 바람을 쐬고 들어오기도 했다.


그런 시절에도 우유 두 통은 매일 나를 살찌웠다. 1000mL의 우리나라 대표 우유브랜드 두 개. 당시에 한통에 1700원이었다. 순대국이 2500원쯤 하던 시절이었으니 지금 시세로 따지면 꽤 비싸다. 더 싼 브랜드도 많았는데 왜 하필 꼭 비싼 그 브랜드였을까. 그런 고민을 할 겨를도 없이 나는 매일 우유를 두 통씩 마셨다. 물 대신 우유를 마시고, 가끔 아침을 거른 날은 학교에 가져가서 두 세 입에 비워냈다.


몇억이나 되는 빚이 있었고 그것을 갚느라 아버지는 집을 한동안 떠나서 온갖 돈 되는 중노동을 하셨다. 엄마는 큰 이모의 식당에서 삼계탕을 팔팔 끓여, 역시 반지하였던 조리실의 계단을 뚝배기 여러개를 들고 오르는 고된 일을 하셨다. 그리고는 저녁을 한참 넘긴 늦은 밤에야 집에 들어오시며 반드시 슈퍼에 들러 우유를 사오셨다. 책상이 없는 나는 이불을 깐 자리에 엎드려서 책을 보고 있다가 엄마가 오시면 우유를 받아 빨대를 꼽고 한통을 즉시 비웠다. 그리고 남은 한통을 몇모금 마시고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으며 물 대신 마시다가 이내 비웠다.


키가 크고 살이 찔 무렵이라지만 매일 두 통씩이나 왜 마셨댔는지. 부모님은 몸을 혹사하여 빚을 갚아나가는 와중에도 도통 우릴 기를 죽이지 않으셨다. 아니면, 힘들고 외롭던 하루 하루를 마치고는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아들을 보는 것이 두분의 행복이고 위안이었을까. 3년만에 언덕 위 반지하방을 탈출해서 평지에 있는 반지하집으로, 그래도 세칸이나 되는 방을 얻어서 이사를 했고 성장기가 끝날 때까지 나는 원래부터 물려받아 갖고 있던 유전자와 매일 먹었던 우유 덕에 반에서 늘 키가 크기로는 두세번째에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에도 그리고 지금까지, 나인 채로 살고 있다.


어른이 되었고 내 삶을 갖게 되면서 무수히 실패를 하곤 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실패의 고통과 부담도 커짐을 느낀다. 내 직장 생활은 매년의 실수와 실패를 발견하는 나날들이었고, 기억을 곱씹는 버릇이 있는 나는 자다가도 내 잘못에 몸서리를 치곤 한다. 그러나 내가 한 어떤 실패들이 부모님이 겪으셨던 부도와 타향살이, 혹독했던 3,40대의 그 시간에 비할까.


그리고 나는 우유 두 통의 기억에서 실패를 견디는 마음의 버팀목을 발견한다. 모든 것을 잃고 시작한 서울살이에서 엄마와 아빠는 빚을 내어서라도 내게 필요한 것은 채워주고자 애쓰셨다. 그리고 비만이 컴플렉스였을만큼 식욕이 넘쳐흐르던 내가 눈치도 없이 그 비싼 우유를 비우는 것을 보며 또 하루를 견디셨다. 그렇게 부모님은 가족을, 자식들의 미래를 지켜내셨다. 두분 그리고 누나의 희생으로 그 시간을 지나온 나는 실패는 언제나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기에 무엇이든 시도하고 도전하는 나의 자유분방함은 고스란히 부모님의 은혜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다. 어려움 속에서 나의 모습, 우리의 모습을 지켜내고 지켜내지 못함은 실패 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시간을 함께 견딜 누군가가 있느냐의 문제인 건 아닐까. 지난해에 나는 꽤 큰 어려움을 겪었다. 곁에 있는 아내가 가장 큰 힘이 됐다. 그리고 지금은 아내가 조금 힘든 시기다. 나 덕분에 이겨낸다고 그녀는 이야기한다. 마치 그 반지하 시절, 내가 부모님이 사오신 우유에서 평온한 하루를 느끼고, 두분은 그것을 순식간에 비워내는 나의 모습에서 미래의 희망을 발견했던 것처럼. 그때에도 지금에도 나일 수 있게 만든 그것은,


매일 우유 두 통

그 속에 담긴 부모님의

비할 바 없는

사랑.


장욱진, <가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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