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일은 빅케일
"오빠~ 나와봐 내가 이거 포장해 왔는데 진짜 핫한 곳이라서."
모처럼 바깥양반이 외출을 했다. 코로나로 온가족이 호되게 집에 갇혀 앓고 난 뒤였다. 특히 바깥양반은 4일 늦게 코로나 확진된 나 없이, 장갑을 두개끼고 하루 종일 혼자서 아이를 보느라 정말로 크게 고생을 했다. 그런 뒤에 첫 외출을 한 것이니, 좋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성수에서 맛집투어를 한바퀴 하고 오시더니 저녁 시간이 지나 돌아와서는 손에 주렁주렁 음식들을 달고 온다.
"뭔데 이게."
"난포라고 성수에 진짜 핫해. 나 들어가고 얼마 안 있다가 웨이팅이 90팀이 됐어."
헐 90팀. 애프터판데믹이 정말 왔구나. 바깥양반이 사 온 음식이 먹음직스럽다. 저녁을 이미 먹고난 뒤였지만 나는 아이를 함께 보러와주신 장모님과 함께 그것을 나누어먹었다. 내일 먹으려면 먹겠지만, 냉장고에 한번 들어갔다 나온 음식이 그 맛일 리가 없지. 식으면 식은대로 나는 그것을 싹싹 비우고, 성수동 외출에 함께한 바깥양반의 친구들에게 인증샷까지 보내주었다.
맛은 슴슴하니 대수로울 것이 없다. 다만 꾸밈새가 예쁘다. 바깥양반이 아직도 신이 나서 식당에서 먹은 음식 사진까지 내게 보여주길래 나는 이게 그렇게 맛이 좋으냐 물었다. 평소에 쌈밥을 자주 먹지도 않을 뿐더러.
"응 나 강된장 좋아해서. 그리고 이쁘잖아 이렇게 쌈 싸서."
"강된장 좋아했나?"
"응. 우렁도 좋고 소고기도 좋고."
아하. 그건 또 몰랐네. 쌈밥은 어쩐지 돈이 아까운 기분이다. 마트에 가서 여러가지 쌈야채를 사와서, 집에서 고기를 구워먹으면 "쌈밥이 땡기네."라는 욕구는 얼마든지 해소가 가능하니까. 그래서 우리가 쌈밥이나 강된장으로 외식을 하진 않는 편이다. 혹여 어떻게 그걸 먹을 일이 있어도, 콕 집어 강된장 맛있네 하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진 않는다.
그래서 나는,
강된장을 일단 해주기로 했다. 바깥양반이 좋아한다니, 또 나도 좋아하는 고로 이야기 나온 김에 한 통 만들어놓으면 한 일이주는 두고두고 쌈야채로 건강식이 될 것이다. 주말에 마트에 들러 애호박과 두부, 우렁을 사뒀다가 이틀쯤 뒤에 시간이 마침 생겨 조리 시작. 양파를 미리 쫑쫑 썰어 볶아 풍미를 내면서 우렁을 씻고 채반에서 물기를 털어낸다. 강된장에 들어갈 수 있는 재료가 여러가지 있지만 요정도로만 간소하게.
강된장이라, 어릴 때 엄마가 자주 만드신 적이 있다. 그때 집 사정이 정말 어려울 때였다. 마늘을 다지고 고추도 썰고 해서 만들어두면, 우리는 참치 한 캔을 따서 상추쌈을 해서 먹었다. 그때 어려운 와중에 사촌형제들도 놀러오고 해서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빙 둘러먹었던 기억도 새록새록. 그런데 내가 물려받은 엄마의 그 성미란, 도통, 한동안은 그 요리만 하다가 싫증이 나면 다신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나도 좀 그런 성격을 닮아있는데 중학교 그 시절 이후로는 엄마가 강된장이나 쌈장을 만드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아깝다. 맛있었는데.
대신 쌈장엔 엄마의 집된장이 들어간다. 된장찌개를 끓여도 바깥양반은 몇 숟갈 찍어먹고 말기 때문에 여태까지는 풍미 가득한 맛깔진, 그리고 짜디 짠 집된장을 자주 쓸 기회가 없다. 원래 된장찌개는 푹 익은 고추며 양파며 대파며 호박 등등을 푹 떠서 밥공기에 석석 비벼서 먹다가, 나중에 참기름도 조금 달라고 해서 비빔밥으로 만들어 먹어야 제맛인데 말이다. 아래 있는 채소들 좀 떠서 먹으라고 해도 요지부동이니 이를 어째. 덕분에 된장이 퍽 많다.
