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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Aug 08. 2021

Check in : 이후북스테이

#Place 09. 영월에서 가장 인기있는 숙소 중 하나랍니다.

"일단 5월 4일 1박으로 미뤘어. 근데 그때 일찍 갈 수 있나? 퇴근하고 밤에 가면 가는 의미가 없는데."

"아유...출근이 잡히냐...일단 그날로 해. 둬보자."


 영월 여행의 시작은 이후북스테이였다. 워낙 인기있는 숙소라서 몇달 전에는 예약을 잡아야 한다는곳이라, 바깥양반은 지난해 가을 쯤에 이곳을 예약해뒀다고 한다. 2월 말로. 그런데 하필, 예약한 그날 내가 출장이 잡혔다. 바깥양반에게 사과하고 펜션에 일정을 문의해보자고 했는데 가능한 날짜가 훌쩍 지나 5월 4일과 5일. 그때가 되면 또 어떤 불상사가 발생할지 알 수는 없다. 그 외에 다른 날짜는 또 몇개월이나 기다려야 한단다. 잠깐 고민한 뒤에 날짜를 확정, 운 좋게도 우리 모두 반차를 쓰고 일찍 출발할 수 있었다. 그래서, 중부내륙에서 커피도 마시고 일미닭강정과 영월동강막걸리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펜션에 도착.


 펜션 뒤꼍에 차를 대니 사장님께서 강아지와 함께 우릴 반기신다. 나는, 처음 와본 영월의 독특한 지형과 도로를 보고 이미 한번, 또 이후북스테이의 세상 한적한 자리에 또 한번 놀라며 차에서 내렸다. 이후북스테이 위로는 길이 없다. 동강 최상류라서 길이 이내 끊긴다. 이런 곳에 정말, 최소 반년 전에는 예약을 잡아야 하는 핫한 숙소가 있다고?

 근데 장서가 꽤 괜찮다. 사진은 전부 바깥양반이 찍기에 건넛방의 책장, 거실의 책장, 다락방의 책장 중에 다소 하드한 거실의 서고 사진이 빠져있지만, 알알이 그림책부터 인문 자연, 외서까지 다양하다. 외서 중에는 심지어 "드래곤 백과사전"이라는 매우 매우 값 나가보이는 책까지. 가족 단위로 오면 어떤 연령대든, 어떤 취향의 사람이든 호기심이 가게끔 하는 독특한 책들로 큐레이션이 되어 있다.


"야 여긴 1박하긴 너무 아깝네."

"응 근데 처음이라. 있어보고 나중에 또 오지 뭐."


 아마도 이 하루가, 우리가 기꺼이 영월을 다시 찾게 된 이유다. 한곳에서 오래 머물기 좋은 곳. 우리는 영월서부시장에서 이것저것 맛보고 온 터라 배가 당장 고프지 않았다. 짐을 풀고 구경을 하다보니 얼마 안되어 대학원 수업 시간이 되어 나는 줌으로 수업을 들었고, 바깥양반은 내가 수업을 듣는 동안 옆에서 책을 몇가지 구경하고 있었다. 9시가 되어 수업이 끝났고 그제서야 닭강정과 막걸리를 꺼내 본격적으로 밤을 보내려하는데,

 세상마상 노래방 기계다. 노래방 기게다!!!!!!


 사장님께서 지인에게 받아 숙소에 두었다고 한다. 코로나로 1년 반 가까이 노래방 근처에도 못가본, 술친구들이랑 노래방을 자주 가곤 했던 나와, 그래도 소싯적에 음주가무를 솔찬하게 즐기신 바깥양반은 콘센트를 꼽아보기도 하고 마이크를 테스트도 해보는 둥 부산하게 기계를 만졌다.


 된다. 잘 된다. 세상에나.


 바깥양반과 나는 노래방을 같이 와본적이 없었다. 코인노래방조차도. 그래서 각자 노래실력이 어떤지 모른다. 우리 결혼식 축가를 내가 한소절 같이 불렀는데 그때 바깥양반은 내가 삑사리를 낼까봐 온통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노래를 잘부르고 말고는 전혀 관심도 없었다고. 나는 바깥양반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단 한번도 볼 기회가 없었는데 잘되기도 했다. 한시간 가까이 단 둘이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코로나 시국에 이게 웬일이야!

 아침이 되어 산책을 시작했다. 우리가 마당에 나오자 강아지가 어김없이 따라와서 우리 앞에 벌렁 누워 꼬리를 흔든다. 이후북스테이의 필수코스 "방울이투어"의 가이드시다. 우리가 발걸음을 떼자 방울이가 길을 잡는다. 날씨도 공기도 풍광도 좋아 펜션 아래 큰길까지 내려왔다. 어제 내린 비로 동강이 거세게 흐르고 있었다.


 이 좋은 풍경에 사람이 없다. 영월의 한적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풍경. 여름에 오면 더욱 좋을 것 같았다. 막상 여름에 와보니 가을에 오면 더 좋을 것 같고, 군데 군데에선 설경에 대한 궁금증을 품게 만들기도 했지만.


"가유? 잘 지냈어유?"

"네에 감사합니다. 되게 좋았어요."

"홀홀 차 한잔 마실텨?"


 다시 올라와 남은 짐을 정리하고 차에 모두 싣고 나니 사장님께서 청소 도구를 방으로 착착 옮기시더니 허리를 펴고 묻는다. 시골에선 이런 거 거절하는 거 아냐. 나는 머뭇거리는 바깥양반 뒤에서 나지막히 등을 떠밀었다. 그러자 사장님은 본채로 우릴 데리고 가 고구마와 매실차를 내주신다.


"여기 정원은 다 직접 조경하신거예요?"

"응 이거 한~참 걸렸지."

"아...오래 사셨어요 여기서?"

"으응 서울 가서 한참 살다가 들어왔어."


 사장님은, 영월에서 태어나 한참을 서울서 살다가 돌아오셨다고 한다. 홀연히 동강 상류의, 이내 도로조차 끊기는 이곳에 집을 지어 살고 계신듯하다. 이후북스테이의 사실상의 관리자인 따님이 서울과 영월을 오가며 생활한다는듯. 거실엔 다른 강아지 두마리가  있다. 빼곡히 세간이 들어찬 전형적인 시골집에서 사장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느긋하고 한적하게, 시간을 보낸다. 본채 곁에 펜션을 하나  운영하고 계시다.   크고, 방이 여럿. 여기도 신혼부부가 며칠 묵고 어제 나갔다고 사장님께서 말해주신다. 이런 그런데, 여기도 노래방 기계가.


 어쩌면 영월에서의 첫 하루가 이렇게 즐거운 것이었기에 우리가 주저없이 일주일의 휴가를 두달만에 다시 계획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월에 와서 잘 먹고 잘 놀다 간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날은 선돌도 한반도 지형도 가보지 않았다. 쨍쨍한 햇볕과 대조되는 거센 바람을 맞으며 청령포와 카페 한군데를 들른 뒤 바삐 집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그래도 그저 좋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좋았고 가만히 쉬기 좋았다. 바쁜 삶의 틈바구니에서 찾아든 곳이 바쁘게 다니며 돌아봐야 하는 곳이라면 그것도 넌센스임을 바깥양반에게 가르쳐준 곳이라고 할까. 그 덕에, 이번 여름에 다시 찾은 영월에서도 일주일 간 푹 쉬었다. 잘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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