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국수는 원래 이렇게 "막" 만들어 먹는 거 아님?
이틀 전 삶아서 식혀둔 앞다리살 수육과 그 육수를 뒷베란다에서 꺼내 가져왔다. 소금 약간, 마늘 한줌이 들어간 손바닥 크기의 앞다리 살은 한 술 후루룩, 육수 맛을 보니 깔끔하니 맛이 좋다. 한시간 남짓 우렸나. 싱싱한 고기라 그래서인지 돼지육수인데도 퍽 만족스럽다.
오늘의 특이한 메뉴에는 몇가지 장애물들이 버티고 있는데 그 첫번쨰가 이, 돼지고기 육수를 끓여서 식혀둬야 한다는 것. 어렵진 않지만, 귀찮다. 그런데 또, 나는 그걸 굳이 하는 사람. 별로 어려울 것도 없지 않은가. 그냥 설거지 하기 전에 냄비를 걸어두고, 설거지를 마친 뒤에 샤워까지 하고 나와서, 육수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 베란다에 넣는다는 간단한 동작만 한다면 말이지.
그런 돼지고기 육수에서 고기만 집어 꺼낸다. 면을 삶기 위해 물을 끓이고, 거기에 고기를 한번 데친다. 막국수에 올라갈 고기 고명이 너무 차가우면 못쓴다. 조금이라도 더운 김을 쏘여주면 훨씬 낫지. 이내 고기를 건져내고, 그대로 면을 던진다. 그리고 면이 익어가는 사이 고기 육수 냄비에 뜬 기름도 걷어둔다. 이미 돼지고기 육수를 내기 위해 냄비를 하나 썼으니, 면을 삶을 냄비는 알뜰히 고기만 데치는데에 써버리는 것이지. 그리고 딱 이정도만 되어도 좋다. 수육으로 따로 먹기로 한다면야 말렸다가 쪄서 쫄깃하게 먹겠지만 애초에 수육을 집에서 하려면, 맛있게 하려면 또 품이 드는 일이다.
메밀면을 마트에 가서 사왔다. 원래는 시장에 가서 국수집에서 사려고 했는데, 영 짬이 나고 동선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마트에서라도 우선 사기로 한 것인데, 이게 나쁘진 않다. 한 중소기업에서 여러 메밀면 라인업을 구비하고 있어서, 우선 하나 맛보기로 했다.
푹 삶아냈는데 그런데 나쁘지 않다. 적어도, 시판 메밀면이지만 그 마트에서 사는 소바면보단 훨씬 색감도, 면을 느낄 때 느껴지는 촉감도 좋다. 막국수가 원래의 그, 집에서 대강 말아먹는 음식이라는 고유의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일반 가정집에서 잘 채택이 되지 않는 이유에는, 시판 메밀면이 소바면 스타일 말고는 잘 없다는 것인데 이 역시 기술의 진보인지 식문화의 발전인지, 동네 마트에 가서도 퍽, 이런 괜찮은 면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작년이었던가. 부모님께서 외가인 태안을 다녀오시면서 예산에 들러, 예산국수를 사오셨는데 그것으로 한참 맛있게 해먹었다. 바깥양반도 좋아하였고. 옛날처럼 소면 일변도가 아니라 다양한 면을, 이렇게 메밀면까지 포함해서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좋은 세상이다.
이쯤에서 왜 막국수인지를 이야기할 차례가 된 것 같은데 말이다. 동치미가 있다. 우리집에. 지난해 11월에 김장을 담가, 겨울을 난 동치미. 그리고 우린 1월에 속초 여행을 다녀오며 최고의 막국수도, 전통과 명망을 갖춘 막국수도 두루 맛본 참이다. 그러면서, 막국수의 맛이라는 것도, 이전의 다른 식사경험을 포함하여 대강 그 방향성과, 맛의 구색에 대해서도 알게되었다.
막국수의 방향성, 정체성과 그 맛이란, 막 만들어 먹으면 장땡이라는 것. 집집마다 하고 싶은 방식이 있고, 나름의 맛을, 그들은 내어준다는 것이다.
자 그래서 이렇게, 막국수 준비가 끝났다. 김치 냉장고에서 동치미. 대강 5천원가량의 앞다리살. 역시 마트에서 산, 중소기업 산 시판 메밀면. 내 방식의 막국수 육수는 동치미 국물 대충, 돼지고기 육수 대충, 그리고 메밀면을 삶은 면수 대충. 이렇게 셋을 섞었다. 간장 같은 건 넣지 않았다. 그리고 맛을 보니,
야 맛있다. 동치미가 잘 익어 시큼하니 입맛을 당긴다.
대충 만들어도 되고, 대충 만들어도 맛있다는 게 막국수의 이런 즐거운 점이 아닐까. 이를테면 잔치국수는, 절대로 대충 하지 못한다. 잔치국수엔 잔치국수만의 멋이 있다. 계란지단과 호박, 당근 꾸미가 올라가야 잔치국수이고, 그것이 없으면 그냥 멸치육수에 면 말아먹는 거지. 열무국수는 막국수보다도 쉬운데 막국수만큼이나 막 만들어먹기엔 염분 문제가 일단 크고, 여름음식 한정이다. 동치미만 있으면 막국수는 사철 먹겠다. 김치냉장고가 쌩쌩하니, 동치미는 아껴두었다가 여름 내내 수시로 막국수를 해먹어도 된다. 이게 막국수가 "막" 만들어먹는 국수인 이유, 그리고 막 만들어먹을 수 있어, 더욱 좋은 음식인 이유.
뭐 그래, 그렇게 막국수가 완성되었다. 나는 방에서 아이와 자고 있는 바깥양반을 불렀고, 우리는 아침식사를 성대하게 "막" 치렀다.
응, 아침식사?
응. 아침식사. 막국수 모닝.