그건 좋은 일이 되었다. 아낌 없이 집된장을 팬에 퍼부었다. 찾아본 레시피엔 시판된장 반, 집된장이 반 정도라는데 나는 굳이 시판된장을 쓰지 않아도 된다. 나중에 엄마에게 강된장 말씀을 드렸더니, 그게 15년은 묵은 거라면서 맛있을 거라고. 아, 당연히 맛은 있었다. 특히나 식사를 마치고 나서까지 입에 감도는 된장의 그 구수한 맛이 정말이지.
그리하여 나는, 정말로 집된장을 아낌없이 퍼 담아서 설탕, 들기름 등과 볶다가 마지막으로 으깨서 물기를 뺀 두부를 넣고 함께 볶는다. 한번에 만들어서 넉넉히 둘 것이므로 되도록 짜게 만들어야 오래 먹는다. 적게 자주 만들면야 좋겠지만 애초에 손이 크기도 하고 요리는 결국 노동인지라, 한번에 넉넉하게 했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들기름까지 부은 뒤, 강된장의 수분을 줄이기 위해 볶아주었다. 이제 강된장은 끝.
그런데 케일이 조금 문제다. 일단 어렵사리 케일을 사오긴 했는데 잎사귀는 손바닥보다 조금 작다. 가운데에 대가 있어서 이게 잘 쌈이 싸질까? 싶다. 하긴 당연한 고민인 것이, 식당에선 쌈을 위해 적당한 사이즈의 케일만을 따로 구매하거나 할 것이고, 나에겐 그런 선택지가 없다. 파는 걸 사서, 그것을 어떻게든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쌈을 할 케일까지 데치고 나니 강된장을 만드느라 다듬고 남은 채소들이 눈에 들어온다. 당근은 이전에 다른 걸 하느라 쓰고 남은 걸 꺼냈다. 여기서 나의 고민은 "구색"이었다. 강된장쌈밥을 만드는 건 별일이 아니다. 그런데 상차림이 지나치게 간소해질 것 같다. 애초에, 쌈채소를 넉넉히 상에 깔아두고 다른 반찬을 올리고 밥공기를 차리는 게 아니라 케일로 쌈을 싸서 한 접시 올리는 거라. 구색이 별로이고 색상도 별로다. 이미 호박이며가 남아버렸으니 이왕이면, 상차림의 구색을 맞추어주기로 했다. 나는 야채를 채를 썰고, 야채부침개를 만든다.
그러고보니 채소부침개는 참 맛깔난 요리다. 그냥 아무 채소나 대강 다져서 부침개 가루만 묻혀서 튀겨내면 된다. 그런데 색깔도 나름 곱고 튀겨진, 혹은 부쳐진 그 튀김옷의 식감으로 간단한 요리가 풍성한 만족감을 준다. 강된장도 만들고 시간을 퍽 썼지만 나는 즐겁게 신명나게, 전을 부친다. 하나 하나 퍼 담아서 부침개가루가 노릇짭짤하게 구워지는 것을 보며. 시간은 아깝지 않다. 아 물론 이러다가 싫증이 나면, 아무것도 아낳게 되겠지.
마침내 조립 타임이다. 콩밥이긴 하지만 들기름과 간장을 약간 넣고 비벼서 쌈을 싼다. 아 이런. 예상대로다. 케일잎사귀 가운데 대가 남아서 영 쌈을 싸기 까다롭다. 케일인 줄 알았는데 다른 쌈채소였을까? 사실, 강된장 쌈밥에는 호박잎이 최고일 테다. 그 달달한 호박잎. 까슬까슬한 식감까지 정말이지 최고의 궁합이지 않을까. 아니면 곰취도 좋고, 아니면 머우도 재밌을 것 같고. 강된장이 니 모든 채소들을 끌어안아 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이지 강된장은 재미난 요리다. 이걸 왜 이제야 만들고 있을까 싶게. 그리고 건강하기도 하겠지. 너무 강된장을 많이 찍어넣는 것만 아니라면 말이다. 딱, 쌈의 맛을 극대화할 정로로만 한 젓갈 콧 집어서 다른 부재료 한두가지와 올린다면.
그리고 나는 강된장의 염분도 낮출 겸, 사진에서 본대로 소스 느낌으로 만들기 위하여 따로 냄비에 물을 좀 끓인 뒤, 강된장을 풀어서 묽게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이렇게. 상차림을 하면.
"와. 으응. 그런데 이상해."
"응?"
"이거, 원래 난포에선 바닥에 깔아주는데."
"강된장? 아 그게."
