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존 May 20. 2021

닭다리 사랑

동백꽃 필 무렵(13)

 나는 닭다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발라먹기 편하기 때문이다. 발라먹기 편한 부위는 그만큼 뼈 사이사이에 숨겨진 살점들을 발라먹음으로써 즐기는 그 진미를 주지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부위는 날개 중에서도 봉이 아닌 위쪽. 뼈 두개를 얇은 살과 함께 발라먹는 것, 그리고 닭갈비부위다. 춘천가서 먹는 그 닭갈비가 아닌 후라이드된 치킨의 갈비부위. 등뼈와 갈비뼈가 넓게 붙어나와 살은 없지만 튀김옷이 넉넉히 붙어있고 고기는 얇게 펴져 있어 짭쪼름하게 뜯어먹기 좋은 그 부위. 어디 닭다리가 이들 부위에 비하랴. 내게 닭다리는 퍽퍽한 닭가슴살이나 매한가지다. 닭가슴살도 발라먹기 수월하기 그지없지. 그만큼 맛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바깥양반과 치킨을 먹을 때 다리 두 쪽을 모두 양보한다. 바깥양반은 닭다리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발라먹기 편하니까 더욱 그럴 것이지. 물론 나는 바깥양반이 서투르게 발라먹고 버린 닭다리를 다시 집어 위 아래 깨끗하게 다시 발라먹고 통에 버린다. 치킨을 자주 먹지도 않았거니와, 순살도 적지 않게 시켜먹어서 바깥양반의 치킨 발라먹는 솜씨가 그리 나아지진 못한다. 그것은 또한, 난이도가 있는 부위는 내가 몽땅 먼저 먹어치우는 탓이기도 하다.


 다만 나는 100% 내 식성 탓인 나와 바깥양반 사이의 0:2의 닭다리 배분에 대하여 어느 정도 내 지분은 주장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은 한다. 왜냐면, 좋아하지 않을 뿐이지 먹지 않을 이유도 없는 것을 늘 양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올해 초쯤에 치킨을 먹다가,


"바깥양반. 앞으로 우리 한가지 약속을 해."

"응?"

"다리는 너 다 먹어."

"오예에."

"대신 두번째 닭다리 먹기 전에 나에게 한번만 물어봐줘."

"응? 안먹는다며."

"응. 안먹어. 그래도 한번만 나한테 말 걸어주고 너 먹어."

"알았어."


 라고 말을 해둔 참이다.


 물론 이 약속이 잘 이루어지진 않는다. 바깥양반 입장에서야 실제로 내 허락을 얻고 먹을 일도 아닌데다가, 저 약속이 그저 내 장난기가 발동한 허위의식의 산물임을 알고 있고, 결정적으로 드라마를 보던 뭘 하던, 음식을 먹는데 열중하고 있는 때문. 나는 그럼 꼬박 그때마다 굳이 말을 건데. 다리 먹었어? 그 대사 해주세요 얼른. 해가며.


 오늘 급식에 닭다리 두개가 나왔다. 한번 남이 발라먹은 다리뼈가 아니라 온전한 닭다리 살을 뜯는게 오랜만이라서 바깥양반에게 카톡으로 급식 메뉴를 말했더니, 바깥양반은 "그럼 앞으론 동백이 하나 나 하나."라고 한다.  이런 바깥양반의 닭다리 사랑. 또 나의 닭다리 사랑.

이전 18화 정확히 어젯밤 새벽 한시 이십일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