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책장을 들여본다는 것은

그이의 내밀한 공간을 거니는 것

by 공존

타인의 책장을 들여본다는 것은 그이의 내밀한 공간을 거니는 것이다. 빽빽하건 느슨하건, 잘 정돈된 책장은 그가 곁에 두기로 한 책들과 읽기로 한 책들만이 남아 그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담아낸다. 책장 앞에 서면 셜록 홈즈가 시계 하나만을 보고 여러가지를 맞춘 것처럼 누구나 탐정이 될 수 있다.


바깥양반 생일 기념 차 들른 양평의 한 펜션에서 나는 세련된 책장을 만났다. 널찍한 서가에 펜션 사장님의 작업물로 보이는 건축모형들이 있고, 90년대 주로 출판된 다양한 미학 철학 도서들로 가득했다. 보물을 만난 느낌이었다. 한 사람이 살아온 흔적을 오롯이 훔쳐볼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다.


간단한 간식과 와인을 제공하는 시간에 서가를 보다가 철학서를 몇개 집었다. 롤랑 바르트, 들뢰즈와 가타리에 대한 교양서였다. 건축학도였을 사장님의 커리큘럼 상, 깊은 수준으로 철학을 다루긴 제한이 있었을 것이다. 대신 후기 구조주의와 포스트 모더니즘을 소개하는 다채로운 도서들이 눈에 띄었다. 동병상련이랄까. 민주주의교육을 위해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다가 한참 푸코와 씨름을 하고 있는 터라 사장님이 철학의 바다를 항해하며 한 권 한 권 고르고 자신의 항로를 잡아나갔을 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머금어진다. 친절하기 그지없는 사장님의 태도가 거짓된 것이 아니듯, 거칠게 박박 긋는 나와는 달리 얇은 샤프심으로만 알뜰살뜩 밑줄이 그어져있다.


말 없이 책을 한권 빌려 바깥양반이 자고 있는 틈을 타 읽었다. 롤랑 바르트의 <기호의 제국>인데 제목 그대로 기호학을 통해 서구문명과는 판이하게 다른 일본문명을 다각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이 일본 학계에 꽤 센세이셔널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는데 동양문화의 공통소인 젓가락이나 절, 상차림 등은 재미나게 읽었지만 일본 고유의 문화에 대해선 내가 책을 독해할 인식의 기초가 부재해 맥락을 짚기 어려웠다. 기호학적으로 말하자면 내게는 기의가 텅 빈 기표로서 다가오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평생을 서구문명을 분석하는데 바친 철학자가 전후 일본의 현대사회를 바라보고 느낀 호기심이 대단했으리라. 어쨌든 재미있게 읽었다.


조식을 먹고, 다른 책을 하나 더 구경하며 사장님과의 말 없는 대화를 홀로 이어갔다. 책을 보고 나도 읽고싶어 장바구니에 담았다. 영락없는 30대 후반인 나도 내 책장, 내 서가에 책임을 질 나이가 되었는데 누구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내 살아온 과정이 딱히 학문적이지 못했음이 뒤늦게 뉘우쳐진다. 늦게라도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상관은 없지만.


아쉬운 것이 한가지 더. 스물 두 살 때 쯤 “프리북스” 운동을 보고서 나는 내 주변인들에게 내가 아끼던 책들을 아낌없이 뿌렸다. 좋은 책을 서로 나누자는 운동의 사고방식에 감화된 결과다. 군대 가기 전에 읽었던 책들이니 내 사고와 사상의 오롯한 결과물들인데 그중엔 절판되고 중고 매물도 없어서 어찌 구할 방도가 전혀 없는 책도 있다. (굳이 무슨 책인지 밝히자면 <착한 사람 예로센코>다.) 그 책을 선물한 후배와는 애저녁에 연락이 끊겼다. 지난 일을 마음에 담아놓지 않는 성격이라 지금 한번 툴툴대고 말 일이지만, 이것도 타인의 책장을 들여다본 후과이리라.


지금을 살아가는 나의 서가엔 아직 읽은 책들보다 읽어야 할 책들로 가득이다. 얼마나 살고, 얼마나 살아야 내 책장에 스스로 당당하고 남에게도 떳떳할런지. 할 일이 가득이다. 이어지는 삶에 이제는 “무엇을” 보다는 “어떻게”만이 질문으로 흩뿌려져 있다.

이전 01화나는 쪄죽핫 협회가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