두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장모님까지 세 사람이 먹을 거라서 어떻게 쌈을 만들어도 접시는 넘친다. 그래서 사진처럼 예쁘고 아리땁게 강된장이 담겨진 접시 위에 쫑쫑쫑 쌈이 올라가지지 않는다. 또 다른 이유는, 그렇게 접시에 깔고 위에 쌈을 올리면, 대부분의 강된장은 결국 남아서 버려지게 될 것이다.
아깝잖아. 그러니까 나는 쌈을 완성한 뒤에 위에 묽게 한 강된장을 얹어놓은 것인데, 바깥양반은 아쉬운 모양이다.
"다시 해주면 되지. 일단 먹어봐."
"응. 오. 근데 맛은 똑같군."
"맛있어?"
"응 이거 케일로 똑같이 한 거야?"
"응."
그 뒤로 한 일주일간 우리는 강된장을 수시로 먹었다. 워낙 짜기도 하고, 많이 쓰질 못하기 때문에 쌈채소를 씻어서 통에 담아두고, 노상 먹고 먹고 또 먹어도 잘 줄지않았다. 참치캔 대신에 얇은 삼겹살이나 뒷다리 살 등이 쌈에 들어가곤 했고, 아침 저녁으로 쌈밥을 먹을 수 있는 상은 풍성하다. 그리고 때때로, 그런 상차림 뒤에는, 미뤄둔 숙제처럼, 바깥양반에게 해주기로 한 것에 대한 생각은 이어진다.
와 케일. 원래 이렇게 크구나. 열장쯤 될까 싶은 한 봉지가 3900원. 괜찮다. 비싸긴 비싸다만, 특식이라고 생각하고 만들기엔 충분한 가성비다. 월요일 아침에 아이 분유를 먹인 뒤에 나는 주방으로 나와 케일을 꺼냈다. 처음 이 큼지막한 케일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게다가, 바깥양반의 지적처럼 쌈이 제대로 뭉쳐지지 않고 허술한 것이 어찌나 아쉽던지. 그런 놀라움과 아쉬움은, 이 케일 하나로 해결이 될 것 같다. 비록, 호박잎은 아니지만.
물로 씻어내어 탁 털어냈는데 A4 사이즈의 얖은 간이 도마에 다 안올라가진다. 쌈을 방해할 대를 잘라 데친다. 케일이 잎새가 두꺼워 충분히 데쳐도 흐트러지거나 하지 않다. 그리고 스팸을 다진다. 바깥양반이 스팸을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그리고 지난주에 볶음밥을 만들고 남은 스팸이 있어서 이번에 쓰면 좋다. 밥은 새밥으로 지어두었고 모든 것은 준비가 되었다. 가장 중요한 강된장. 물을 더해 끓여서 자작하게 소스처럼 만든다. 그리고 지난번 바깥양반의 말대로 접시에 미리 부어두었다. 준비는 끝.
말아 말아 말아서 케일쌈. 비록 난포의 오리지널 퀄리티보다 많이 떨어져서, 특히 케일 대의 퍼져나가는 그림은 잘 보이지 않긴 하지만, 이만하면 무척 비슷하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한다더니 또 잠만 잘 자고 있는 바깥양반을 깨워서 식탁에 앉도록 한다.
"오!"
"똑같지?"
"응 정말 똑같네?"
한끼 식사. 휴직중인 바깥양반은 아이를 낳기 전까진 원래 아침밥에 큰 감흥이 없었다. 나는 나대로 졸리고 귀찮아 유독 아침맙을 대강 대강 했다. 그냥 김치볶음밥으로 떼운 아침이 일주일에 서너번일 때도 있었다. 그런데 바깥양반이 하루종일 아이를 보느라 점심은 대강 먹어야 하지, 저녁도 내가 퇴근한 뒤 대충 해결하는 때가 많아, 최근 부쩍 아침밥에 나도 공을 들인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매일 새밥을 하느라, 냉동실에 얼린밥은 쌓여가고 밤마다 조금 번거롭긴 하다.
그러나, 모처럼 외출을 해 점심시간부터 저녁시간 까지 달랑달랑 남편을 위해 포장한 음식들을 들고 다녔을 생각을 하니. 그간 코로나 때문에 고생을 한 생각을 하니. 또 이런 음식을 따라해보는 것도 기쁘지 아니한가. 아직도 툭 하면 말다툼을 하고, 그런 감정소모 끝에는 서로에 대한 못된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에 본디 답이란 것이 없는 것이니, 또 뒤 돌아 서면, 또 하루가 지나면. 이렇게 강된장에 우렁과 채소들이 버무려지듯, 케일에 밥이 감싸이듯, 이렇게 함께 어우러지고, 끼고 사는 일이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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